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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상자 Apr 19. 2023

이 카페가 꼭 잘 되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집 앞에 작은 카페가 하나 있다. 하루 한 잔, 아이스 카페라떼를 사먹는 게 인생의 낙 중 하나인 나는 휴직 이후 거의 매일 이 집에 들른다. 요즘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인지라 가보고 싶은 곳들도 너무 많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꼭 이 집에 들른다. 주인의 친절함 때문이다.






2년 전, 작은 치킨집이었던 자리가 어느 날 커피숍으로 바뀌었다. 인테리어는 평범했지만 맛은 꽤나 좋았다. 당시에는 젊은 남자분이 사장님이었는데, 업무 시간의 대부분은 아르바이트 생으로 보이는 친절한 여자분이 담당하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커피O입니다~!"



언제나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웃음을 머금은 상냥한 인사는 이 곳을 자꾸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 근무가 활성화 되었던 시절이었는데, 두 아이를 곁에 두고 집에서 근무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기에 나의 '재택' 플레이스는 늘 이곳이었다. 언제나처럼 이모님께 아이들을 부탁 드리고 나는 원래 출근하던 시간, 늘 매던 가방을 들쳐 매고 회사에 가는 척 ‘다녀오겠습니다아~’ 하고는 이곳으로 향했다. 속으로는 ‘아싸아~! 오늘도 커피숍에서 일해야지~’ 신나 하면서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무언가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었다. 오전 시간에 자리를 지키던 남자 사장님 대신 여자 아르바이트생분만 보였고, 무언가 공기의 분위기가 바뀐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제서야 주변을 자세히 둘러보니 '들숨에 손님, 날숨에 돈다발'이라든지 '여기 사장님이 예뻐요'라 쓰여있는 화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혹시 사장님이 바뀌셨나요?”


궁금하면 바로 물어보는 성격답게, 바로 물었다.


"네, 맞아요. 일을 좀 저질렀습니다. 제가 한 번 제대로 잘 꾸려가보고 싶어서요."

  

수줍은 듯 웃으며 답하시는 아르바이트생, 아니 이제는 어엿한 사장님. 그때부터 이 집은 본격적으로 나의 단골집이 되었다. 새 사장님의 친절함 만큼, 이 집은 정말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말이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안타깝게도 카페엔 손님이 없었다. 재택 근무를 하며 적게는 3시간, 많게는 6시간을 죽치고 앉아 있었던 적도 있었는데, 오가는 손님은 기껏해야 네 다섯 팀 뿐이었다. 사람들의 수다 소리로 채워져야 할 공간이 조용한 BGM 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나라도 더 자주 들르고 싶었지만 코로나가 진정세로 접어들면서 다시 출퇴근을 해야했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올 해 휴직을 하게 되면서 다시 이 집을 부지런히 찾게 된 것이다. 오랜만에 왔는데도 사장님은 반가운 얼굴로 인사를 건네 주신다.



"어머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오셨네요!"



간만에 와서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고마운 마음으로 금세 전환된다.



“너무 오랜만에 왔죠? 잘 지내셨어요? 그간 장사는 잘 되셨구요?"



걱정스런 마음에,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질문을 또 바로 한다. 역시 프로 오지라퍼다. 



“요즘 너무 경기가 안좋아서요. 보면 저희만 그런 거 아니라 주변 김밥집, 반찬가게, 근처 커피가게들 다 물어봐도 다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모든 물가가 올라서, 다들 지출을 아끼시는 것 같아요.”


일하다 보면 손님들이 말씀하시는 걸 듣게 될 때가 있는데, 집에서도 고 물가 때문에 허리띠를 졸라 매는 게 느껴진단다. 외식도 줄이고, 꼭 사야하는 물건만 사면서 모두가 이 시기를 버티는 느낌이라고 하셨다. 커피만 해도 원가가 너무 올랐는데 쉽사리 가격 상승을 할 수 없어 버티고 버티는 중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요즘 대한민국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힘든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쩐지 전보다 사장님 얼굴이 더 헬쓱해 진 것 같아 마음이 쓰였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카페에 갈 일이 있을 땐 다른 데 말고 이 곳에 자주 들르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로 했다.


 




어제도 학원에 가기 전, 카페로 향했다. 그런데 먼 발치에서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가게 안이 깜깜하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쉴 새도 없이 일하는 가게인데, 이럴 리가 없는데. 깜짝 놀라서 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의자들은 그대로 놓여있었지만 곳곳에 그간 본 적 없던 티비, 전자레인지 같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아니, 이럴수가! 그저께 왔을 때만 해도 별 다른 말씀이 없으셨는데 설마. 설마~ 문을 닫으신건가? 정말?!! 아니지, 오늘 너무 급한 일이 있으셨던 걸거야... 나도 모르게 마음이 철렁했다. 코로나도 잘 이겨낸 카페였는데 어쩌나... 그 동안 버티느라 얼마나 힘드셨을까... 안타까운 마음과 속상한 마음이 뒤엉켜 문 앞을 서성거릴 뿐이었다. 복잡한 마음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떼려던 찰나, 갑자기 가게 문 안쪽 바닥에 시선이 꽂혔다.


“4월 17일 월요일, 하루만 쉬어갈게요^^ 18일은 정상영업합니다. ^^”


안내 표지가 접착력이 약해 바닥으로 떨어져있었던 것이다. 어휴~~ 그러면 그렇지! 이런 걸 미리 고지 안 할 사장님이 아니지!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다행이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카페에 들렀다. 반가운 마음에, 문을 들어서자마자 인사를 건네 본다. 


“사장님 사장님, 어제 저 진짜 놀랐잖아요. 어제 저 여기 왔었는데 불 다꺼져 있고 집기들이 막 나와 있어서 말씀도 없이 가게 문 닫는 줄 알았잖아요. 어휴 진짜 놀랐어요.”


놀란 토끼눈이 된 사장님이 묻는다.


“아, 그러셨어요? 어제 저희 집이 이사를 해서요. 여기에 좀 물건들을 갖다 놓느라구요.”


"아 그러셨구나. 보니까 오늘 쉰다고 쓰셨던 안내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더라구요. 제가 11시쯤 왔었는데 아마 그 후에 오셨던 분들도 저처럼 아마 엄청 놀라셨을거예요. 어디 가신 줄 알았잖아요. (엉엉)"







참 다행이다. 내 따뜻한 아지트가 여전히 곁에 있어줘서. 친절한 사장님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주변 테이블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왁자지껄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내 가게도 아닌데 괜시리 마음이 놓인다. 친절한 가게는 잘 되어야 한다. 그리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그 노력을 꼭 보상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살 맛 나는 세상이다. 오늘도 응원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한 발, 한 발 내딛고 사는 사람들을. 그리고 매일을 성실히 자리 지키고 있는 이 카페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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