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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Apr 08. 2023

호주에서 임신하기

파트 1, 산전검진

 오늘부로 임신 18주 차!


 호주에서 아이들과 일하는 직업을 7년 넘게 하고 있는 지금, 조금 어렵게 그렇지만 운이 좋게 자연임신에 성공해서 하루하루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




 차일드케어에서 일했던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임신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다. (임신 이야기가 나오면 치를 떨며 나는 애 갖기 싫다고 말한 게 바로 나) 그 이유는 첫째로 타인의 아이를 돌보는 직업 특성상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엄청난 체력소모 그리고 감정소모인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이고 둘째로 내 아이를 키우면서 남의 아이까지 돌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내 아이를 갖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무조건 차일드케어를 떠나야지 굳게 마음먹었더란다.


 운 좋게 차일드케어를 떠나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 강사로 일한 지 1년쯤 되었을 때, 아이를 갖고 싶고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친동생이 한국에서 임신 준비를 하기 시작했고 동생이 나도 여러 가지 산전검진을 받아보는 것을 추천했다. 




그때 당시 나는 생리전증후군에 너무나도 시달리고 있어서 이 문제를 잡아보고자 Osteopath(한국어로는 정골요법사라는데... 뼈 맞춰주고 경락마사지 해주고 운동법 알려주는 Chiropractor(척추 지압 요법 치료사)와 Physiotherapist(물리치료사)가 통합된 것!)를 2주에 한 번씩 보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겪던 생리전증후군의 증상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매달 두 번씩 찾아오는 편두통 그리고 생리 일주 전부터 시작되는 감정기복이었다. 항상 편두통이 오기 전에는 어깨와 목 통증이 심해져서 그게 머리로 올라가 편두통이 온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내 평소 자세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 판단. 아니나 다를까 어깨가 한껏 치솟아서 긴장된 거북이 마냥 지내던 나의 생활 자세, Osteopath를 보며 좀 나아졌다. 그러던 중 Osteopath가 추천해 준 Natural therapist(자연요법 치료사?)가 있었으니 자신도 생리전증후군 때문에 이 사람을 찾아갔고 많이 좋아졌다며 한 번 가보라고 권유했다. 


 그렇게 찾아간 자연요법 치료사의 오피스는 한의원에 히피스러움을 열댓 스푼 퍼넣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한 세네 번 이 병원을 드다니며 침도 맞고 부항도 뜨고 생리증후군에 도움이 된다는 자연약도 처방받고 비타민도 추천받았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두 번은 찾아오던 편두통이 한 번으로 줄어든 것에 너무 행복해하며 이 문제만 잡아진다면 나도 임신 준비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쿵 드는 순간이었다. 동생이 산전검진을 받아보라고 했을 때가 이 시기이기 때문에 나는 자연요법 치료사에게 의견을 물었고 그녀가 나에게 한 GP(일반의) - 호주는 General Practitioner(일반의)를 거쳐 Specialist(전문의)에게 가는 시스템이다 - 를 소개해줬다. 




 그 당시 딱히 맘에 들고 계속해서 보는 일반의가 없던 터라 일반의를 추천받은 것에 감사하며 '뭐 별 문제 있겠어?'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일반의를 보러 갔다. 그런데 아뿔싸, 이 일반의가 또라이었네!


 예약 시간에 맞춰 도착했는데 내 진료시간을 자기 맘대로 40분이나 늦추더니 내 진료도중 내 뒷사람이 자기 시간 없다고 컴플레인을 하자 내 진료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마치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쇼를 벌이고 이 짧은 진료는 (뜨악!) 100불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추천을 받았으니 전문의 추천서라도 받아서 빨리 일을 해결해 보고자 그녀를 다시 한번 만났고 그녀는 커튼도 안쳐진 침대 위에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나에게 아주 모욕적인 언행까지 했다. 


 Pap smear(자궁암 조기 검사)를 하려는 중이었는데 클리닉이 새로 이사한 곳이 커튼이 아직 도착을 안헀다는 이 의사. 너~무 밝고 창문까지 활짝 개방되어 있는 그 방에서 나보고 다리를 벌리고 누우라는 건가 싶어서 담요 같은 거라도 없냐고 물었더니 이 창문에서 우리를 내다볼 사람이 아무도 없다며 안심하라며 누우라고 했다. 찝찝했지만 일단 누웠고 그녀는 검사를 위해 면봉으로 그곳 안쪽의 세포를 긁어냈다. 너무 민망한지라 검사를 받으면서 이 검사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 물었는데 돌아오는 그녀의 답이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이 검사가 왜 필요하냐고? 너는 그렇다 치고 너는 남편을 얼마나 믿어? 만약에 남편이 홍콩으로 출장을 간다 고쳐봐. 뭐 꼭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너의 남편이 마사지를 받으러 갔는데, 아니 뭐 거기서 뭐 섹스를 했다는 건 아니고~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가졌다고 쳐봐. 그럼 성병이 옮았겠지? 그리고 너에게 돌아와서 다시 섹스를 해. 그럼 네가 성병에 걸리는 거야. 너, 너 남편 얼마나 믿어? 그래서 이 검사를 주기적으로 해야 되는 거야."


