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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홍 Jun 29. 2024

용기를 끌어모아 노킥판 자유형

용기를 끌어모아 노킥판 자유형

 

 나는 물이 왜 무서웠을까? 영문을 모르겠다. 어릴 적 물과 관련된 안 좋은 기억 같은 게 있던 걸까? 아기 때 변기에 빠져 “엄마~~!!”하고 소리쳤던 기억은 난다. 그렇다고 해도 엉덩이만 풍덩 빠진 거라 호흡엔 문제가 없었는데. 물놀이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긴 하다. 사실 나는 발이 땅에 안 닿는 모든 건 다 무서워했다. 비행기도 26살에야 처음 타봤다. 심지어 자동차를 타도 내 발이 공중에 떠있다는 개념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무섭긴 했다. 20살 때 상경해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때도 서서 중심을 잡고 가야 하는 게 무서웠다. 이 정도면 걷는 것 말곤 그냥 다 무서웠다고 해야 하나. ‘무섭다’라는 단어가 잘못된 선택이지 않을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그냥 ‘걱정’이나 ‘염려’라는 단어보단 더 심각했다. 내가 아는 단어 중엔 ‘무섭다’가 제일 적절하다.

 

 수영 강습 첫날, 겨우 수심 60cm 정도 되는 유아풀에서도 나는 무서웠다. 모서리에 걸터앉아 발차기 연습도 했고, 음파음파 연습도 했는데 도저히 땅에서 발을 떼는 건 되지 않았다. 킥판은 잡았고, 나는 발을 떼고 싶지만 무서웠다. 그래서 옆에서 봤을 땐 그냥 물에서 점프 점프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정말 웃기다. 옆 사람은 벌써 뽈뽈뽈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발을 떼는 것조차 못하고 있다니. 아니 이게 뭐라고 발을 못 떼? 나도 내가 어이없고 원망스러웠다. 성인풀에서 넘어오신 강사님이 나를 보며 “어렸을 때 물에서 별로 안 놀았구나?” 하셨다. 네.. 그랬던 것 같아요. 발이 땅에서 떼어진 게 무섭잖아요. 강사님이 킥판을 잡아끌어주셨고, 그제야 나는 땅에서 발을 떼 발장구를 칠 수 있었다. 킥판을 한컷 세게 잡은 채로 말이다. 킥판은 아마 거의 수직이 되었을 것이다. 너무 세게 잡아서 말이다. 강사님이 그거 누르느라 고생 좀 하셨을 것 같다.

 

 이런 내가 '이제는 킥판 없이 자유형을 하셔야 해요.' 얘기를 들었을 땐 얼마나 마음속에 지진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 왕초보에겐 킥판이 생명줄과 다름없지 않은가? 이 험난한 물속 세상에서 내가 의지할 거라곤 킥판뿐인데... 왜 실내수영장에선 구명조끼를 입히지 않는 거야. 물론 선생님이 저렇게까지 직접적으로 말씀하신 건 아니었다. 다만 내 킥판을 스리슬쩍 빼서 물 밖으로 던져버리셨다. 갈 곳을 잃은 내 손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정신이 혼미해져 모든 동작들이 엉망이 되어 물에서 벌떡 일어서버리게 되었다. 가다가 서다가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반환점에 도착하면 나도 스리슬쩍 킥판을 다시 잡고 수영을 했다. 여기 있는 모두가 까만 수영복이고 나도 까만 수영복이니 내가 몰래 킥판을 다시 잡은걸 눈치못채시지 않을까 기대했다. 이러려고 왕초보들은 다들 까만 수영복을 입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선생님은 또다시 내 킥판을 스리슬쩍 빼셨다.

 

 그런데 나란 사람, 티쳐-포지티브형 인간이지 않는가? 나는 선생님의 의도를 100% 파악해 버렸다. 이제는 노킥판을 무조건 해야 한다. 언제까지 선생님의 눈을 속이고 몰래 킥판을 잡을 순 없다. 나는 다음날부터 바로 노킥판 연습을 시작했다. 선생님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들었다.

 노킥판 자유형 연습 루틴은 대체로 이랬다.  워밍업으로 킥판을 잡고 자유형을 한다. 자유형 감각을 상기시킨다. 팔은 이렇게 발은 이렇게. 그리고 킥판을 물 바깥에 놓는다.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수경을 고쳐 쓴다. 몸속의 용기세포를 모두 끌어모은다. 마음속으로 ‘도전..!’이라고 외친다. 그리곤 킥판 없이 팔을 하나 둘하나 둘 돌려보는 것이다. 마음처럼 되겠는가? 역시 바로 되진 않는군 생각하며 다시금 킥판을 잡는다.

 어느 날은 킥판을 잡고 가다가 스을쩍 손에 힘을 빼 킥판을 일부러 놓쳐보기도 했다. 어느 날은 킥판보다 저항이 작은 풀부이를 잡고 연습하기도 했다. 또 어느 날엔 킥판을 잡고 있다고 상상하고 팔을 돌려보기도 했다. 어느 방법이든 팔 돌리기 딱 세 번이 한계였다. 세 번째로 팔을 돌리고 나면 겁이 확 몰려왔다. 세 번은 돌려봤는데, 네 번째부턴 모르겠다. 벌떡 일어나 옆구리에 손을 짚는다. 왜 네 번째는 안되지?

 

 단 몇 문장으로 나의 험난한 노킥판 도전 일대기를 요약했지만, 정말 눈물겨운 사투였다. (수영장에서 울면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수경 덕분에 내가 우는걸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온통 물 밭이라 내 눈물이 티가 안 난다는 점이다. 눈물을 닦고 코를 풀어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는 것이다. 다들 울고 싶을 땐 수영장을 찾아주세요.) 2023년 3월의 마지막날, 마침내 만족스러운 노킥판 자유형을 하게 되었다. 이 날은 어쩐지 물에 들어가는 순간 머릿속에서 "물아일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물아일체의 '물'이 말 그대로 Water라고 생각되었다. 중간중간 호흡 타이밍이 안 맞거나 겁이 몰려올 때면 막연히 선생님을 쳐다봤다.  선생님은 "그냥 갈 수 있어요! 계속 갈 수 있어요!" 응원해 주셨다. 그러곤 마침내 노킥판으로 한 번에 25m 가는 것을 3~4번쯤 성공하게 되었다. 마침 트래픽잼이 생겨 선생님이 바로 옆에 계셨다. 나는 성취감으로 도취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당시 일기를 보니 '아임 크레이지.. 난 미쳤어.. 너무 멋져...'라고 써놨다.) 선생님을 바라보며 "저 이제 잘하죠!?"라고 칭찬을 구걸했다. 선생님도 맞장구를 치시며 다 본인 덕분이란 셀프 칭찬도 잊지 않으셨다.

 눈물겨운 노킥판 도전 일대기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후엔 노킥판 영법들에 대한 두려움 허들은 거의 없어졌다. 돌이켜 생각하니 이때가 내 수영 인생 중 가장 큰 고비였던 것 같다. 이렇게 초반에 고비가 왔었다니 놀랍다. 노킥판 고비를 넘기니 나머지는 수월해진 것처럼, 내 인생에서 어떤 고비를 맞이하게 되면 '이후엔 얼마나 수월해지려고...' 생각해야겠다. 하지만 역시 제일은 고비 따윈 맞이하지 않고 (혹은 고비인 것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경미한 고비)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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