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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inJ Jan 30. 2024

죽어야 사는 여자

매일 5분에서 10분 즈음 완벽히 송장이 되어본다.


최대한 몸에 힘을 빼고 편안히 눕는다. 다리도 자연스럽게 골반 너비로 벌리고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해서 옆에 툭 내려두고 등과 어깨도 지그시 눌러 땅에 닿을 수 있게 한다. 그리곤 편안히 눈을 감는다.


시체 반복 체험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습관인가?


그날의 모든 수련을 마치고 사바아사나의 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많은 요기니들이 요가의 꽃이라며 그토록 극찬하던 송장 자세, 사바아사나. 처음엔 이것도 아사나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가만 누워 있는 게 무슨 수련씩이나 필요한 일이란 말인가.


한창 새로운 아사나를 배우는 게 재미있고 신기했던 초기 무렵엔 그래서 사바아사나를 다른 방에 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나쳐야 하는 복도 즈음으로 여기고 잠깐 누웠다 다시 일어나 부족한 아사나를 조금 더 수련하곤 했다. 부지런함을 미덕으로 배운 사람이라 남들 누워 있을 때 혼자 수련을 하고 있으면 조금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해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만만하게 봤던 사바아사나의 세계는 얼마나 무궁무진한 것인가? 수련이 조금씩 깊어질수록 사바아사나에 들어가면 말 그대로 꼼짝없이 송장이 된 듯 누워있게 되었다. 그날의 수련에 최선을 다할수록 사바아사나는 행복이고 평화였다. 이후에 굳이 무언가 다른 아사나를 더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후였다. 최선을 다했기에 툭 내려놓을 수 있다. 고단한 몸을 편히 누이고 호흡을 고르며 수고한 스스로를 다독인다. 수련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심란한 날일수록 사바아사나에서 일단 멈춘다. 깊이 호흡할수록 몸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 마침내 연결되는 느낌까지도 받는다. 어느 날은 결국 내가 다시 돌아갈 곳으로 왔구나라는 안도감에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마무리하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자주 죽음을 생각했고 조금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태어난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시작이 있으면 언젠간 끝을 맺고 죽음으로 마무리하는 것은 이상할 것 없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오랫동안 죽는 일은 생각만으로도 무섭고 입 밖에 꺼내면 무언가 불운을 불러올 것 같은 외면하고 싶은 사건 즈음이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 자신의 끝을 생각하는 일은 언제나 먹먹한 일. 어리석더라도 죽음 따윈 외면한 채 이 생이 영원할 것처럼 살고 싶었다.


이번 달엔 처음으로 요가 경전인 바가바트 기타를 읽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태어나 죽을 때까지를 우리의 전부라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트만이라는 참나는 태어나기 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존재하고 잠시 현상 세계에 나타났다가 아이, 어른, 노인의 형태로 바뀌고 다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간다고.


아직 생소하기도 하고 앞으로 한참 더 공부해 나가야겠지만 지금 당장은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한 우주의 이치가 있다는 것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된다. 오늘 수련 중에 드디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아치 자세, 드위 파다 단다 아사나에서 편안함을 느꼈고 한 다리씩 드는 것도 가능했다. 이런 날일수록 사바아사나는 더 달콤한 법.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한다면 그 끝도 이렇게 달콤할 거라고 무한 긍정할 수 있는 기분으로 스륵 기쁘게 송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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