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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01. 2024

날아올라, 접영


수영의 꽃은 무엇인가? 나는 거침없이 대답하겠다. 그것은 바로 접영이다. 접영은 수영 영법 4가지 중 가장 마지막에 배우는 영법으로, 영어로는 butterfly stoke이다. 마치 나비처럼 양팔을 수면 위로 올려 날갯짓하는 형상의 영법이다. 양팔을 동시에 돌려야 한다는 점에서 파워가 필요하며, 마치 인어공주가 된 양 웨이브를 타야 한다는 점에서 유연성이 필요하며, 팔 돌리기와 발차기의 쿵작이 맞아야만 앞으로 뻥-나아갈 수 있기에 완벽한 박자감까지 필요한 수영의 삼위일체 영법이 되겠다. 그렇기에 앞선 영법들이 웬만큼 완성되지 않고서야 배울 수 없는, 그런 전설의 영법인 것이다. 아, 혹시나 덧붙이건대 오늘의 글은 나의 접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랑하기 위한 글이므로 이 모든 구구절절 설명들은 나의 뇌피셜이다.

 

 접영을 잘하는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큼큼. 일단, 어쩔 수 없는 굴욕의 연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일명 ‘패배기’ 구간이다. 접영을 처음 배울 때 겪는 구간으로, 강사님이 내 몸을 마치 폴더블 폰인양 사정없이 접어대는 시기이다. 어쩔 수 없다. 강사님은 최선을 다해 당신의 웨이브를 만들어주시고 계시는 것이다. 강사님을 믿으십시오. 이때 코로 물이 엄청나게 들어올 예정이다. 아마 당신은 계속해서 코로 들어오는 물 때문에 숨이 막혀 당장이라도 땅을 딛고 일어서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강사님의 마음에 드는 웨이브가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다른 회원님들 앞에서 사정없이 접히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웃으면 안 된다. 웃으면 호흡이 더 딸린다. 웃음은, 나를 지켜보는 회원님들의 몫으로 남겨주자.

 

그다음, ‘살려줩영’ 구간을 지나야 한다. 이 시기는 대충 웨이브도 할 줄 알고, 물 밖으로 숨 쉬러 팔을 돌릴 줄도 아는 시기이다. 하지만 ‘살려줘’라는 이름값을 하는 구간으로, 자기 딴에는 나름의 최선의 접영을 보여주고 있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어머나 저 사람 물에서 허우적거리네 구해줘야 하나? 하지만 겨우 1.2m 수심일 뿐인데?’하고 지켜보다 이내 ‘아하 저 사람은 접영 연습 중이었구나’하고 깨닫게 하는 시기이다. 이 구간에서는 팔뚝의 무게가 그 어떤 세상의 무게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며, 과도하게 허리를 꺾다가 허리가 삐끗할 수 있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너무 무리한 연습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마지막. ‘이 정도면 만족’ 구간을 지나야 한다. 접영까지 진도를 나간 순간 당신은 방심한다. ‘수영으로 뭐 대단한 것을 이룰 것도 아닌데 접영까지 대충 할 줄 알면 뭐 이 정도면 수영을 여기서 끝마쳐도 되지 않을까?’ 당신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수영에 급격히 흥미를 잃기 시작한다. 하지만 조금만 더 버티시라. 누군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누가? 바로 오리발이다. 접영까지 배우고 급격히 흥미를 잃은 당신을 위해 센터는 오리발이라는 치트키를 준비해놓고 있다. 오리발을 하고 접영을 하면 마치 내 몸이 로켓이 된 마냥 앞으로 쏟아질 듯 나가게 된다. 그에 따라 팔도 가볍고, 몸도 가볍다. 모든 게 가볍다. 오리발 접영을 연습하며 몸이 가볍게 나가는 감각을 익히셔라. 그리 연습하다 보면 오리발 없는 접영도 언젠가 가볍게 나갈 수 있다.

 

 접영 배운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혼자 연습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하얀 수모 아저씨는 내게 접영 박자와 노하우를 아낌없이 알려주셨다. 지금의 나는 하얀 수모 아저씨가 인정한 ‘우. 리. 반. 접. 영. 에. 이. 스./ 접. 영. 자. 세. 최. 고. 멋. 있. 는. 친. 구’이다. 접영을 할 때면 수영장 바닥에 비친 내 실루엣을 유심히 본다. 웨이브를 타고, 손에 힘을 살짝 줘 물을 잡고, 가볍게 팔을 내던지는 동시에 두 발을 수면에 내리친다. 마치 성스러운 어떤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다. 아아, 오늘도 즐거운 수영이었다. 수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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