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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Oct 22. 2024

한강 수영

한강 수영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당산역에서 합정역으로 넘어갈 때면 창 너머로 한강이 보인다. 날씨가 어떻든 간에 반짝반짝 일렁이는 물결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 구간에서라면 물을 무서워하는 그 어떤 이들도 오직 ‘아름답다’라는 생각만 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태어날 때부터 물을 좋아했던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여느 날처럼 그저 ‘아 예쁘다-’하며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마음 한편 어디선가 더 이상 아름답다는 감상으로만 끝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수영을 할 줄 알게 된 이상 저 물은 내 것이어야만 해. 더 이상 눈으로만 보면 안 돼. 몸으로 느껴야 해.

 한강 강물을 느끼는 방법에 대해선 영화나 뉴스에서 보던 다소 극단적인 예시만 떠올랐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그런 예시는 안된다고 생각주머니를 털털 털어버렸다. 씨유숨님의 책 내용을 떠올리며 잠수교 근처인가에서 한강 수영을 즐기는 정기적인 행사가 있다고 하니 그 기회를 노려보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기회는 의도치 않게 찾아왔다. 생존 수영 연수를 신청했는데, 이틀차 연수 장소가 한강이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매주 보던 그 한강은 아니고 여주시 근처의 남한강이었으나 남한강도 한강이라고 퉁치기로 했다. 음 그러니까 전라북도도 전라남도도 모두 전라도인 것과 같은 이치..!) 나에게 강물이란 무엇인가? 대략 10년 전, 대학 친구들과 가평 빠지에 놀러 갔던 게 마지막이다. (그런데 ‘빠지’라는 단어 참 재밌지 않은가? 친구에게 빠지라는 단어가 뭐냐 물었더니 “강물에 빠지라고 빠지”랬다.) 그때 바나나 보트 같은 걸 탔었다. 운전해 주시는 분은 우리가 강물에 빠지길 기대하며 한껏 덜컹덜컹 움직임을 만들어내셨다. 그러나 나는 빠지지 않기 위해 피가 안 통할 지경으로 손잡이를 굳세게 잡았다. 물놀이를 즐기긴커녕 빠지면 나는 죽는다는 생각으로 안간힘을 썼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어엿한 수영인. 게다가 연수 신청란에서 수영 수준을 묻기에 당당히 ‘상’이라고 적어냈다. 발이 닫지 않는다는 건 여전히 조금 염려되지만, 그래도 과거만큼 물이 무섭진 않다. 게다가 구명조끼까지 있으니 완전한 믿을 구석이다. 예나 지금이나 구명조끼를 입는 건 매한가지인데, 내가 수영을 할 줄 아느냐 모르느냐가 이렇게 마음가짐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신기하다.

 

 한마디로 결론짓자면 한강 수영은 몹시 즐거웠다. 수영장 물과는 다르게 겉보기엔 얼룩덜룩해 왠지 오물 냄새가 날까 염려했지만 오히려 물맛이 좋았다. 적당히 시원하고 깔끔 달큼한 게 수영장의 락스물과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그리고 물 덩어리가 있는지, 물이 시원했다가 따뜻했다가 수시로 바뀌었다. 마치 화장실 타일을 지그재그로 붙여 넣은 것 같았다. 따뜻한 물, 차가운 물, 따뜻한 물, 차가운 물.. 발이 닿지 않는 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어느 순간엔 발이 닿지 않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게다가 정말 좋았던 건, 드넓게 펼쳐진 이 푸른 하늘과 푸른 강물이 다 내 수영장이라는 것이었다. 그 어떤 수영장에서도 느낄 수 없는 벅찬 감정이었다. 콧잔등과 볼이 새빨갛게 익어가는 지도 모르고 연신 “우와-우와-”를 외쳤다.

 예능인 신봉선 님이 말했던가, 수영을 배우고 나니 온 세상이 내 놀이터가 되었다는 말. 나는 그저 수영을 배웠을 뿐인데, 한강이 내 놀이터가 되었다. 앞으론 영산강도 금강도 낙동강도, 서해바다도 동해바다도, 지중해도 태평양도 대서양도 내 놀이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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