 이 미친 여자가 하얀 형광등 밑에서 다리 벌리고 검사받고 있는 나에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그 당시에는 도저히 상황에 대한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저 빨리 침대에서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궁암 조기 검사만 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가슴도 만져봐야겠다며 가슴을 만져보는 그녀. 고개를 계속 갸우뚱하며 내 가슴이 이상하단다. 암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덩어리가 많이 졌다며 유방 초음파까지 권했다. 암인지는 모르겠다는 말이 의사 입에서 그렇게 쉽게,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도 되는 건가? 유방 초음파, 자궁 초음파 추천서를 들고 집에 오는 길,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 정신 나간 여자가 정말 제정신으로 그 소리를 한 건지 믿어지지 않았고 다시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며칠 뒤 정신 나간 일반의의 추천서를 들고 찾아간 방사선학과. 자궁 초음파를 하는 도중 방사선 전문의가 물었다. "혹시 이전에 생식기에 바이러스 감염 같은 거 걸린 적 있어요?" 가슴이 철렁- 나는 고등학교 때 학업 스트레스로 감기처럼 생식기가 붓고 가려운 바이러스에 잘 걸렸더란다. '아니 그게 지금 초음파에서 보인다고? 도대체 얼마나 안 좋은 거지?' 전문의는 초음파 상으로는 확실히 이것이 무엇이라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두 나팔관 모두가 막혀있는 상태라고 말해줬다. 너무나도 가벼운 마음으로 혼자 들어간 방사선과에서 온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옷을 갈아입고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전했고 남편은 나를 위로했다, 해결 방법이 있을 거라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준 자궁 초음파 때문에 며칠 뒤 무거운 마음으로 찾아간 유방 초음파를 위한 다른 방사선학과. 내 이름이 호명되고 방에 들어가니 너무나도 젊으신 남자 방사선 전문의가 나를 반겨주신다. '자궁 초음파에 이어 유방 초음파까지 남선생이네.' 체념하며 가슴을 한쪽씩 까고 초음파를 진행했다. 다행히 유방 초음파에서까지 문제가 있지는 않았다. 나의 가슴 세포는 그저 울퉁불퉁했던 것. (암 아니래, 의사야. 부들부들)


 마지막으로 해야 했던 피검사. 금식하고 가야 했던지라 아침에 부랴부랴 병리학 오피스(피검사하는 곳)에서 줄을 서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됐다. 병리학자는 내가 가져온 검사지를 보더니 "어, 이건 메디케어(의료보험)로 커버가 안 되는 항목이라 네가 따로 돈을 내야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녀도 그 항목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한 페이지에 적혀있던 모든 항목들이 다 priavate billing이었던 것. 그녀도 당황하며 "이게 얼마나 나올지는 모르겠는데 안 하고 싶으면 안 해도 돼. 그렇지만 나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게 중요하고 어떤 게 덜 중요한지는 말해줄 수 없어. 선택은 네가 하렴." 병리학자도 모르는걸 내가 선택할 수 있겠나요, 진짜 이 또라이 의사한테 제대로 한 방 먹었구나 싶었지만 그래도 종이에 적혀있는 모든 피검사를 진행하기로 했고 결국 나는 500불이 넘는 돈을 피검사에 썼다고 한다. 




 호주의 의료 특성상, 전문의가 검사한 결과지는 추천서를 써준 일반의에게 돌아간다. 그 말인즉슨 나는 그 또라이 의사를 또 만나야 된다는 점. 정말 죽기보다 싫었지만 그냥 telehealth(전화로 하는 진료) 퉁쳤고 막힌 나팔관 문제로 부인과 전문의의 추천서까지 받았다. 갑자기 한 달 만에 백오십만 원이 넘는 돈을 이곳저곳에 써야 됐던 그 상황에 좀 어안이 벙벙했지만 30대가 되기까지 한 번도 이런 검사를 받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좋게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문제가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았고 문제만 해결하면 모든 게 순조롭겠지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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