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8.19. 오후 6시 뜬금없이 필기시험 합격자 발표 문자 메시지를 받고 문자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그랬듯이 몇 번이나 내 수험번호를 합격자 명단에서 확인했다. 자주 덜렁대는 나를 믿을 수 없어서 지방직 공무원인 남편에게도 확인해보라고 했다. 계장님인 남편도 수험번호가 명단에 있다고 확인해줬다. 그땐 말이지, 그냥 여기까지 이 기분으로 끝나도 상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바쁜 계장님(남편)에게 밤마다 술상을 차리라하고 2차 3차 끝이 없는 합격 잔치를 일주일 동안 열었다.
코로나 19로 술집에 갈 수 없었던지라 어쩔 수 없이 남편은 십여 년 전 본인의 합격 잔치를 내가 해줬었던 은혜(?)를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해 필기 합격 축하 술상을 차려줬다. 힘들었던 주부로서 공시 생활 이야기, 시험후기 등 유일한 잔치 참가자인 남편에게 풀어냈다. 이런 식의 파티가 2주일째 이어지려 하자 남편은 말했다.
"요즘 국가직 면접은 예전과 다르다 하던데 당신 알아봐야 할 걸. 그래도 필기를 합격했는데 면접까지 봐야 하지 않을까"
순간 차가운 공기가 스쳤다. '그래, 이왕 시작한 거 면접까지 가보자. 그런데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 거지?'
자격증 공부 때부터 스승이었던 유튜브 선생님을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갔다. 역시 부담 없이 이것저것 국가직 면접에 대한 정보를 주셨다. 하지만 뭔가 핵심이 빠진 부담 없는 정보만 줬다.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지역에 있는 공무원 면접 준비 전문 학원도 찾아갔다. 하지만 하루빨리 학원에 등록을 하라가 핵심이었지 국가직 면접 그 자체에 대한 핵심은 말해주지 않았다. 등록을 해야 알려준다는 것 같았다.
늘 그렇듯 독학을 선택했다. 혼자 정리해 본 결과, 국가직 면접은 일단 세 개의 문제가 주어진다.
1. 5분 주제 발표
- 문제 상황-> 대안 -> 결론-> 모니터링 구상해 서술형으로 작성( 종이에 본인이 직접 10분 동안 빠르게 적어야 함)
- 내용 정리한 종이 본인이 소지 가능, 보고 말해도 되고 외워서 말해도 되고 여하튼 면접관님 앞에서 발표해야 함.
2. 경험형 질문
-본인의 삶에 관한 가치를 파악하기 위한 질문에 10분 동안 종이에 서론-본론-결론 정리해 종이에 써서 제출.
-뒤에 먹지가 있어서 위에 쓰면 아래에 복사본이 동시에 써짐. 이건 상황형 질문도 마찬가지였음
3. 상황형 질문
- 고용시장 전반에 관한 문제 또는 고용노동부 업무 중 실제로 발생했었던 또는 발생할 수 있는 난감한 상황을 제시해주고 본인이 어떻게 해결할지, 10분 동안 창의적(?) 방법 정리해 써서 제출
면접은 40분 정도 진행됨. 5분 발표에 대해 10분 정도 하고 30분은 경험형 질문과 상황형 질문에 대한 질문들이 이어짐.
4. 국가직 면접은 우수, 보통, 미흡으로 성적이 매겨지고 미흡이면 필기성적과 상관없이 떨어짐.
특히 4번이 너무너무 무서운 말이었다. '미흡'이면 무조건 떨어진다는 말은 사람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공무직 면접이나 콜센터 면접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내가 생각하는 면접이란 앉아서 묻는 질문에 답하고 돌아오는 것이었는데 문제를 던져주고 그것에 대해 서술형으로 쓰고 제출하고 발표하고 질문받고 답하고 아주 복잡해 보였다. 간단한 건 아닌 것 같았다. 난 아주 심한 악필이었다. 써내야 하는 모든 것들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점점 알아갈수록 무서워졌다. 할 수 있을까. 한양에 과거시험 보러 가는 느낌이었다. 필기시험과는 다른 차원의 무거움이 나를 눌렀다.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0월 27일이 면접이니깐. 하지만 한 달이 지나 10월이 됐는데도 위에 적어놓은 저 내용 외에 추가되는 것이 없었다. 계속 콜센터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나 혼자 아무리 파봐도 더 이상 파지지가 않았다. 삽질을 하다 큰 돌을 만났고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10월 4일 즈음,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래서 나에게 공시 생활의 모든 정보를 알려준 전한길 카페에 oo시 고노부 면접 준비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고 글을 올렸다.
