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같으면 회사에 있다가 저녁 늦게끔 퇴사 서류를 작성하겠지만, 나는 아직 재택근무 중이었기에 계약이 종료된 다음날 회사에 갔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날들을 고민했지만, 결정을 내리니 그저 시원한 마음뿐이다.
그리 좋은 회사를 왜 나오냐는 꾸짖음도, 조금만 더 버티라는 충고도 다 소화해 보려 했지만인연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맞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다가 세 달 만에 본 동료들이 얼마나 반가운지. 모두들 나의 퇴사에 대해서 궁금증 반 그리고 염려가 가득했다.
혹시 '누군가에게 상처 입어서 나가는 거라면, 그 흔적이 오래 기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동료 A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 등 뒤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쭉 지켜봤던 그녀기에
내가 힘들어하는 것도 알았던 터다.
'난 오히려 벗어나기로 선택하니 훨씬 기뻐'
당당한 나의 답변에 동료 A도 안심을 했다.
1월부터 6월까지는 프랑스 세무신고 기간이다. 회계팀에 소속된 사람들에겐 가장 일이 많고 힘든 시기이기도 하다. 밀린 2019년도 감사를 받으면서, 2020년 회계도 계속해야 하는 기간이다. 일을 한창 배워야 하는 시기에 나는 재택근무를 했다. 내가 회사에 나간 시간보다 재택근무를 하는 시간이 더 길었으니 인수인계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동료를 만났다. 북아프리카 출신 프랑스인이었던 그녀는 내가 대하기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서류들을 그대로 가져와서 일 해야 했기에 다른 사람과 일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니었다.
재택근무를 하며 그녀의 불만과 불안감은 증폭했고 화풀이 대상이 꼭 나인 것만 같았다. 이 사람은 내 인생에서 피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를 위해 이 사람을 내 인생에서 빼내자
나는 한 사람을 내 인생에서 과감히 빼내고, 상상치도 못할 기쁨과 자유를 얻었다.
'해방감, 안도'
덕분에 나를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찐 동료를 얻었다. 그동안 프랑스 동료들은 나의 밝은 웃음과, 먹을 것을 나누는 한국인의 정을 좋아했다.
오히려 너무 잘 웃고, 연한 두부 같아 상처 받지는 않을까 되려 걱정했다고. 대신 본인들은 오랜만에 그런 따듯함을 느껴서 좋았다고 고백했다. 내가 먹고 싶은 초콜릿 한 박스 더사기, 농담하면서 한 번 더 웃기, 그게 내가 해준 최선이었을 뿐인데.
끝없는 터널을 지나는 것만 같을 때가 있었다.
숨도 쉬기 어렵고, 잠도 자기 어렵게 만들었던 압박감과 스트레스. 그래도 직장인인 이상 그 고비는 스스로 넘겨야 했다. 먼저 지레 겁먹고 포기해버린 것도 있고, 꾸역꾸역 해낸 것도 있었다. 퇴사 날 되돌아보니 지레 겁먹고 포기해 버린 건네 것이 되지 못했다. 대신 꾸역꾸역 해낸 일들은 내 것이 되었다.
내가 고생하고 힘들게 얻어낸 만큼, 딱 그만큼만 내 것이 되었다. 퇴사할 걸 알았으면 조금 고비를 참아볼 걸 그랬나?라는 생각도 들지만, 나는 내가 배울 수 있는 최대치를 경험하고 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니 최악이었던 동료도, 가장 힘든 시기에 입사한 것도 내게는 인생의 스승이지 않았나 싶다.
그만큼 더 단단해지고 강해 진건 사실이니까. 그러나 나는 끝까지 그녀에게는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지는 않았다. 혹시나 모를 다를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