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 년 사이에 인터넷 커뮤니티와 친구들끼리의 대화 주제에서 핫한 소재가 있다. 아니, 10년은 된 듯한 주제다. 술자리에서 꼭 한 번쯤은 나올법한 퀘퀘 묵은 주제인지도 모르겠다.
재능과 노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우리가 이 질문에 대해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것은 "재능"과 "노력"이라는 개념의 정의가 사회적으로 명료하게 합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재능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우선,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ㆍ재능 :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ㆍ노력 :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여 애를 씀
사전적 정의에서의 "재능"은 우리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는 천부(天賦)적인 능력과는 다르다.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은 타고나는 능력과 훈련으로 습득한 능력을 아우르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반적으로 재능이라고 하면 하늘이 내린 능력, 다시 말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소질을 떠올린다. 독자의 이해를 위해 재능을 다시 정의해보자.
ㆍ재능 :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천부적인 능력 (운동신경, 가창력, 지능, 피지컬 등)
다음은 질문에 대한 구체화이다. “재능과 노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목적이 빠져있다. 아마 이 질문은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 재능과 노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것을 얼만큼 이루느냐가 이 질문의 핵심이다.
질문을 조금 더 세분화해보자.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 재능과 노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단언컨대 재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천부적인 능력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세계적인 석학이나 한 분야의 대가가 되기 위해서는,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나의 DNA가 이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타고난 재능은 중요하다.
필자는 아무리 노래를 연습한다 해도 박효신만큼 훌륭한 가창력을 가질 수 없다.
이뿐만이겠는가?
나는 10년 동안 매일매일 축구 훈련을 해도 손흥민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수학에만 매진하여 하루 종일 연구를 해도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는 될 수 없으며, 밤을 새우며 게임에만 집중한다 해도 페이커가 될 수는 없다.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아인슈타인이 될 수도, 뉴턴이 될 수도 없다. 앞에서 언급한 한 분야의 대가들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들인 노력의 두배를 기울여도 그들이 일궈낸 성과를 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만큼의 재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보면 어떨까?
“(한 분야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 분야에서 남들보다 비교우위를 가지고 성공할 수(밥 벌어먹을 수) 있을 정도를 이루기 위해서 재능과 노력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한가?” 정도로 말이다. 한 분야의 대가가 될 확률은 로또에 당첨되는 것 보다도 훨씬 더 낮은 확률이다. 큰돈을 벌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로또만 쳐다보고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흥민은 아니더라도, 중학교 축구부의 코치나 감독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허준이 교수는 아니더라도, 실력 좋은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은 될 수 있지 않을까?
페이커는 아니더라도, 실력과 재미를 갖춘 게임 스트리머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세계 최고의 보디빌더는 아니더라도, 동네에서 알아주는 몸짱이 되어 개인 헬스장을 차려 유명한 PT 관장님 정도는 될 수 있지 않을까?
뉴턴은 아니더라도, 물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해서 훌륭한 직장에 취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완벽한 Bilingual 수준은 아니더라도, 외국인과 다른 언어로 자유롭게 의사소통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위 짤처럼 꼰대 같은 이야기를 하며 어설픈 위로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재능은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에 따라 앞길을 결정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내가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는 노력해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어차피 재능 차이라며 자위하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그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면 그만인 것이다. 노력이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불가항력에 의해 타고나지 못한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한 것이다. 나는 운이 없었다고. 어쩔 수 없다고. 이미 다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가 생각난다.
두 번째는 나 스스로 안 되는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일지도 모르겠지만 필자는 단 한 번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본 적이 없다. 열심히 하는 시늉은 많이 해봤던 것 같은데, 스스로에게 부끄러움 없이 노력해보지 못했다. 과거의 내가 많이 부족했음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내가, 내가 지향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살고 싶은 것이다. 미래의 나는 지금보다 조금 더 훌륭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나의 주장일 뿐, 정해진 답은 없다. 정답이 없다면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어떨까?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평생 착각하다 생을 마감한다 하더라도 죽기 전의 나는 그렇지 않은 나보다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아주 먼 미래에, 태어난 순간 한 사람의 인생이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고 과학적으로 증명됐다 하더라도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고 살아간 내가 더 행복한 사람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