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텼고, 흔들렸고, 결국 찾았다

2025년, 사람과 선택으로 남은 한 해의 기록 #251228

by Woozik

올해를 돌아보면, 한 해를 산 게 아니라 몇 해를 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속도가 빨라서라기보다, 감정과 선택의 밀도가 너무 높았기 때문이다. 잘될 거라 믿었던 순간도 있었고, 이게 끝인가 싶던 순간도 있었다. 그래서 이 글은 성과를 정리하는 글이라기보다, 한 해를 버텨온 과정을 기록하는 글에 가깝다.


1월 ~ 3월 | 잘될 거라 믿었던 착각, 그리고 방향을 요구하는 조직

올해 초의 나는 솔직히 모든 게 잘될 줄 알았다. 작년에 투자를 받았고, 그 여파로 팀은 조금씩 커졌고 좋은 분들도 합류해 주셨다. 이제는 실행만 하면 되는 단계라고 믿었다. 그때는 ‘잘될 거라는 믿음’과 ‘잘되길 바라는 마음’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했다.

3월쯤 회사는 12명이 되었다. 그 순간부터 조직은 더 이상 느슨한 팀이 아니었다. 구조가 필요했고, 방향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확신이 필요했다. 팀원들이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방향을 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문제는, 그 방향을 나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4월 ~ 5월 | 수면 위로 드러난 한계 그리고 이탈

우리는 국내 고객 발굴 서비스를 하고 있었지만, 수작업 기반의 구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 이걸 정말 확장할 수 있을지, 자동화할 수 있을지, 그리고 이 사업이 큰 매출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을 갖고 있지 못했다.

모든 걸 직접 만들려고 했던 것도 문제였다. 제품은 모든 기능을 자체 개발하려 했고, 개발팀은 3명이었지만 속도는 나지 않았다. 개발이 느려질수록 운영 인력으로 메우기 시작했고, 조직은 체계 없이 비대해졌다. 사람은 늘었지만, 한 사람이 제대로 된 퍼포먼스를 내기 어려운 구조였다.

각자 뛰어나고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들이었기에, 방향이 하나로 정리되지 않자 목소리는 더 흩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매출이었다. 고객이 우리에게 지불할 수 있는 금액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공헌이익은 계속 줄어들고 있었다. 어떤 경우에는 제품을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도 있었다. 이 시기부터 나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꽤 구체적인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6월 ~ 8월 | 결단의 시기

6월부터는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확신이 있어서 결단한 게 아니라, 결단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게 너무 분명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손댄 건 비용이었다. 특히 인건비, 그중에서도 개발팀 인건비는 지금의 사업 단계와 전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개발팀을 정리했고, 운영팀에서도 일부 인력을 정리했다. 사람을 줄여서라도 한 목소리를 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이탈이 있었다. 몸값이 높았던 리더급 인력들은 각자의 선택을 했고, 변화의 방향에 공감하지 못한 분들도 팀을 떠났다. 팀원은 6명으로 줄어들고 회사는 6월부터 8월까지 극심한 혼란의 시간을 지나고 있었다. 그 시기 나는 스스로를 가장 많이 의심했다. 내가 이렇게 부족한 사람이었나, 내 한계가 이렇게 명확했나. 창업가로서 가장 큰 도전 앞에 서 있던 시간이었다.

그 때부터 우리는 하나의 질문에 집요하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고객은 정말 무엇에 돈을 낼까. 그때 반복해서 들려온 답이 '글로벌 고객 발굴(Go-to-Market)'이었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어려워하고, 내부에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나 역시 해외 툴들을 접하며 느끼고 있던 게 있었다. 우리가 모든 걸 직접 만들 필요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9월 | 미국에서 발견한 기회

이 방향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 Clay가 창업 이후 처음으로 Sculpt라는 빅 이벤트를 개최하였다. 이 행사를 참여하기위해서 9월 나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했다. 출국 전날까지 밤새 일을 했고, 미국 가는 날 아침이 되어서야 급하게 짐을 쌌다. 제대로 준비된 출장이라기보다는, 이 상황을 끝내기 위해 매달리듯 떠난 여정에 가까웠다.

