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 친구, 남편, 공부

오늘 문득 든 잡생각들의 키워드

by 장군

#커피숍


한국에서는 고등학생 나이가 되어서까지도 커피는 잘 안 마셨었다. 여고생 시절, 반 친구들끼리 날 잡아서 서울이나 명동 구경 가는 날 분위기 좋은 카페에 대여섯 명이 우르르 가서 단체로 시켜 먹었던 기억 정도밖에 없다.

내가 커피를 안 마시던 나이에 "스타벅스 마시면 된장녀래" 같은 말이 유행(?) 했었고, 그래서 스타벅스는 비싸고 사치스러운 커피만 파는 곳인 줄 알았었다.


걷거나 대중교통을 타고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미국 이민 오고 나서는 자가용이 없으면 어디 나가기가 참 힘들다는 걸 깨달았다. 특히 운전할 수 있는 나이(18세)가 아닌 고등학생 때 미국 와서 더욱 그랬다. 그 와중에 다행히도 미국에 처음 와서 사는 아파트 단지 근처에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몰이 하나 있었는데, 여기엔 옷가게, 식료품점 grocery market, 꽃가게, 음식점, 다른 잡다한 크고 작은 상점들과 함께 스타벅스가 하나 있었다.


미국에 막 와서 시차 적응 겨우 하고 나서, 아직 영어로 듣는 귀도 말하는 입도 잘 안트였던 그때.

어느 날 갑자기 막내동생이 스타벅스에서 파는 녹차 프라푸치노가 먹고 싶다고 했었다. 스타벅스는 비싼 음료만 파는 곳이라는 내 속의 편견이 아직 있을 때였지만, 큰 언니로서 당당하게 사주겠노라고 하고선 스타벅스에 도착했는데, 메뉴판에 프라푸치노가 "frappuccino"로 쓰여있는 것을 보고 괜히 긴장했었다.

f 발음은 입술을 깨물어야 한댔는데. 근데 왜 p가 두 개지? cci이면 "씨"라고 읽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무튼 여차저차 "그린 티 프라푸치노"를 시켰는데, 점원이 이름을 물었다.

내 이름을 알려줘야 하나? 동생이 마실 거니까 동생 이름을 말해야 하나? 근데 동생 한국 이름은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워하던데 ... 동생이 영어 이름 뭐로 한다고 했었지? 아, 에리카!

"엄... Erica, please."라고 당황당황 겨우겨우 얼버무렸는데, 직원이 영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 기분 탓인가 혼자서 지난 5분간의 대화를 속으로 생각하며 자기성찰(?)을 하는 동안 오더가 나왔다.

점원이 만들어서 낸 녹차 프라푸치노의 컵엔 당당히 "America"가 동생의 이름인 마냥 적혀 있었다.

(살짝 덧붙이자면, 스타벅스 직원이 이름을 물어봤을 때 그냥 주문하는 사람 이름을 말해도 되는 거였다. 지금도 이 얘기할 때마다 추억 팔면서 동생들하고 신나게 웃는다.)




#친구


여름방학 타이밍 잘 맞춰서 미국에 왔던 터라, 미국에 온 뒤 한 2-3개월은 학교도 안 다니고 집에서 빈둥빈둥 거리며 학교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미국에 와 계신 고모네 식구들이 사는 도시에 우리 가족도 따라왔는데, 네이버에 찾아보니 이 도시가 "미국의 강남"으로 불린다는, 학구열이 어마어마하다는 그런 도시였었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서로 공부 경쟁시키며 가르치는 그런 분위기일까 잔뜩 긴장했었었는데, 막상 학교 다니기 시작하니 공부 월등히 잘 하는 애, 공부는 고만고만 해도 착한 애, 공부 잘하면서 착한 애, 공부 못하면서 성격도 이상한 애, 등등 여러 사람 여러 인종들이 어우러져 각자 자기 나름의 학교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나름 단짝 친구였다고 친하게 생각했던 친구들이 점점 연락이 드물어질 때 즈음. (그래도 자기들 싸이월드에 사진들은 잘만 올라오더라, 흥.) 난 10학년 가을학기부터 학교를 시작했는데, 들어야 하는 여섯 과목들 중 내가 제일 잘 하고 좋아했던 과목은 화학 이었었다. 한국에서는 무조건 주기율표 외우고 그랬던 기억밖에 없었는데, 미국 와선 영어로 배워야 해서 단어가 조금 어려웠단 것만 빼면 막상 수업시간에는 신기하게도 첫날부터 수업 내용이 들렸었다. 물론 한 번에 이해가 싹 된 것은 아니고, 반 선생님이 칠판에 필기하면서 설명하시는걸 열심히 따라 적어와서 집에서 그 필기를 보며 모르는 단어들은 사전 찾아가며 열심히 공부했었다. (이렇게 기초를 잘 다져주신 선생님 덕에 대학교 가서도 결국 화학 전공을 했었다.)


미국에 늦게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미국 애들은 원래 단짝 개념이 잘 없는 건지, 뭔가 한국 하고는 다른 친구 관계 분위기 속에 조금씩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치어리더부에 있는, 한국인이지만 여기에서 태어난 한 친구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영어도 (물론) 잘 하고, 친구들하고 관계도 진짜 좋아 보이고, 레슬링부에 있는 잘생긴 남자 친구까지 있는, 잘 나가는 이 친구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도 난 기분이 좋았었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내가 참 쭈구리 같았던 것 같네? 꼭 그런 건 아닌데 ... 아니야 아니었을 거야!)