거기서 '은인'을 만났다.
전화로 어디서 만날지 통화를 했는데 첫 목소리가 정말 시원했다. 이 분은 붙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분명 나처럼 커트라인 근처에 서성이는 사람이 아니고 고득점 합격자인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말 고득점이셨다. ㅎ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위에 있는 내용이 전부라 미안했다. 그분은 이미 유명 면접 강사의 강의자료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고 전화기 너머 들려온 목소리 그대로 공부로 탄탄하게 근육이 쌓인 분 같았다. 나처럼 어설프게 공부해서 어설프게 붙은 합격생과는 근본이 달라 보였다. 내가 같이 면접을 준비하자는 게 오히려 민폐 같았다.
하지만 이 젊고 시원한 목소리를 가진 합격생은 부족한 나에게 면접을 같이 준비하자며 우리 서로 잘 맞을 것 같다며 둘 다 꼭 합격하자면서 당장 내일부터 매일매일 만나서 준비하자고 했다.
그렇게 10월 5일부터 24일까지 매일 세 시간 정도 만나 저 세 개 질문에 대해서 쓰고 발표했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쓰는 시간과 발표하는 시간을 체크했다. 4차 산업혁명이 고용시장에 끼칠 영향이나 본인이 리더가 되어 갈등을 해결했던 사건 등 이런 질문에 대해 10분 만에 내용을 적고 예상되는 질문에 버벅거리지 않고 답하는 방법은 반복된 연습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었다.
면접 전날 같은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해 고양시 킨텍스가 보이는 방에 들어갔다. 면접 장소까지 걸어가 보기도 하고 사진도 찍었다. 게스트하우스엔 이미 고노부 행정직렬 면접 준비생이 한 명 더 있었다. 그 분과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짧은 시간이지만 같은 길을 걸었던 동질감 때문이었는지 금세 마음이 열렸다.
다음 날, 우린 운동화를 신으면 걸어갈 수 있는 10분 거리의 킨텍스 면접장까지 택시를 타고 갔다. 지방에서 올라와서 캐리어를 끌고 또는 무거운 가방을 메고 5센티 힐의 정장구두를 신고 걸어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셋이라 부담 없이 기본요금을 내고 택시에서 내리려는데 택시기사분이 그러셨다.
"오늘 면접 보시는 분들이구나, 어차피 필기 합격했으면 면접은 그냥 보나 마나 다 합격 아니에요?
세분 다 합격하실 거예요"
그 말이 까만색 옷을 입고 까만 머리를 하나로 묶은 우리들에겐, 그 순간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부처님 같고 예수님 같고 하느님 같고 세상의 모든 신 같았다.
나는 한 7킬로는 거뜬히 나가는 가방(두꺼운 면접 자료, 평상복, 운동화, 세면도구 등등)을 메고 또각또각 정장 구두를 신고 킨텍스 안에서 족히 2만 보는 걸은 것 같다. 실제 2만 보가 아니더라도 기분은 분명 그랬다. 어딘가로 계속 걸어가니 책상과 의자들이 있었다. 앉아서 20분 동안 경험형과 상황형 질문에 대해 글을 써 내려갔고, 또 한참을 걸어서 책상과 의자에 앉아서 10분 동안 5분 발표 주제에 대해 글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또 한참을 걸어서 면접 대기 장소에 도착했고. 그리고 또 한참을 걸어서 진짜로 면접을 보는 파티션 앞에 서 있었다.
킨텍스 강당엔 파티션으로 만든작은 사각형들이 수십 개 있었고 그 작은 사각형 한 개마다 면접관님 두 분이 앉아 계셨다.
처음부터 꼬였다. 난 문이 있는 회의실의 문을 열고 '안녕하십니까' 하고 자리에 앉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문이 없었다. 걍 스윽 파티션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었다. 불안하게 서 있으니 면접관님이 '앉으세요'했다. 일단 면접관님한테 인사하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리고 경험형과 상황형 질문에 대해 쓴 종이를 면접관님에게 드려야 하는데 그것도 잊어버렸다. 면접관님이 '주세요' 했을 때 뭘 드려야 할지 동공에 지진이 났었다.
그러자 면접관님이 '손에 들고 있는 거 주세요' 했다.
그러고 나서 그다음부터는 기억이 뜨문뜨문 난다. 조각 케이크처럼 조각 기억이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초반 목소리가 개미 목소리로 나오다가 다시 정신줄을 잘 잡아서 큰 소리로 대답을 아주 열정적으로 한 기억이 난다.
