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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상자 Mar 23. 2023

갑자기 응급실 행, 그 후 3일

‘아.. 커피 먹고 싶다’


3일 간 심하게 앓았다. 언젠가부터 아프다는 소리를 어디에다 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자주 아프다.


엊그제도 멀쩡히 저녁을 먹고, 다른 때와 똑같이 축농증 약을 복용하고 한 3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급격한 폭풍이 몰아쳐오듯이 통증이 밀려와 화장실로 달려간 나는, 직감하고 말았다.


“또다시 그 녀석이 왔구나.”



- 갑작스러운 복통이 찾아오고

- 화장실로 달려가 힘을 있는 대로 주어 보지만 결과물은 없고,

- 속 메스꺼움이 동반된다.

- 어거지로 힘을 주고 있어서인지 온몸의 피가 하얘지는 느낌이 들면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다.

- 팔, 다리가 저려온다. 얼굴은 실제로 새하얗게 질려있다.

- 구토를 시도해 보지만 그 역시도 잘 안된다. 숨이 가빠져 온다. 헐떡이며 숨을 쉬다 보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몇 년 전 만난 적 있는 녀석, 바로 ‘급체’다.






아이들은 그때 방에서 시크릿쥬쥬 핸드폰을 1년 만에 찾았다며 신이 나서 이것저것 눌러보고 있었고, 동시간대의 나는 화장실에서 거의 쓰러져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지막이 ‘넌 할 수 있어! 이까지 꺼 지나가고 말 꺼야! 넌 할 수 있어!‘ 이런 주문을 읊조리며 말이다. 하지만 위아래 모두 꽉 막힌 채 미친듯이 몰아닥치는 통증 때문에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예전보다 심각했다. 버틸 만큼 버텨봤는데 그래, 이건 혼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00야... 00야.. 엄마 숨이 잘 안 쉬어져..  여기 좀 와 봐..”


겨우겨우 소리를 질러 첫째를 불렀다. 남편은 밥 먹고 복싱을 하러 가 있었기 때문에 남편을 먼저 불러오는 것이 급선무였다. 119 생각도 했었지만 고비를 넘기면 호흡을 찾을 수 있다고 혼자 판단했기 때문에 남편 먼저 불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동 중이었던 남편은 당연히 전화를 받지 않았고, 당황한 열 살 첫째는 엄마가 숨을 못 쉰다는 말에 놀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 핸드폰 좀..! “


“어? 알았어 엄마, 엄마 핸드폰, 엄마 핸드폰, 엄마 핸드폰 어디 있지? 엄마 핸... 여깄다! 여기 있어 엄마! 빨리!”


“그거 열어서... 네이버 찾아서...”


“이거? 이거 초록색 이거?!”


“응 그거.. 눌러!  00 복싱클럽.. 쳐.“


“00.. 복싱.. 클럽..  쳤어!!”


“걸어서.. 아빠 좀.. 빨리 오라 해.. 빨리!”


혼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겨우 했던 지시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남편이 뛰쳐 들어왔다.

“괜찮아??!! 구급차 불렀어!”

말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나는 10분 후,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갔다.






응급실에 가서는 다행히 서서히 호흡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어린지라 남편은 우리 차로 뒤따라 온다 했기에 나 홀로 휠체어에 앉은 채 의사들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고 침대에 누웠다. 의사가 배를 꾹꾹 눌러보며 윗배가 더 아픈 걸 보니 체한 증상이 맞는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 이것저것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소변검사, 엑스레이, 심전도, 피검사... 1시간 전까지만 해도 평온하게 저녁밥을 먹고 있던 내가 갑자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딱히 급하게 밥을 먹은 것도 아닌데 말이다. 딱 하나 걸렸던 건, 저녁 직후에 먹은 항생제였다. 정확히 말하면 항생제가 들어있던 약 한 움큼. 지난주 화요일, 목과 코감기 기운이 있어 이비인후과를 찾았을 때, 한 달 전 제주도에서 생고생을 했던 일이 떠올라 또다시 축농증 친구가 찾아올까 봐 두려웠던 나는 ‘축농증이 또 올까 봐 겁이 난다’ 말했고, 선생님은 그럼 엑스레이 한 번 찍어보자고 권유했다. 찍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전 축농증이 미세하게 남아 코 옆을 채우고 있는 게 보였고, 선생님은 이 정도도 그냥 방치하면 만성으로 갈 수 있으니 약 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아... 약 끊은 지 2주밖에 안 되었는데 이 약을 또 먹어야 하다니.... 마음이 착잡했지만 앞으로 동네에선 이 병원을 다니자고 마음먹었기에 의사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먹기 시작한 항생제, 11일째 되던 날 벌어진 일이었다. 아마도 항생제 과다복용으로 인해 속이 한 번 뒤집어진 게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안 그래도 건강검진 하면 위염이 있다고 나오는데 약을 1월 말부터 시작해 이리 길게 장복을 하니 멀쩡하던 속도 다 버리게 생기지 않았는가.