미국에서 처음 알게 된 건 Clay Club의 존재였다. 각 국가별 호스트들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인상 깊었던 건, 그들 모두가 Clay라는 툴을 알게 된 지 고작 1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들은 단순한 사용자가 아니라 완전히 팬이 되었고, 그 기능을 제대로 활용해 각자의 나라에서 꽤 큰 비즈니스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한국과 동아시아는 아직 비어 있는 시장이라는 것,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시작하는 건 정말 잘한 선택이라는 말이었다.

나는 Clay Sculpt 행사에도 참석했다. 박물관을 통째로 대관해 각 층마다 Clay 관련 이벤트를 여는 공간이었다. 업계에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만나고, 이 시장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나는 하루 종일 Clay 공동창업자를 기다렸고, 결국 그를 만나 한국에서 Clay를 알리는 파트너십 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굉장히 유쾌한 사람이었고, 한국에서 그런 활동을 한다면 지원하겠다고 약속해주었다. 그 짧은 대화가 Clay Club Seoul의 시작이 되었다.


10월 ~ 12월 | 시장이 먼저 반응했고, 숫자로 증명된 선택

미국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본격적으로 글로벌 고객 발굴 서비스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고객의 반응은 너무 빨랐다. 미팅 한 번으로 수천만 원 계약이 성사되기도 했고, 정부 지원금 집행과 맞물리며 기업들이 우리에게 비용을 쓰기 시작했다.

9월 말부터 12월까지 매달 두세 건의 계약이 이어졌고, 12월에는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팀원 수는 6명이었지만, 제공하는 가치는 오히려 더 커졌다. 적은 인원으로도 제대로 된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체감한 시간이었다.

제품도 글로벌 발굴이라는 하나의 항목에만 집중하니, 개발속도는 놀랄만큼 빨라졌다. 기존 제품을 완전히 포기한 후 새롭게 개발하였지만, 기존보다 몇 배는 뛰어난 가치를 단 3개월만에 만들게되었다. 가장 기뻤던 점은 모두가 제품의 방향성에 공감하였고, 무엇이 필요한지 설득하지않아도 모두가 이해하고 이에 달려들었다.

12월에는 Clay Club Seoul이라는 30명 규모의 오프라인 행사를 직접 주최했고, 중동 건기식 협의체 행사에서는 대기업 회장님들 앞에서 발표를 했다. COMEUP 전시회에도 부스로 참가했다. 전시회 한 번, 대중 앞 발표 두 번. 그 모든 순간들마다 보였던 고객의 반응은 우리가 선택한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주었다.


결론 1. 만남을 축복하고, 이별을 응원하며

이 한 해 동안 사람들은 찾아왔고, 또 떠나갔다. 어제는 회사를 떠난 분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조금 과하다 싶을 만큼 비용을 드리긴 했지만,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함께했던 시간이 좋았다고,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며 누군가의 이별을 이렇게 축복할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하다 생각하였다.

12월에 한 번 회식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회사를 떠났던 분들이 거의 다 모였다. 각자 다른 곳에서 자리를 잘 잡고, 웃으면서 근황을 나누고, 즐겁게 먹고 갔다. 왜 다시 모였을까 생각해보면, 아마도 함께했던 시간이 서로에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찾아오고, 사람은 떠난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 앞으로도 어려움은 분명히 올 것이다. 하지만 어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12월을 지나며 느낀 건, 우리는 이제 잘 될거다라는 낙관을 조금씩 체감하는 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결론 2. 감사로 남은 한 해, 그리고 다음 목표

올해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돌아보면 나에게는 축복 같은 날들이 가득한 한 해였다. 주어진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고, 그만큼 나는 분명히 성장했다.

내년 1월의 목표는 단순하다. 정말 좋은 사람 한 명을 채용하는 것. 채용 박람회도 나가고, 비용도 쓰고, 시간을 들일 생각이다. 조급하지 않게, 조금씩 사람을 모으고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가보려 한다.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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