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로서 ‘방향’을 말한다는 것의 무게 #20250622
#1
다시 IR 덱을 열었다. 처음 이 문서를 만들었던 건 투자받겠다 결심했던 시점이었고, 그때는 무엇보다 Outcome이 하고 있는 일들을 정확히 설명하고 싶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 다시 이 문서를 펼쳐 보면서 알게 된 건, 우리가 무얼 하고 있는지보다 더 중요한 건 ‘왜 이걸 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라는 거였다. 제품 기능도, 고객 사례도, 시장 크기도 모두 채워져 있었지만, 그 위에 올라가는 단 하나의 문장, Outcome이 향하는 방향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칸을 채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을 팀을 통해, 시장을 통해, 나 스스로를 통해 실감하고 있었다.
#2
회사 운영을 하며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방향을 말해주세요”다. 팀은 내가 이 회사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 듣고 싶어 하고, 방향에 납득이 안 되면 다시 묻는다. 근거는 충분한지, 타당한 흐름인지,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물론 그게 대표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워진다. 한 번의 제안이 하나의 전략으로 해석되고, 그 전략이 근거 없는 확신으로 받아들여지면 오히려 신뢰를 잃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방향을 말하는 게 아니라, 방향을 스스로 설득받기 위해 더 오래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3
최근 가장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 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이 이 구조 안에서 얼마나 지속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첫 번째는 국내 아웃바운드 세일즈의 환경 자체가 점점 더 협소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보통신망법을 포함해 법적 규제가 강화되고 있고, 고객에게 연락 한 번 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 흐름은 되돌릴 수 없을 것 같고, 우리가 가진 방식이 제약을 넘어선 새로운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은 점점 커진다. 단순히 실행을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허락되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나는 이 모델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 수 있을지를 계속 의심하고 있다.
#4
두 번째는 아웃바운드 세일즈 방식 그 자체의 한계다. 우리가 그동안 증명해 온 것처럼 이 방식은 분명히 효과적이고, 특히 마케팅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B2B 영역에서는 거의 유일한 전략이다. 하지만 한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확보할 수 있는 리드의 수는 언제나 제한적이고, 그 퀄리티는 캠페인마다 달라진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거나, 제품의 설명이 복잡하거나, 메시지의 전달력이 떨어지면 금세 성과는 바닥을 보인다. 결국 이 방식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은 한정돼 있고, 마케팅 채널로도 접근할 수 있는 도메인이라면 그쪽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자주 멈춰 서게 된다. ‘정말 이게 정답일까?’라는 질문 앞에서.
#5
그러다 내가 다시 집중하기 시작한 건, '글로벌 고객 발굴'이라는 키워드였다. 처음부터 거창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단지 우리가 국내에서 해오던 방식이 글로벌 환경에서도 작동할 수 있을까, 그 단순한 궁금증이었다. 언어는 다르고, 타깃도 다르고, 사용해야 할 도구들도 다르지만, 시장에서 고객을 정의하고, 타이밍을 파악하고, 메시지를 보내고, 반응을 확인하며 전환을 만들어내는 이 흐름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이 구조만큼은 통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실행에 옮겨보고 있다.
#6
기존에 비해 더 복잡해졌고 낯선 영역이긴 하지만, 환경은 이전보다 우리에게 유리해졌다. 언어의 장벽은 GPT의 발전으로 무의미해졌고, 타기팅은 Apollo나 Crunchbase, LinkedIn Sales Navigator 같은 툴을 활용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충분히 가능해졌다. 메시지 작성도 점점 자동화되고 있고, 그 흐름 안에서 우리가 쌓아온 세일즈 퍼널의 감각과 실행 경험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요즘 Outcome의 기존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해외 기업 대상으로 테스트를 하고 있다. 메일이 도달하는지, 응답이 오는지, 링크드인 연결이 유의미한 대화로 이어지는지 하나하나 검증 중이다. 고객을 어떻게 발굴할 것인가 보다, 정말 가능한가를 확인하고 있는 시간이다.
#7
다만 이 흐름이 현실에서 팀을 설득하는 데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시장 가능성이 있다 해도, 아직 Outcome의 글로벌 고객 발굴 서비스에 돈을 지불한 고객은 없다. 단 한 건의 계약도 없다는 사실은 방향성을 말하는 대표에게 가장 불편한 진실이다. 팀원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묻는다. “진짜 이게 될까요?” “우리는 뭘 믿고 이걸 해야 하죠?” 나 역시 속으로 같은 질문을 한다. 여전히 Outcome이 글로벌 세일즈 시장에서 의미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을지, 그 구조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지속가능한 수익 모델이 될 수 있을지 의심은 남아 있다. 확신을 말하는 자리에 회의가 남아 있는 건, 대표로서 감당해야 할 고통이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방향이 맞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작지만, 반응은 분명 존재하고 있다. 얼마 전 Outcome이 개최한 글로벌 고객 발굴 세미나에는 1,000명 가까운 신청이 들어왔다. 이 시장에 궁금함이 있다는 뜻이고, 니즈가 있다는 의미다. 지금은 10곳과 미팅이 진행 중이고, 적어도 한 곳은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갖고 있다. 물론 숫자로 보기엔 작지만, 불확실성 속에서 의미 있는 시그널은 언제나 이렇게 작고 조용하게 시작되었다. 게다가 얼마 전 Outcome은 싱가포르 진출을 준비하는 공식 프로그램에도 최종 합격했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발걸음으로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9
Outcome은 실행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우리가 직접 고객을 정의하고, 메일을 보내고, 메시지를 만들고, 반응을 기록하며 미팅을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실행의 흐름을 구조로 정리했고, 그 구조는 이제 고객 스스로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구조를 글로벌 시장에서도 똑같이 작동시키려 한다. 언젠가는, 아침에 Outcome Agent를 열면 오늘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보내야 할지 추천해 주고, 클릭 한 번이면 발송부터 후속 액션까지 모두 자동으로 완료되는, 사람 없는 세일즈 구조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지금 Outcome이 하고 있는 일은 훨씬 더 단순하고 구체적이다. 여전히 우리는 고객이 누구인지 찾아내고, 지금 그 고객에게 어떤 니즈가 생겼는지를 포착하고, 그것을 말로 풀어내어 전환까지 이끄는 과정을 하나씩 해내고 있다. 그 실행의 축적이 Outcome의 제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