2시간 후 나온 검사 결과에서는 다행히 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다. 체한 것이 맞는 것으로 보이며, 나 같은 호흡 곤란 증세는 아주 심한 경우 찾아오기도 한단다. 약을 3일 치 처방해 준다고 이제 귀가해도 좋다고 했다. 밤 12시 40분. 한 시간 전 남편에게 아이들이 대기실에서 힘들 테니 먼저 들어가라 했기에, 혼자 터덜터덜 절룩절룩 잠옷 바람에 슬리퍼 채 그대로 병원 밖을 나와 택시를 잡았다.  현란한 무늬의 잠옷 바지가 조금 창피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집에서도 옷을 좀 갖춰 입고 살아야 하나, 엉뚱한 생각을 잠시 하면서 택시에 올랐다.






그렇게 3일 간, 나는 흰 죽만 먹으며 지내고 있다. 배가 간헐적으로 계속 아픈데 이건 마치 장염 때처럼 배가 콕콕 쑤시고 이리저리 통증이 쏠리는 느낌이다. 응급실에서 준 약은 제산제가 포함되어 있어 꼭 먹어야 하겠지만, 3일 남은 축농증 항생제(포함 약 5알)를 꼭 먹어야 하는지,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탈이 난 것 같은데 어쩌지, 싶어 병원에 전화를 했다. 간호사가 의사와 상의 후 말해주기를, 어차피 오늘이면 약이 끝나고 금요일에 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고 약 복용 여부를 결정하자고 했으니 항생제만 빼고 남은 약들은 먹으라고 한다. 그래서 ‘항생제 때문에 약을 먹는 건데 이 약을 빼고 나머지 약들만 먹을 필요성이 혹시 있을까요?’ 물어보니 그래도 먹으라고 한다. 먹으라고 하니 먹겠지만, 좀 꺼림칙 하긴 하다. 으아, 오늘만 도대체 알약 몇 알을 입에 넣은 거야.



이 와중에도 아이들 등원은 시켜야 하기에 겨우겨우 걸음을 떼어 외출을 나가본다. 아이는 싱싱카를 타고 달리는데 엄마만 배를 부여잡고 거북이걸음이다. 아니, 달팽이 걸음이다. 그 와중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커피를 손에 들고 걷는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너무너무 부러운 거다.

‘아.. 커피 마시고 싶다... ’  

매일 한 잔은 꼭 마셔야 하는 저 커피가 아프니까 이제서야 이렇게 소중해 보인다. 평범하던 일상이, 아프니까 달라 보인다. 이래저래 지난 십 여 년간 일과 육아에 치여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건강을 전혀 돌보지 않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원래 체력이 좋으니까, 운동 안 해서 그렇지 맘만 먹으면 잘하니까, 했던 아무 근거 없는 자신감이 이제 퍽 하면 여기저기 아픈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좀 서글프다. 하지만 서글프다고만 말하기엔 내가 운동을 안 한 거니까, 내가 나를 아껴주지 않은 거니까 이제부터라도 나를 좀 돌봐주자, 생각한다. 내일 병원엔 가지 않을 생각이다. 가면 분명히 약 다발을 받아 올 것 같아서, 이번에는 방법을 좀 달리 해봐야겠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기. 그렇게 일주일만 보내보자. 그러고서 거울 앞에 서 봐야겠다. 조금 더 건강해진 나를 만나봐야겠다. 꼭 그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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