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군가의 애인이 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연애라는 백야현상│
“예전엔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매사에 엄청 까탈스럽고 부정적이었잖아? 근데 A를 만나고 나서 부터는 완전 변했어.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이래서 다들 연애 하나 봐.”
카페 유리창에 빗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어느 여름날의 오후였다. 뿌옇게 김이 서린 아이스커피의 얼음조각을 빨대로 휘휘 저으며 지인 B의 이야기를 듣던 나는 새삼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다. 새로운 남자친구와 만난 지 100일이 좀 넘었다는 그녀는 확실히 몇 달 전보다 환한 낯빛을 하고 있었다.
“그래? 잘 됐다. 너 지난 학기 내내 엄청 우울해했잖아.”
“신기해. 그냥 모든 게 똑같은데 누군가와 함께 하게 된 것만으로 세상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는 게. 이건 마치… 그래, 구원이라도 받은 것 같아.”
그 뒤로 진행된 우리 대화 주제의 90%는 그녀 남자친구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의 나이, 사는 곳, 성장 배경, 학교, 말버릇까지… 귀에서 진물이 흐르도록 그 남자의 TMI(too much information)를 들었다. 마치 다단계 소굴에 끌려간 어리바리한 신입생처럼 2시간 내내 옴짝달싹 못하고 생고문을 당한 것이다. 누군가 지나가다가 우산 끝으로 나를 툭 건드리기만 해도, 후두두 쏟아지는 물방울처럼 쉼 없이 그에 대해 읊조릴 수 있는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녀의 안부를 다시 듣게 된 것은 계절이 한 번 더 바뀌고 나서였다.
‘…술 먹자.’
전후 맥락도 없이 메시지 창에 찍혀 있는 세 음절을 보며 예사롭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다. 꼴깍.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 나서야 알겠다는 답장을 할 수 있었다. 뭔 일 있었구먼, 뭔가 있었어.
“짜잔! 서프라이즈~! 어제부로 A와 내가 1년 넘게 울고 웃으며 나눴던 약속들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답니다! 하하….”
어둠 따위는 영원히 올 것 같지 않던 사랑도 한철 백야 현상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족히 몇 시간은 운 것 같이 퉁퉁 부은 얼굴로 자신의 이별사를 줄줄 늘어놓기 시작했다.
“네가 보기에도 그 상황에서 내가 잘못한 거 같아?”
일방적으로 ‘연애 강제 종료’를 당한 쪽의 얘기만 듣고 사건의 전후 맥락을 파악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추리하려 노력했다. 사건 현장을 낱낱이 파헤친 뒤 그녀를 가해자 용의선상에서 제외해주는 일이 슬픔을 위로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 같아….”
탁-. 그녀는 텅 빈 잔을 테이블에 떨구며 부검대 위에 적나라하게 해체된 지난 연애사를 복잡한 심경으로 내려다봤다. 체내의 급격한 옥시토신 분비를 일으켰던 둘의 첫 만남부터 고혈압 쇼크의 주범이라는 코르티솔 최대치를 기록한 며칠 전 저녁까지… 둘의 연애사는 꼼꼼하게 염 처리되어 ‘지나간 시절 연애’라는 이름의 영안실로 안치될 예정이었다. 그녀는 마침내 결심이 선 듯 술잔을 두어 차례 연거푸 비우고 흰 시트 끝자락을 움켜쥐었다.
│구원의 사다리│
그녀는 일상에 권태를 느낄 때나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면, 마법처럼 누군가가 자신의 인생 길목에 뿅 하고 나타나길 바랐다. 예전에 봤던 인기 드라마에서처럼, 골목에 쭈그리고 앉아 훌쩍이는 그녀에게 우산의 한 모퉁이를 내어 줄 다정한 마음 씀씀이를 가진 이를 말이다. 그녀에게 남자친구란 답답한 일상의 구세주였고, 그와 아기자기하게 꾸려갈 연애는 권태와 고통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던 인생의 회생 절차이자 구원이었다.
“이번엔 네가 네 인생에 사다리를 내려 줘 봐. 그럼 적어도 중간에 걷어채진 않을 거 아냐.”
남들이 가꿔주는 마음의 정원—정서적 지지, 조언, 정보 공유 등—은 임대인의 기분과 변덕에 따라 언제든 통보도 없이 회수해갈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관계라는 심리적 에너지 거래의 부산물일 뿐이다. 김밥천국 정수기에 붙어 있는 문구처럼 인생의 구원도 결국 ‘셀프’인 셈이다.
연애 장례식을 치르는 내내 무덤덤한 척했지만―당사자보다 서럽게 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사실 누구보다 절절하게 그녀의 슬픔에 공감하고 있었다. 나도 한때 연애를 일상생활에 특별함을 더해주는 ‘사랑의 기적’이라 굳게 믿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연애가 끝나는 것은 곧 ‘인생의 특별함’과 ‘나의 특별함’에 대한 사형 선고와 마찬가지라고 여겼을 때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