20년 면접의 핵심 키워드는 k방역에 힘입어 '적극행정'이었다. 나는 말했다.
"정세균 총리님께서 취임사에서 일하다 접시를 깨는 일은 인정할 수 있어도 일하지 않아 접시에 먼지가 끼는 일은 용인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국민을 위해 열심히 접시를 깨도록 하겠습니다.(?)"
조용히 뭔가를 쓰고 계시던 면접관님 두 분이 '접시' 얘기에 내 얼굴을 바라보셨었다. 그건 확실히 기억난다. 다른 조각 기억은 면접관님이 상황형 질문에서 '상사가 사업주와 식사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그럼에도 사업주에게 지침이 모호한 지원금을 줄 것인가"라고 물으셨던 게 기억이 난다.
니는 제법 큰 목소리로 "법의 취지가 영세한 사업주의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모호한 지침에 대해 보완할 수 있는 자료들을 마련한 후 지원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들을 했는지 앞뒤 논리가 하나도 맞지 않았던 것들만 기억이 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인사도 안 하고 자리에 앉았다니. 이런. 그렇게 수십 번 상상하고 연습했는데. 자괴감이 몰려왔다.
끝나자마자 정말 발이 삐기 직전 상태까지 가서 빨리 화장실에 달려가서 훌러덩훌러덩 불편한 옷들을 다 벗고 편안한 운동복 바지와 운동화로 갈아입었다. 살 것 같았다. 뒷문을 통해 나와보니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났던 그분이 서 있었다. 우리 둘을 기다렸다고 한다. 이런 인연이 아쉬워서 기차 시간을 바꿨다고 하셨다.
우리 셋은 6시 즈음 킨텍스에서 서울역 가는 버스를 타고 서로의 면접 답변들을 비교해보고 서로 '우수'를 받았을 거라고 격려해줬다. 나랑 비슷한 사업주와 상사의 식사 관련 질문을 받은 게스트하우스 룸메이트는 면접관님에게 갑자기 그게 점심식사냐, 저녁식사냐를 물어봤다고 했다. 왜 그런 질문을 했냐고 하니 그냥 순간 그게 궁금했다고 한다. 우리는 면접관님이 '기발하다'라고 생각했을 거라고 평했다. 각자의 면접 드라마를 한참 동안 얘기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다 져 어두워진 서울역 근처에 도착했다.
이렇게 서로 다시 못 보는 게 아쉬워서, 어떤 미래가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어서, 기차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저녁밥을 먹기로 했다. 다들 캐리어와 가방을 끌고 메고 그냥 사람들이 많아 보이는 삼겹살 식당에 갔다. 거기서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삼겹살을 먹었다. 1인분에 1만 5천 원 하는 삼겹살 3인분에 시원한 병맥주 한 병을 시켜 나눠먹었다. 생각해보니 우리 셋, 아침에 먹은 둥 마는 둥 했던 국밥 외에는 하루 종일 한 끼도 못 먹은 것이다.
그렇게 우린 그날 밤 각자의 도시로 헤어졌다.
11월 25일, 우리 셋 모두 합격 문자를 받았다. 같이 면접을 준비했던 '은인'은 이제 동기가 됐고 같은 센터에 발령을 받았다.
나는 '국가직 면접'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42년을 살아오면서 나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다. 면접을 준비하는 동안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정보를 모으고 토론을 나누고 논리적으로 체계를 세워나갔다. 결국 그대로 써먹지(?) 못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20여 일간 했던 그러한 공부의 방식이,
나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p.s
신기한 얘기 하나 해보자면, 면접 전날 밤새 적극행정에 대해 질문을 받고 답을 하는 꿈을 꿨다. 옆에서 자고 있던 나의 '은인'도 본인도 잠을 못 잤는데 언니도 잠을 못 잔 건 같더라며 밤새 면접보고 있는 것처럼 계속 중얼중얼거렸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5분 발표 주제가 '적극행정'이었다. ㅎㅎㅎ
그래서 바로 주저 없이 정 총리님 접시론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그렇게 모든 '접시'를 깨버리겠다던 신입은 현재 튀지 않으려고 매우 노력 중이며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가 되기를 희망하며 하루 종일 자리에서 서류와 싸우고 있다. 막상 조직에 와보니 '튄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과 연결되어 있었다. 난 계속 '접시를 깨 보겠다'는 저 말을 기억할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