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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상자 Mar 06. 2023

아이 등원 시키기의 즐거움


휴직을 하고 난 후, 그동안 일하느라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그중 하나가 다섯 살 둘째 어린이집 등원시키기다. 이제 벌써 열 살이 된 첫째는 이제 친구와 만나 학교에 가지만, 그동안은 이모님 몫이었던 둘째 등원은 내가 꼭 시켜주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닐 때의 나의 아침은 원래 잘 꾸미고 다니지 않는 성격 덕에 단출했다. 이모님께 아이들 등원을 부탁드리는 일상이었기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아침에 마실 편의점 커피 하나 들고 아이들과 인사하고 나가는 게 다였다. 그야말로 내가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도 개지 않은 채 몸만 쏙 빠져나와서는 내 준비만 분주히 하고 곧장 회사로 출발했다. 그러니 우리 아이가 어린이집에 갈 때 어떤 표정으로 들어가는지, 이모님이 말씀하시는 둘째의 포토명당이 어딘지 잘 알 리 없었다. 당연히 다른 친구들의 엄마와도 마주칠 일이 적어 교류가 적었다. 일 하며 시간은 흘러가는데 무언가 놓치고 있는 듯한 아쉬움, 그래, 이젠 ‘돈’ 대신 ‘시간’을 얻었으니, 그동안 놓쳤던 것들 부지런히 해 보자!



아이 둘을 등원시키는 아침은 예상보다 훨씬 더 분주했다. 요리를 잘하지 못하는 나는, 낮에 오시는 이모님 표 밑반찬이 있어야 바쁜 아침 아이들에게 뭐라도 먹일 수가 있었다. (뚝딱뚝딱 요리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도 하다 보면 늘겠지? 흑흑) 아이들이 알아서 수저와 젓가락으로 팍팍 잘 떠먹어주면 좋겠지만, 아침부터 수다와 장난이 폭발하는 아침밥상 자리는 냅다 고성을 지르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로 혼이 쏙 빠지게 정신없다. 잠이 덜 깬 첫째는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느라 숟가락을 놓고 있고, 둘째는 종이접기를 당장 해달라며 성화다. 한 손으로는 밥을 떠서 입에 넣고, 입으로는 대답을 해주고 있으며, 다른 손으로는 종이접기 책을 뒤적인다. ‘언제쯤 알아서 혼자 먹을 수 있을까?‘ 생각을 늘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이 말을 떠올린다.


‘알아서 다 하면 그게 어른이지 애겠어.‘



그러고 나서 첫째 책가방 매 주고 머리 단정히 빗어주고 마스크 챙기고 나면, 첫째는 임무 완성! 이제 둘째는 남은 밥을 갖은 묘기(비행기가 날아간다 우와~ 입 속으로! 월드 가디언 출동! 앗! 입이 닫혀있다 오바, 사고발생 사고발생!! 이런 종류들)를 다해 입에 넣어주고, 겨우 미션을 끝내고 나면 이제 쉬를 누게 하고 양치를 해주고 얼굴을 닦아준 후 옷을 입히고 마스크를 챙겨주고 신발을 신게 하고, 그 반대로 나는 어떨 때는 (부끄럽지만) 잘 때 입던 추리닝에 롱패딩만 걸친 채 집을 나선다. 지난주 목요일부터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한 둘째는 싱싱카 타고 등원하기를 새로운 즐거움 거리로 찾았다. 익숙했던 어린이집을 벗어나 더 많은 아이들과 더 많은 규율들 속에서 지내야 하는 유치원에 보내자니 아직도 내 눈에는 어리게만 보여 잘해 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는데, 다행히 가기 싫은 내색은 보이지 않고 묵묵히 잘 가고 있다.


오늘 아침도 아이는 싱싱카를 타고 달린다. 속도가 너무 빨라 덩달아 나도 뛴다. 이제 햇살이 제법 봄스럽다. 아직 겨울 티를 벗지 못한 차가우면서도 싱그러운 공기가 내 얼굴을 스치고, 폐 속까지 깊게 스며든다. 아침에 이렇게 달려보는 게 얼마 만인지. 늘 차를 타고 출근하던 내가 맞이한 새로운 아침 풍경이다. 그것도 출근하러 가는 길이 아니라, 귀여운 다섯 살 둘째의 손을 잡고, 환하게 번지는 미소를 보며 뛰는 아침이다. 그래, 무엇이든 새롭다. 무엇이든 새로운 풍경이다. 잊고 있었지만, 매일매일의 아침은 그런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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