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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Jun 13. 2021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젯밤 새벽에 꿈에서 본 시어머니

회사에 같이 일 하는 약사 팀에서 7-8명 정도가 돌아가며 주말에 한사람씩 일을 한다. 이번 주말은 내 차례였고, 그래서 금요일 밤 일찌기 잠에 들었다.

토요일 아침 8시에 일을 시작하면 되는 것이지만 밀린 내 일들도 할겸 해서 좀더 일찍 알람을 맞췄다.


근데 6개월짜리 이 앓이 하는 아기가 있는 엄마에게 알람이 무슨 소용인가.

세진이가 새벽 3시 반, 또 새벽 5시 정도에 일어나서 우는 바람에 나도 같이 몇번 일어났다.

뭐 매일 밤 있는 일이라 별로 대수롭지 않긴 한데, 어젯밤은 조금 달랐다.


잠을 몇번 중간중간 깨고 자고 하는 바람에 그 꿈을 정확히 언제 꾼건지는 모르겠다.

꿈에서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나왔는데 그냥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고밖에 표현이 안되는 꿈이었다.


***


토요일 8시-5시 일을 마치고, 남편이랑 애들이랑 집 근처 멕시칸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다 (Michoacana).

오는 길에 남편에게 꿈 얘기를 해줬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번이 내 꿈에 시어머니가 세 번째로 나오신 거였다.


남편은 자기 꿈에서 엄마가 나온 적이 없다고 그랬다.


시간이 벌써 저녁 8시쯤이었는데 남편이 시아버지 저녁 걱정을 했다.

주중에도 나는 재택 일 한답시고 5시 넘어서도 일하고 있는 날이 많아서 남편이 가족들 저녁을 다 챙긴다.


남편은 세 형제 중 둘째인데, 큰 형도 막내도 남편만큼 집안일을 책임감있게 하지는 않는다. (나도 겨우겨우 최소한으로 돕는 편이니 남편이 집안 청소, 저녁 매뉴 등 거의 전담하는 편 ...)


벌써 8시가 넘은지라 아마 저녁으로 뭘 사가도 시아버지가 안드실거라고 결론이 났고 남편과 난 결국 그냥 집에 빈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


집에 와보니 남편 예상대로 시아버지는 벌써 방에 들어가계셨다.


나는 애들하고 좀더 놀고, 책 몇권 같이 읽고나서 애들을 재웠다.

남편에게 시아버지가 주무시는지 물어보니 아닐거라고 그랬다. 그래서 같이 가서 저녁 인사를 드리자고 했다.


시아버지는 옷장 정리를 하며 사놓고 안입으신 새 옷들을 꺼내놓고 계셨다.

남편의 동생이 옷 몇 가지를 챙기고 있었다.


시아버지께 안녕히 주무시라고 인사를 드리다가 나는 남편을 슬쩍 보며 말했다.

말씀 드릴까?”


시아버지는 의아해하시며 “무얼?” 하고 나에게 물어보셨다.


어젯밤 꿈에서 에스텔라 (시어머니 이름) 가 나왔어요.”

시아버지 눈시울이 금새 붉어졌다.


윗배가 아프다고 저한테 그러셨어요.”

놀람, 안쓰러움, 걱정이 시아버지 얼굴에 동시에 떴다.

아 실수다. 이건 말씀 드리지 말걸.


그래도 키모 받기 전 처럼 긴 생머리를 하고 계셨어요. 걸어다니시기도 했구요...

그래도 통증때문에 잘 걷진 못하셔서 지팡이나 걸음 보조기를 이용하시라고 제가 꿈에서 얘기 했어요.

제가 스페인어로 말을 했는지, 아니면 에스텔라가 영어로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나네요.

그래도 우리 둘이 말이 통했어요 꿈 속에서.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 하는 꿈이었어요.

근데 꿈이 정말 생생하더라구요. 진짜라고 믿었어요 꿈 꾸는

동안에.”

시아버지의 눈이 말 없이 더 붉어진 것 같았다.


시아버지가 대답 하셨다.

항상 그렇지. 매 번 꿈마다 생생하지.”


시아버지는 나보다도 더 자주 꿈을 꾸시겠지.

함께 부부로서 30년 이상을 같이 살아오셨는데 오죽 할까.


***


작년 11월 시어머니가 병원에서 집으로 퇴원 하셨을때, 암 전문의도 또 병원 의사들도 호스피스를 권했었다.

더이상 연명을 목적으로 하는 키모 테라피가 의미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소견이었다.


시어머니는 병원 구급차를 통해 침대 째 집으로 오셨고, 또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해주는 단체에서 병원 침대을 비롯한 모든 장비들을 집으로 배달 해 주었다.


틈틈이 세 아들과 남편의 품에 의지 하신 채 걷는 연습을 하셨었다.

이렇게 연습 하시다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이 괜찮아지실것 같기도 했었다.


나는 병원 입원 전부터 시어머니가 꾸준히 봐 왔던 암 전문의에게 전화해 “애스텔라 기력이 완전히 돌아오면 호스피스 서비스를 중단하고 다시 키모테라피를 시작할수도 있다”는 희망의 말도 기어코 들었었다.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때 그런 일은 정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정도로 일어나기 힘들지요. 환자들이 퇴원 직후 반짝 하고 좋아지는 경우가 있긴 합니다만, 그 이후에 다시 급격히 나빠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라고 덧붙이는 의사의 말에 우리 시어머니는 그 대부분의 경우에 속하지 않을 거라고 속으로 기도했었다.


췌장암 4기. 아픈거 잘 참으시는 시어머니가 못 견딜정도로 심한 통증이었다.

아이 낳는 통증과 췌장암 통증을 비교해달라며 철없이 묻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차라리 아기 낳는 통증이 낫다고 얘기 해주셨다. 아기 낳는 통증에는 끝이 있지만 당신이 겪는 통증은 끝이 없다 하시며.


작년이 다 가기도 전에 시어머니는 결국 별나라에 가셨다.

(세찬이에게 남편의 형이 해준 이야기. 할머니는 별나라에 가셨다고)


시어머니가 집에서 호스피스 케어를 받고 계시는 나날 중, 어느 날 문득 “당신은 사랑 받기위해 태어난 사람” 노래 가사를 전해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괜히 남사스러운 풍경 만드는거 아닌가,

한국어-영어-스페인어 통역을 거쳐야 할텐데 괜히 어정쩡 어색한 분위기 되는거 아닌가,

별별 걱정과 핑계를 대며 결국 가사를 전해드리지 못했었다.

근데 그래서 그런지 시어머니 생각 할때마다 그 노래의 멜로디가 겹쳐진다.


사진 속에서, 비디오 속에서, 또 꿈 속에서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으로 나오시는 시어머니.

벌써 2021년 6월, 시어머니가 돌아가신지도 거의 6개월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나는 그 빈자리보다 아직 이 세상에 존재 하시는거 아닌가 싶은 느낌이 더 크다.


***


당신이 이 세상에 존재 하셨음으로 인해, 우리에겐 얼마나 큰 기쁨이 되었는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던 사람이고

지금도 그 사랑을 받고 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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