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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해 Dec 26. 2018

아르헨티나 여행기

저질체력 겁쟁이의 두 번째 홀로서기

여행 1일 차 - 경유지 런던에서 잠깐 콧바람 쐬기


아르헨티나는 직행 표가 없다. 미국 경유, 유럽 경유 중 알아보다 가격이 가장 싼 런던 경유의 영국항공 표를 끊었다. 경유 시간은 무려 9시간(...). 고민하다 그 시간에 런던 시내를 나갔다 오기로 했다. 촉박하지만 3시간 정도 짬이 날 것 같아 차나 한 잔 마시고 오자 싶었다.


'히드로 익스프레스'라는 급행열차를 타면 히드로 공항에서 패딩턴역을 15분 만에 갈 수 있다. 출국 한 달 전,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싼 표를 끊었다. 더 일찍 하면 더 싸다.


레이오버를 하려고 출국심사를 하니 심사관이 꼬치꼬치 물었다.

-어디 가니? "패딩턴역."

-왜 가? "거기가 가까워서. 급행 타면 금방 가던데."

-내 질문은 그게 아니잖아. 제대로 대답해. 왜 패딩턴을 가냐고. "그냥 거기 가보고 싶어서?"

-그래, 뭐, 다음 비행기 놓쳐도 난 모른다. 서둘러. Run!


그럼 좀 빨리 보내주등가... 최근 연이은 테러로 심사가 까다로운 것 같았다.


영국 곰돌이로 유명하다는 패딩턴역


압박면접을 통과해 공항을 한참 헤매다 겨우 히드로 익스프레스 타는 곳을 발견했다. 보라색의 히드로 익스프레스 열차는 왠지 익숙했다. '음... 공항철도네.' 와이파이가 되는 기차 안에서 패딩턴 역에 대해 찾아보았다. '런던의 초기 철도 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아, 서울역이네.'


패딩턴역에 도착해 일단 급한 화장실을 가려했다. 돌고 돌아 화장실을 찾았는데, 옴멤메, 돈을 받네? 화장실 입구에 지하철역 같은 개찰구가 있고 입장료 액수의 동전을 넣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도 돈 내고 써야 한다니... 짜잘해서 그냥 참았다. 서울 지하철이 그리웠다.


12월의 런던은 오후 네 시에 해가 졌다. 원래 계획은 패딩턴역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영국 느낌 물씬 나는 곳에서 저녁이나 차 한 잔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역 밖으로 나가도 너무 깜깜해서 호텔 호텔 호텔들의 불빛뿐이었다. 점점 더 서울역 같았다.


런던의 흔한 오렌지 주스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슈퍼에 들어가 주전부리를 샀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입구에 오렌지 주스 착즙? 기계 같은 게 있어 주스도 샀다. 산 사람이 직접 짜는 거래서 순간 어떻게 하는 거지 했는데, 옆에 쌓인 공병을 집어 정수기처럼 기계 밑에 두고 버튼을 누르면 위에서 오렌지가 왜애애애애앵 갈리며 주스가 나왔다. 순도 100% 오렌지 주스. 너무 맛있어 깜짝 놀랐다. 공항에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흡입했다.


인천-> 런던행 비행기는 기내식도 한국 스타일로 나오고, 요청하면 신라면 작은 컵도 줬다. 한국 사람도 당근 많고... 근데 런던->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비행기는 게이트에서부터 분위기가 달랐다. 동양인은 나 하나 같았다. 종종 흘긋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느낌. 그렇게 또 한 번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을 했다.



여행 2일 차 - 부에노스 아이레스 입성


아침 9시경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들어왔다. 30시간여의 비행 탓에 다리가 저렸다. 우왕좌왕하다 일단 공항에서 환전을 했다. 야심 차게 장만한 배낭 때문에 무릎이 아팠다. 시내로 가는 데 2시간이나 걸린다는 버스를 탈 기력은 없었다. 사무소도 있고 제대로 돼 보이는 공항 택시는 가격이 좀 비쌌다(1,000페소 정도). 공항 택시 창구 앞에 서 있자 개인택시 기사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더 싼 가격에 해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혼자 왔고, 남미 택시 강도 같은 흉흉한 소문을 많이 접해 첫날에는 안전하게 가고 싶었다. 우버 앱으로 우버 택시를 부르는 걸 시도했는데,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어 한참을 헤매다 결국 공항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택시로 짐을 옮겨준 아저씨가 팁을 요구해 10페소 지폐를 줬던 것 같다. 당당한 팁 요구에 당황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돈 300원쯤이니 너무 적었다 싶다.


숙소는 팔레르모에 있는 게스트하우스. 들어가자마자 큰 개 두 마리가 달려들어 놀랐지만, 대만에서 주춤이다 개에 물린 전력이 있으니 최선을 다해 안 무서운 척했다. 1층에는 부엌과 널찍한 휴식 공간들이 있었고, 자는 곳은 2층이었다. 밖의 정원 안엔 작은 수영장과, 밤이면 열리는 미니 바가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금요일마다 아사도를 굽는 그릴도 있었다. 그곳에서 먹지 못한 아사도가 조금 아쉽다.


일요일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산 텔모 마켓이 열리는 날. 그 다음 일요일은 갈 수 없었기에, 씻고 지하철로 중심가로 향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도 낯설어 한참을 헤맸다. 처음엔 거리 이름으로만 된 주소(Uriarte 1000~2000 이런 식)가 너무 어려웠는데, 익숙해지니 오히려 길 찾기가 쉬웠다. 이래서 도로명 주소를 쓰는 거구나.


아르헨티나의 대통령궁인 카사 로사다 앞 전경

구글 맵을 손에 쥐고도 갈팡질팡하다 먼저 카사 로사다에 닿았다. 핑크빛 대통령궁. 여기는 화잍 하우스도, 블루 하우스도 아닌 핑크 하우스네. 핑크 하우스 앞 광장과 잔디에서 사람들이 모여 각자 쉬고, 놀고 있었다. 햇볕이 좋았고, 하늘도 좋았다. 미세먼지는 1도 없었다. 좋은 공기,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였다.


골목으로 빠져나가 산 텔모 쪽으로 향했다. 일요일에만 열리는 도시 최대의 벼룩시장. 마테차 컵과 빨대(이것도 뭔가 이름이 있었는데), 가죽 소재의 가방과 재킷들, 마팔다가 있는 소품들... 마팔다가 아르헨티나 캐릭터인 듯했다. 놀랐다. 어릴 때 꽤 좋아했는데. 쭉 돌아봤지만 딱히 당기는 게 없어 뭘 사진 않았다.


너무 피곤해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졸 뻔했다. 여기는 남미야. 정신 차려. 허벅지를 찌르며 잠을 깼다. 지하철은 창문을 열고 달렸다. 왜죠? 미세먼지는 다 여기 있나. 지하철 역사에는 몇 번 출구는 어느 방향, 이런 표시가 없어 늘 헤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겨우 숙소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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