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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l 18. 2024

'오타'야 우리 그만 헤어지자.

고용센터 김주무관의 이야기

"기업지원팀 김 00주무관입니다."

- 저 00사업장인데요. 방금 공문을 받았는데 우리 사업장에 없는 근로자 이름이 적혀 있어서요.

"네? 잠시만요. 확인해 보겠습니다"(담담한 척)

(속마음: 아니 설마 실수? 미쳤다. 큰일 났다.)


떨리는 손으로 파일을 클릭했다. 등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

a사업장 근로자의 성이 '장'인데 '정'으로 돼 있었다. 내 두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의심받을 일을 한 적이 없는 내 두 눈을 탓하고 있을 순 없었다.  


"네 확인해 보니 틀린 게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담담한 척)

(속마음: 와 이걸 팀장님한테 어떻게 말하지? 이 바보야, 몇 번을 봤는데 그걸 실수하냐)

 


내가 자주 하는 실수 하나

- 청->쳥 으로 쓰는 경우

(변명: 문서창을 작게 열어놓은 상황에서 오른쪽 네 번째 손가락에 힘이 살짝 빠진 경우 손가락이 밀리면서   'ㅓ'를 'ㅕ'로 누르게 되나 보다. )


내가 자주 하는 실수 둘

- 붙임 파일이 여러 개일 경우 1부 2부 3부라고 쓰는 경우

(변명: 미니시리즈 세대여서 그런가 끝이 ~부라고 끝나는 경우 저런 게 개인적으로 자연스럽다.)


내가 자주 하는 실수 셋

- 24년 -> 23년으로 연도 변경을 안 하는 경우

(변명: 내 시간은 23년에 멈췄다. ㅎㅎㅎㅎ 나는 아직 24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고용노동부 업무 특성상 저 세 가지의 오타는 치명적이다.

00 지청, 00청 등으로 끝나는 우리 부의 기관명이 오타로 잘못 나간다면

우리는 00쳥 소속 00 센터의 공무원이 되는 것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00쳥은 이 세상에 없다.


거의 모든 보고서에 보고자료, 통계자료 등을 '붙임'하는데 미니시리즈로 이름이 붙는다면

이건 생각만 해도 그냥 코미디다. 너무 자연스러워 보여 계속 놓치기 쉬운 오타이지만 정말 저렇게 하면 안 된다.  

 

연도별로 진행되는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앞에 연도가 달라진다면

사업장에 지원하는 지원금 액수가 달라질 있다. 이건 빙산의 일각이다. 24년 사업을 23년 사업이라고 해버리는 순간, 아찔하다. 얼마 전 TV에서 봤던 북극에서 무너져 내리는 얼음산이 떠오른다. 그냥 그런 사태가 생길 거 같다. 8급 나부랭이가 가늠할 수도 없는.


그래서 나는 보고서를 작성한 후 항상 '임시저장'을 한 후 '보고 또 보고'를 한다.

저런 오타들을 고친 후 결재를 올린다.

결재가 난 서류를 다시 본다. 이상하게 그때야 얼굴을 슬쩍 드러내는 '오타'들이 있다. (내 입장에서)


"제발, 이제 좀 우리 헤어지자."

"아니면 결재 전에 얼굴을 보여주면 안 되겠니?"


time to say good bye , 안드레아 보첼리 노래를 흥얼거려 보지만

빠른 시일 내에 '작별'은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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