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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Sep 25. 2021

아이들과 일하는 것만은 피할래요

호주 유치원을 그만두고 다시 하게 된 호주에서의 구직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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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년 동안 끊임없이 달려왔던 유치원에서의 일을 그만두고 아무 생각 없이 쉬던(쉬려고 노력하던) 한 달 사이에 전 직장 동료와 브런치 약속을 잡았다. 그녀는 나보다 한 5-6개월 정도 전에 유치원을 그만두었고 현재 학원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만을 어렴풋이 들은 기억이 났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차분한 전 직장동료는 나의 근황을 조근조근 물었다. 


"아~ 유치원에서 오래 일하다 보니 애들한테 완전 질려버려서 그냥 쉬고 있어. 다음 일은 애들이랑 관련되지 않은 일을 찾으려고! 지긋지긋!" 쌓인 게 너무 많았던냥 나는 속사포처럼 랩을 내뱉었다. 말하면서도 그동안 일했던 지옥 같은 시간들이 떠올라 몸서리 쳐질 만큼 싫었다.


"아 그래? 그렇구나- 근데 나중에라도 관심이 생기면 내가 일하는데 한 번 지원해볼래? 우리가 함께 일했던 유치원의 분위기 하고는 180도 달라.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정말 위해주고 상대의 약점을 잡아서 궁지에 모는 그 유치원과는 달리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주도록 도와줘. 알아 나도 이 말이 안 믿긴다는 거, 근데 사실이야ㅎㅎ"


뭐 저런 천사 같은 곳이 다 있다냐, 그런 곳에서 일하다니 참 복 받았네 하고 그냥 흘려 들었다.




며칠 뒤, 나와 남편은 시댁으로 일주일 여행을 떠났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에 무척 자신 있지만 아무것도 안 한 지 한 달쯤 되어가니 슬쩍쿵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마음의 10%를 채워가기 시작했다. 


'아~ 뭐 지금은 시댁에 와있으니 바로 면접 볼 것도 아니고~ 일단 공고가 뭐가 떴나 확인이나 해볼까나~'


괜히 쿨한 척하며 인터넷을 켰다.


아이들과 관련되지 않은 직종을 찾아야지 했지만 이때까지 해오던 일이 아이들과 관련된 일이므로 완전 새로운 영역으로 맨땅에 헤딩하기란 살짝 무모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어떤 새로운 유치원 일 공고가 떴나 하고 검색을 하다가 문득 전 동료의 회사가 생각났다.


Shichida라고 했던가? 핸드폰 메모장 속에 저장해둔 이름을 검색창에 입력했다.


'오잉? 며칠 전에 내가 클릭해봤던 광고잖아?'


다시 한번 구인광고글을 자세히 읽어보니 내가 왜 관심을 두지 않고 그냥 넘겼는지 기억이 났다. 최소 자격요건이 "Bachelor(학사)"였고 Shichida라는 이름이 이탈리아 이름 같아서 '뭔 이태리에서 넘어온 프로그램인가? 나랑은 관련이 없네' 하고 넘겼던 것이다. (하지만 Shichida(시치다)는 일본 이름이었고 최소 자격 요건인 학사는 호주 교육 관련된 학사가 아니고서도 가능했다.)


'밑져야 본전인데 일단 지원이나 해볼까?'


그렇게 별생각 없이(하지만 살짝 기대하며) 레쥬메를 수정하고 커버레터를 작성했다.



'유치원이 아닌데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게 어떤 느낌일까?'
'근데 대체 이 회사는 뭐하는데야?'
'신뢰 가는 전 동료가 좋다고 했으니 진짜 좋은 거겠지?'
'아니 근데 심심풀이로 지원했는데 진짜 되면 나 바로 일 시작해야 되는 거 아냐?'
'아 애들이랑은 일하기 싫은데...'



INTP 특성상 지원을 하기 전까지도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다. 계속해서 차오르는 생각들을 꾹 누르고 결국 지. 원. 완. 료!


지원하고 나서 전 동료에게 나 지원했다며 문자를 보냈다. 동료는 내가 마음을 먹고 벌써 실행에 옮긴 것에 깜짝 놀라 하며 너무 기뻐했고 자기 매니저한테 내가 자신의 전 직장 동료라고 말을 해두겠다고 했다. (호주에서도 인맥은 힘이다...)




지원한 날이 토요일이었고 월요일에 우리는 시댁에서 멜번으로 돌아갔다. 10시간의 주행 중 걸려온 전화 한 통화. 모르는 번호는 안 받는 게 상책이므로 일단 무시하고 넘겼다. 그때 도착한 문자 메시지, 시치다였다! 전화 인터뷰를 하고 싶단다! 토요일에 지원했는데 월요일에 전화 오는 이 회사의 실행력에 놀라며 재빨리 폰으로 시치다 홈페이지에 들어갔고 더욱더 재빠르게 시치다에 대해 대략적인 정보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다. 지원서를 집어넣을 때는 회사 정보도 제대로 읽지 않았다... 나란 인간) 잠깐 휴게소에 들러서 쉬는 사이에 전화 인터뷰를 마쳤고 매니저는 다다음날에 면대면 면접을 보고 싶다고 했다.


'너무 빨라! 내가 맘에 드나 봐! 나는 아직 일할 준비가 안되어 있는데!'


멜번으로 돌아오자마자 면대면 면접을 보러 갔고 한 시간이면 될 줄 알았던 면접은 세 시간 만에 끝이 났다. 한 시간은 매니저와의 면접, 다른 한 시간은 매니저의 실수업을 들었고, 나머지 삼십 분은 시강 준비와 시강(그렇다 면접 보러 가서 시강까지 하고 왔다.), 나머지 삼십 분은 사장과의 virtual 면접이었다. 빡세다.


면접 끝에 나와 일을 하고 싶다며 잡오퍼를 해온 매니저와 사장. 하지만 구인광고에서 본 연봉보다 적은 실연봉에 살짝 흔들려서 집에 돌아가서 생각을 한 뒤 의사를 밝히겠다고 했다. 유치원 일을 그만뒀을 때 했던 다짐 중 하나가 '돈이 적어도 행복할 수 있는, 스트레스받지 않는 일을 하자'였는데 그걸 고새 까먹은 나 자신을 꾸짖었다. 나는 확실히 처음 경험해보는 수업 방식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전 동료의 순수한 격려와 이 일에 대한 추천을 믿었다. 이 두 가지를 기반으로 나는 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일을 같이 하고 싶다고 메일을 보냈다. 이때까지 이 회사에서 보여준 엄청나게 빠른 추진력과 적극성으로 미루어볼 때 몇 시간, 아니면 하루 안에 바로 계약서를 받을 줄 알았지만 생각보다 회신은 며칠이 걸려서 돌아왔다. 


그 이유는...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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