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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반지 Jul 25. 2024

너는 내게 '스포카 한 산스체'

고용센터 김주무관 이야기

"니 문서 글씨체 예쁘더라. 그 글자체 이름이 뭐야"

- 저도 팀장님이 추천해서 쓰기 시작했는데 맘에 들어서 계속 그 글자체만 쓰고 있어요.

- 이름은 스포카한산스


"엥? 뭐라고? 스쿼카? 한스? 어째 히말라야인 같은데 뭐야? 물 건너온 글자야?"

- 샘도 한번 써봐요. 보고서 쓸 때부터 기분이 좋아져요.



나에게 네팔에서 태어나 히말라야 산은 두 번 이상은 정복했을 거 같은 이국적이면서도 깨끗해 보였던 글자체를 추천해 주었던 c주무관이 이번에 다른 지역의 00청으로 발령을 받고 떠나게 되었다.


c주무관은 21년 첫 발령을 같은 센터에서 받고 일을 시작한 '나의 동기'이다.

c주무관은 내가 20년 만에 4차를 갔던 그날 함께 한 유일한 동기이다.


c주무관은 등산을 좋아하고 야구도 좋아한다. 걷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항상 동기모을 마치면 집 가는 방향이 비슷했던 c주무관과 오랫동안 걸었다.


가는 동안 문득 감성으로 꽉 찬 술집이 보이면 반드시 들어갔다. 둘 다 P였기에 그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았다.


c주무관과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특히 회사에서 일어나는 풀리지 않는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고 서로에게 부담되지 않는 대안들을 찾아주었다.


조직에서 1년 차일 때, 2년 차일 때, 그리고 3년 차 됐을 때 그 시기의 고민 보따리들을 어떨 땐 걸으면서, 어떨 땐 이름 모르는 작은 술집에서 풀었다.  풀어내다 보면 어떤 것들은 형체 없이 사라졌고, 어떤 것들은 조금씩 둥글둥글해져 있었다.  


얼마 전, c주무관의 송별회가 끝난 후 열대야가 본격적으로 시작 돼 끈적끈적한 땀들이 가득했던 그 밤에도 우리는 택시를 타지 않고 걷기로 했다.


 c주무관 집으로 가는 방향으로 걷다 보면 늘 만나는 포장마차 가게가 있다. 노랑 조명을 단 배처럼 깜깜한 골목길 위에 떠 있었던 포장마차에는 손님이 너무 많아서 우리가 앉을자리는 없었다.


하지만 찜통 속 같은 그 밤엔, 몇 명만 앉아있었다.

우리는 말도 하지 않고 포장마차로 홀리듯 걸어가 앉았다.


우리 둘 다 좋아하는 과장님을 닮은 마음씨 좋은 사장님은 우리에게 '족욕'을 추천했다. 둘 다 "족욕이요?"라고 외쳤다.(힐끔 옆을 보니 정말 족욕기가 있었다.) 역시 남다른 포장마차였다.


 일단 우리는 아직 하지 못한 대화가 있었기에 '다음 기회에 하겠다' 하고 사장님이 추천한 고갈비를 먹으며 남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사장님은 이야기를 알차게 하길 바란건지 조명도 따로 켜주고 가셨다.)


c주무관은 그렇게 끝도 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드는 마법 같은 동료이다.




앞으로 나는, '스포카 한 산스체'로 글자체를 설정해 놓은 후 보고서를 쓸 때마다 c주무관이 생각날 것 같다.


히말라야에서 온 거 같은 그 글자체는

차분하게 본인의 생각을 잘 전달할 줄 알고, 단정한 곡선으로 상대방에게 안정감을 준다.


"c주무관 너도 그래. 이젠 안녕."

"새로운 곳에서도 너는 깨끗한 공기 같은 동료가 될 거라고 생각해,

"너는 충분히 그렇게 될 거야."  


<사진출처: 김주무관 핸드폰 / * 고갈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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