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원치 않는 두 가지 중 차악을 선택해야하는 밸런스 게임이야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현실에서 균형 잡기란 얼마나 숨막히게 아슬아슬한지!
나무처럼 한 발로 단단히 뿌리 내리듯 서야 하는 브륵샤아사나는 보기에는 편안해보여도 막상 해보면 쉽지 않다. 좌우 불균형이라 왼 다리가 오른 다리에 비해 심하게 흔들리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한 다리로 균형 잡기엔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해서 숙련자라도 그날 컨디션이나 흐름에 따라 자주 흔들린다.
김연아의 우아한 자세가 뇌리에 깊이 박혀 그런지 춤의 여왕 자세라 불리는 나타리자아사나는 좋아하는 아사나인데 양손으로 한 다리를 최대한 끌어올리면서 나머지 다리로만 서야 하는 그야말로 균형의 끝판왕 즈음이라 현실은 우아와는 거리가 멀고 애처롭기만 하다.
균형은 수련에서 중요하다.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머리서리를 하면 뒤로 넘어가지도, 그렇다고 너무 앞으로 기울어지지도 않는 지점을 찾아 머물러야 한다. 사실 앞 뒤 균형뿐 아니라 상승하는 기운과 단단하게 뿌리내리는 위아래 균형도 이루어야 모든 아사나가 조화롭다.
아나사 안에서의 균형뿐 아니라 아사나를 수련하는 마음가짐 또한 적당한 균형이 필요하다. 새롭거나 어려운 아사나를 만났을 때 피할 것인가 도전할 것인가 기로에 선다. 두렵다고 피하면 너무 발전이 없고 그렇다고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고 무턱대고 덤비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부족하지도 과하지도 않게 수련해야 하는데 적정선이란 늘 어렵다.
매트 밖 일상은 또 어떻고? 나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균형감이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가. 싱글일 때도 쉽지 않았지만 가정을 이루고 보니 이건 점입가경. 처음엔 열정이 넘쳐 남편이나 아이부터 챙겼다. 딱히 그들이 바라지도 않았는데 온 힘과 정성을 다해 밥을 차리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며 스스로 좋은 아내, 엄마가 된 것만 같았다. 남편이나 아이가 곧 나고, 내 존재 이유이자 결과 같았다. 숭고한 희생이라 착각했던 많은 행동들은 조금만 선을 넘으면 간섭이고 잔소리로 전락하여 무용한 경우가 많았다. 혼자 실망하고 이제라도 나부터 챙겨야지 마음 먹었다가도 그런데 진짜 나는 뭐지, 그런 게 있긴 한건가 암담해지길 얼마나 반복했던가.
점차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지만 여전히 적당히 좋은 부모란 무엇인가 고민한다. 건강하고 착실하게 자라고 있으니 되었다 싶다가도 막상 중2가 되니 이게 정말 최선인가, 남들처럼 선행을 더 열심히 시키거나 학원을 더 보냈어야 했던건 아닌가, 나중에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아도 난 정말 괜찮을까 심란해진다. 점점 닫혀가는 아이의 방문만큼 아이는 분명히 멀어지는데 우리의 적정 거리는 얼마큼일까 매일 혼란스럽다.
꼭 아이가 아니라도 내 삶에서 적당히란 무엇인지 헷갈린다. 좋아하는 수련만 해도 되는 건가?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닌가? 앞으로 돈 들어갈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닐 것 같은데 당장 뭐라도 돈벌이를 해야 하는 건 아닌가.
매 순간이 아슬아슬하다. 내면에서, 나와 타인과의 관계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적당히 중심을 잡아야한다.
아사나에서 균형은 복부의 힘에서 나온다. 코어 힘이 단단해야 밸런스가 잡힌다.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 힘은 유난히 어렵고 단련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여전히 복부 힘이 가장 약한데 그래도 약하다는 걸 아니까 동작을 취할 때 복부를 의식하고 힘을 잡으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몸과 마음의 균형을 의식하며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언젠간 브륵샤아사나와 나타리자사나를 편안하게 내 것으로 해낼 날 있겠지.
그러니 지금은 이상주의자도 현실론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 콱 끼어버린 답답한 인간 같지만 중심을 다잡고 이 고난도 밸런스 게임을 포기하지 않고 해보기로 한다. 적당히 산다는 건 참으로 어렵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