이 친구는 자기가 지금 화학 시간에 배우는 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같이 공부를 할 수 있냐고 물어온 것이었다. 난 "학교 끝나고 바로 도서관 갈까?" 물어봤었지만, 당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운전 시작한 이 친구는 (16-17.5살 때부터 운전을 시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교육비 등이 따로 많이 들어간다.) 혹시 집 근처에 스타벅스나 다른 공부할 곳 없느냐며 저녁 즈음에 자기가 우리 집 근처로 오겠다고 했다. 워낙 대외활동을 이것저것 많이 하던 친구라 학교가 끝난 직후에는 시간이 없었던 것 같다.


저녁에 친구가 우리 집으로 날 데리러 와서, 우리는 집 앞 스타벅스로 같이 갔다. 나 혼자 걸어서 가면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는데, 친구의 차를 타고 가니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스타벅스에서 공부를 한다는 게 의아했었는데, 가서 보니 그 시간대에 책을 펴놓고 스타벅스 안에서 밖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꽤 많았다.

기껏 공부 좀 시작 하나 했더니, 30분도 채 되지 않아 이 친구는 또 다른 일정이 있어 가봐야 한다고 그랬다. 그래도 그 짧은 시간 동안 뭔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서 당장 내일 퀴즈에 나올 내용 한두 개는 바짝 배워가는 것 같았다.

친구가 날 다시 집에 데려다주고 우리의 짧은 공부 세션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남편


생각해 보면 난 미국에 온 뒤로 딱히 "단짝친구"가 없었던 것 같다.

비슷한 시기에 온 한국인 유학생 친구들은 왠지 어울리기 어려운 느낌을 많이 받았고 (대학교 도서관 앞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은 왜 열에 아홉 다 한국사람들이었을까), 그렇다고 2세 친구들이나 미국에 일찌감치부터 와서 자리 잡은 친구들과도 뭔가 완전히 내가 속할 수는 없다는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아, 미국 와서 만난, 마음과 상황이 잘 맞았던 친구 하나가 있었다. 근데 이 친구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한국으로 다시 들어갔다.)

한국인이 아닌 친구들도, 그냥 넓게 두루두루 친하긴 했지만 이들에게서 한국 여고생 시절의 "단짝친구" 개념을 바라는 것은 조금 무리였다.

결국 그렇게 겉으로 아는 사람들 많고 인사하는 사람들은 많을지언정 마음 한구석엔 외로운 감정이 계속 자리하고 있었는데 (미국에 온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사실 그렇다. 하지만 그냥 익숙해진 것 같다), 우연히 대학교 때 알게 된 한 친구는 이런 나의 마음 다 이해하는 것 마냥 내 얘기를 항상 잘 들어주고, 또 환하게 웃어주는 모습에 내 맘을 다 열어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었다.

(엄마한테 언젠가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던 것 같다. "실험 반에 옆자리 남자애가 되게 잘 해주는데, 얘 웃는 게 참 예뻐.")


그 웃음이 예쁜 실험반 옆자리 친구는 어느새 나의 남편이 되었다.


어제 친구 문제로 속상한 작은 일이 있었다.

밤에 잠에 들기 직전에 남편에게 그 일을 얘기하면서 "나 친구가 없어"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작은 소리로 뭐라고 대답을 했는데 잘 못 들어서 다시 물어보니, 남편이 다시 "내가 너의 친구가 될거라구" 대답해줬다.

(그 뒤의 므흣한 대화(?) -- 남편 왈 "But we are friends with benefits." 그래서 내가 "No, we are friends with a baby."라고 말했다.)




#공부


대학교 2학년 때 지금의 남편을 처음 만났었다. 우리 둘 다 편입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던 터였다.

이듬해, 400마일(~ 650km)이 훌쩍 넘는 도시에 있는 대학교로 내가 편입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사귄 지 채 6개월도 되지 않아 장거리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매일매일 스카이프 화상채팅을 항상 켜놓고 같이 공부하며 나는 나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책상에 주야장천 앉아 공부를 했었다.

그다음 해에 남편도 편입에 성공하였고, 또 그다음 해엔 내가 졸업하면서 우린 약혼했다.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남편이 졸업하는 해였지만 남편이 졸업하기 3개월 전쯤의 봄방학 동안 우리는 결혼했다.


학생 시절부터 만나 공부에 공부를 잇는 삶이지만, 만난 지 햇수로 6-7년째 되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나는 약대 졸업까지 1년 반 즈음이 남아있고, 남편은 학부 졸업 후 시아버님의 사업을 도와서 일해 왔지만 이제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어 대학원 지원을 준비하며 요즘 공부를 한다.

(내가 졸업할 때 즈음 남편이 대학원에 들어가면, 나는 일 하기 시작하면서 재정적으로 남편의 공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 남편이 내 공부를 지원해주고 있는 것처럼.)


아기가 태어나고서는 서로 번갈아가면서 나가 공부를 해야 하곤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시부모님께서 아기 데리고 나들이 나가시면 우리 둘은 어김없이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같이 공부한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이나 학부생일 때처럼 더 이상 하루 종일 밖에서 죽치고 앉아있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3-5시간 안에 최대한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내려 하며 열심히 공부한다.

오늘같이 둘이서만 나와서 날씨 좋은 날 커피숍에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할 일을 하고 있노라면, 뭔가 학부생 시절 데이트하던 기억과 장거리 연애하던 때 스카이프로 서로 얼굴만 보았던 기억 등등이 섞여 옛날(?) 시절이 떠오르면서 묘한 느낌이 든다.


남편과 나, 서로 이 정도면 "단짝친구"인가 보다. 옆에 없는 누군가를 아쉬워하기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에게 항상 최선을 다 해주며 앞으로도 좋은 "친구"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다.



+ 제목 부분에 들어간 사진의 출처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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