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그 틈새
저는 커피를 무척 좋아합니다.
아침 기상 후 마시는 첫 잔은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명상의 시간을 가질 때와 그날의 일정을 차분히 정리하고 또, 읽고 싶었던 책을 읽거나 평소 메모해 두었던 글감으로 글쓰기를 시작할 때 늘 함께 합니다. 제게 커피는 영혼의 파트너 같은 존재가 되어줍니다.
특히 아침에 마시는 첫 커피에는 고유의 맛과 향을 음미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입니다. 갓 볶은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갈아서 전용주전자의 뜨거운 물을 안에서부터 밖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부어 최대한 그 원두만의 맛과 향을 끌어내려 노력합니다.
에티오피아의 황톳빛 햇살을 받고 자란 풀들과 꽃의 향, 콜롬비아의 안개 같은 구름이 걸린 안데스산맥의 기운과 케냐의 푸른 초원을 뛰노는 자유를 닮은 동물들의 눈빛을 느껴보려고 애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밤근무 전의 커피 한잔은 그 용도와 마시려는 의도가 아침과는 다릅니다. 단순히 커피가 가진 본래의 성분인 카페인을 최대로 뽑아내어 제 몸 안에서 본연의 역할을 솔직하게 수행하게 하여 잠이 오지 않기를 기대하며 비장하게 마십니다. 제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도 있겠지만 병원 근무 7년 동안 영양제인 양 마신 커피량도 상당히 많습니다. 저는 이미 카페인과 친숙하여 그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밤근무 때 진하게 마신 커피는 그 효과가 미미해서 길어야 새벽 3시쯤이면 바닥이 납니다. 오히려 이뇨작용으로 화장실을 더욱 자주 가는 부작용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잠만 쫓으려는 의도로 에너지음료까지 추가로 마시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던 중, 컨디션이 예전보다 안 좋아지는 것을 자주 느껴서 제 몸을 너무 돌보지 않고 혹사시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적을 위해 무자비하게 직진만 했구나 싶었습니다. 기분으로라도 잠을 깨우고 싶었습니다. 이후, 최근에는 밤근무 시에도 커피와 에너지음료를 마시지 않습니다.
저의 가족과 가까운 동료들은 제가 밤근무를 힘들어하는 것을 알기에 이직이나 부서이동을 조심스레 권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이미 알아보았으나 나이도 걸림돌이 되고 타 부서들도 상당수 3교대로 변경되었고 또, 타 직종들도 경기상황이 좋지 않아서 구인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근무가 힘들지만 묵묵히 견디는 것을 보며 나도 7년을 근무했지만 지내온 시간만큼 일하다 보면 어느 틈인가 조금 익숙해지겠지 하고 장담할 수는 없는 배짱으로 오십 대 중반의 또 어떤 하루를 담담하게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