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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콜릿상자 Feb 20. 2023

애들 둘 엄마 혼자, 2월의 제주살이는 현실이야

2월의 제주, 원래 이렇게 추웠어? ㅠㅠ


다른 사람들이 제주에 한달살기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와, 진짜 좋겠다!"를 부르짖었던 나의 머릿속을 떠올려보면 대강 이런 이미지들이었던 것 같다.




일단 에메랄드빛의 푸른 바다가 있다.

그곳에 아이들을 마음껏 풀어놓고 아이들끼리 모래놀이를 하게 하고,

그 사이 나는 아주 맛있는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다이어리를 끄적인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가지고 내려갔던 소설책을 재미있게 본다.

두어 시간 논 후에는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데, 그 목적지 역시 아이들과 나 모두 신나하는 곳으로,

이 곳에 오랫동안 있으니 유유자적하게 둘러보고 구경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운전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고 목적지를 찾아간다.






하지만 춥디 추운 2월, 2주 간의 제주살이를 마친 결과는 이렇다.  



어제밤도 새벽 3시 경 둘째가 이불에 쉬하는 바람에, 오르락내리락 아이 팬티랑 내복 가질러 갔다가 물티슈로 대충 닦고 냅다 바지랑 팬티 벗긴 후 보이지도 않는 상태에서 대충 입힌 후, 방수요 휙 걷어서 발밑에 놓고, 눈비비며 화장실 가서 손 닦고 인상 찌푸리며 다시 잠 청하기 모드, 그러다 눈 떠보면 아침 9시, 일어나자마자 아침 밥을 해야해서 쌀 씻고 밥 하고, 반찬할 여력은 도저히 없어서 집에서 싸온 김치 및 밑반찬 몇개와, 비비고 사골곰탕 등을 활용해 국물류를 채워 밥 먹이기, 그러고나서 지난 밤 빨래 해 널어놨던 빨래 개고, 설거지 하고, 어질러진 집 대충이라도 치우고, 애들 이 닦이고 씻기고 옷 갈아입히고, 나 씻고 옷 갈아입고 나면!! 거의 낮 12시다. 오마이...!  그럼 그제서야 외출 가방 얼른 챙기고 어제 찾아본 오늘의 목적지로 향한다. 내가 있는 곳이 남동쪽에 있는 남원읍이라, 왠만한 관광지는 왕복 2시간 거리다. 어제 운전을 많이 해서 오늘은 운전을 좀 쉬고 싶었는데, 아이들이 무민랜드에 가고 싶어해, 오늘도 밟는다, 나의 엑셀을...


(여행 중 끄적인 일기에서 발췌)




이런식이다. 낯선 곳에서 살아보기 프로젝트는, 철저하게 현실적이었던 것이다. 이제사 남편이 말한다.

"몰랐어? 혼자 이 추운 겨울에 가면 고생만 하다 올 거 나 알고 있었는데."


시어머님도 말씀하셨다.

"가기 전에 말하면 괜히 초칠까봐 말 안했지, 혼자서 24시간 독박육아 아니냐. 가서 쉬는게 아니라 더 힘들 것 같았다."


나만 몰랐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던 사실. 그래도 누구 탓을 하랴, 일에 사람에 치여 1년 휴직이라는 거대한 결심을 하고, 10살 5살 두 아이 데리고 그동안 그렇게도 하고 싶었던 제주살이를 해보리라, 남편 없어도 이모님 없어도 괜찮다, 한라산이 나를 위로해주고 푸른 바다가 날 반겨주겠지, 하고 떠났던 제주였거늘.  


그래도 운전하다 우연히 마주친 소가 위로해주는 것 같더라. 사는 게 원래 그런거야, 하고.



그러나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부터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되었다. 2월 1일 제주행 비행기 탑승을 하루 앞둔 날, 귀가 무척이나 아팠다. 한번도 없던 증상이었는데, 왼쪽 고막이 마치 찢긴 것처럼 통증이 있어 무척 당황스러웠다. 더럭 겁이나 이비인후과를 찾으니 의사가 '중이염' 같단다. 중이염? 그거 아기들 걸리는 병 아니예요?! 그랬더니, 어른도 올 수 있단다. 그래서 내가 '내일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어쩌죠 선생님' 하니 '취소할 수 있으면 취소하세요.' 란다. 아놔... 늘 꿈꿔왔던 여행을 이렇게 갑자기 포기할 순 없지. 그래도 가야한다니, 분명히 귀가 더 안좋아질거란다..   네....  결론적으로 선생님 말씀이 맞았다는. ㅠㅠ


그렇게 2월 1일 호기롭게 시작한 2주간의 제주 살이는 왼쪽 귀가 먹먹하다 못해 이제 거의 안 들리는 수준으로 시작되었다. 병원에서 지어온 항생제를 열심히 먹어보고 일주 후에 제주에 있는 병원엘 찾아가랬는데 이상하게 먹을수록 상태가 안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이거 느낌이 무척 안 좋은데...


게다가 2월의 제주는 바람 탓에 생각보다 무척 춥고 다소 황량했다. 그리고 수시로 흐려지고 비도 많이 와서, 도로에 차가 거의 없고 간 곳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이 2월의 제주의 장점이기도 했다. 봄여름가을, 언제나 사람들에 치일 제주가 겨울에는 이렇게 한적하다는 것, 어느곳도 대기 없이 한가지게 구경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분명 장점이기도 했다.


이제부터 조금씩 나의 첫번째 장기 여행 프로젝트이자, 독박육아 여행 프로젝트 이야기를 이곳에 풀어볼까 한다. 대단한 이야기도 없고, 맛집 멋집 정보도 없을테지만, 짐보따리 가득 차에 실어보내고 10살 딸, 5살 아들 손 잡고 시작한 현실적인 여행, 그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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