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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abooks Jun 24. 2020

노는 것의 미학

언제부터 노는 것에 인색해진 걸까


효율성, 생산성, 성과내기


어떤 한 권의 책이 시발점이었다. 그 책을 읽고 직장 외의 나의 개인적인 삶에도 위의 잣대를 적용했다. 그리고 약 3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보이지 않는 자신만의 성과를 위해 '시간'에 대해서 인색했다. 효율성이 없는 일, 나를 발전시키지 않는 일에 시간 쓰지 않기가 일상인 삶이었다.


균형을 위해 '쉼'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논다는 것은 언제부터 나에겐 부담이자 피로함의 동의어였다. 규칙적인 루틴을 방해하는 것이라면, 나도 모르게 피해 가고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도 '너는 10시부터 자야 하니 일찍 보내줄게'라는 말은 우리 사이에 이미 공공연하게 해오던 이야기였다.


실제로 잠이 오지 않고, 피곤하지 않아도 심리적으로 이미 이른 시간부터 스스로 '취침모드'태세로 전환했다. 그러다 문득 되돌아보니 나는 노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한국처럼 유흥을 즐길 곳도 마땅치 않지만, 코로나란 녀석 때문에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며 '놀이'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러다 지난주 주말 밤을 꼴딱 새웠다. 10시면 졸음이 쏟아지곤 했는데, 술 한 모금 없이도 멀쩡하게 밤을 새웠다.

유튜브에 추억 가득한 8090 노래를 틀어놓고 마이크를 손에 쥐지 않은 채 떼창 하던 우리. 춤추라고 권하지 않아도 알아서 들썩들썩하던 몸.


"그동안 놀고 싶었구나!"


때론 내 삶에 적용하던 생산성과 효율성을 과감히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다.  나에게 '쉼'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것이었다. 책을 읽거나, 명상을 하거나,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일.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으로 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런데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부르며, 골반이 아플 때까지 춤을 추며 '논다는 것의 미학'을 떠올렸다. 격동적인 것에 희열을 느꼈다고나 할까.



논다는 것의 미학은 끊임없이 고민하던 것을 멈추게 하고 현재를 미련 없이 즐기게 한다. 놀면서 머릿속에 고민과 걱정이 한가득이라면 제대로 놀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현재를 충분히 즐기는 것이야 말로 논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같다.


스트레스를 발산하는 통로임에도 틀림없다. 무의식은 노는 것을 진공상태로, 의식을 끊임없는 채움의 상태로 인식한다(내 피셜). 노는 동안은 생각이 머무르지 않는다. 뇌 속이라는 한정적인 공간에 정체되지 않고, 허공 중으로 떠다니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과 고민'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막는다.


'생각을 놓아주기만 해도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생각을 놓아주는 수많은 방법 중 '잘 노는 것'을

왜 잊고 지냈을까.


몇 년 전 무심코 스쳐 지나간 책이 한 권 떠오른다.

김정운 교수의 《노는 만큼 성공한다》

그땐, 제목을 보자마자 패스했다. 나를 위한 책은 아닌 게 분명했던 시기에 그 책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끔 시간을 떼어내 동심으로 돌아가는 것,

배꼽 잡고 웃는 것, 힘 빼면서 사는 것.


"완전히 비워낼 줄 아는 것"


내가 정의하는 놀이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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