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ie Jun 14. 2019

나는 남돌이 아닌, 나를 '덕질'하기로 했다.

나는 남돌이 아닌 나를 '덕질'하기로 했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듣게 되는 이야기들 중 비슷한 레퍼토리가 몇 개 있다. 일상에 무기력을 느낀다는 학생들에게 '왜 매사에 의욕이 안 생기는 것 같아요?'라고 물으면,  '아마 제가 소심한 완벽주의자이기 때문일 거예요.'라고 서로 엇비슷한 답변을 내놓는 것이었다. 


 완벽주의자라는 명사는 사전적으로 '결함이 없이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태도를 지닌 사람'이다. 심리학계에서는 is a personality trait characterized by a person's striving for flawlessness and setting high performance standards, accompanied by critical self-evaluations and concerns regarding others' evaluations,  자기 자신의 특징이나 성과에 대해서 무차별적으로 각박한 비평을 가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평가에 지나치게 신경 쓰며 의존하게 되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 중에서 대학 입시 원서나 회사 입사 이력서를 써본 적 있는 사람은 한 번쯤 이 《완벽》이라는 단어에 대해 깊고 얇은 고민들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바로, '당신의 장/단점을 서술하오'라는 질문 때문이다. 


 예시를 하나 들어볼까? 단점란에 '저는 가끔 이유 없는 무기력 상태에 빠지고는 합니다. 가벼운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쓰거나 '저는 분노조절장애가 있고, 수직적 조직문화에 몸서리를 치는 진보주의 성향을 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학창 시절 자주 선생님들과 트러블이 있었습니다.'라고 누군가 자신의 단점란에 적어 놓았다고 가정해보자. 당신이 기업의 간부급 심사위원이라면 부하 직원으로 채용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스펙이 화려해서 서류 통과를 했다손, 면접에 임하는 순간 심사위원들에게 핑퐁 돌려 까기를 당하고 멘탈이 가루가 되어 집에 돌아가게 될 것이다.      




  반면 단점란에 이렇게 적는다고 생각해보자. '성과 주의자로, 주변에서 가끔 지독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완벽주의적인 경향이 있어 때로 지나치게 꼼꼼한 것이 흠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굴러가고 있는 사기업이 추구하는 바에 들어맞는다. "일보다 사람이 먼저입니다^^", "가족 같은 사내 분위기^^", "수평적 조직문화^^"라고 하지만 회사는 자신의 몸과 정신을 갈아 바치는 직원을 사랑한다. 염전 노예 성향을 지닌 부하직원을 원하는 것이다. 독립심이 강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신입사원을 좋아하는 곳은 별로 없다. 당신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나 독창적인 특색으로 무언가를 개발해내는 직군이 아닌 이상 '까라면 까'야하기 때문에.      



가족같은 조직문화라며 팍씨 


 서론이 길어졌으나, 결론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비평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완벽주의자라는 얘기다. 왜냐? 자신이 스스로 세운 기준이 없어서 남들의 눈을 만족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소심한'이란 형용사, 즉 적극적으로 도전하고 개척하는 태도가 아닌 수용적인 태도가 곁들여진다면 말 그대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에 갇히게 된다. 자신에게 기대하는 퍼포먼스 기준은 이미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는데(사회적 시선, 모부의 의견, 주변 지인들과의 비교를 통해 얻은 기준) 자신의 타고난 특성상 먼저 나서서 설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할 바에/ 1등이 못될 바에/ 도드라지지 못할 바에' 엄두조차 내지 않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 국면에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10대 후반, 20대 초중반의 학생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들 중 하나였다. 엄격한 자아비판. 시도조차 하지 않는 태도.. 반면 동일 인물들에게서 놀랍도록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기도 했다. 분명 조금 전만 해도 '성공하지 못할 바에/ 1등이 못될 바에/ 도드라지지 못할 바에..'라며 손대면 베일 것 같은 까다롭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던 이들이 다음과 같은 멘트를 내뱉는 광경을 목격한 것이다.     





<웅웅, 우리 ㅇㅇ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 ♡>

<세상의 빛 oo야, 너를 위해 해가 뜨고 달이 떠. 온 우주가 너를 응원하고 있어>

<야, o.o.o. 요새 좀 잘 나간다고 이 세상이 다 네 것 같지? 하, 고작 이런 걸로 우쭐대지 마. 곧 전 우주가 네 것이 될 테니까 ♡>

<통장 벌려 돈 들어간다 ♡>

<ㅇㅇ야, 세상에 태어나 내 빛이 되어줘서 고마워. 영원히 그 빛 꺼뜨리지 않고 지킬게. 넌 행복하기만 해.>

<꽃 길만 걸어>

.

.

.     

 자신에게는 단 한 번도 해주지 않고, 하지 못했던 숱한 무한 긍정의 말들을 덕질 중엔 술술 내뱉는 기현상이다. '하고 싶은 거 다해'라고? 아까 자신에게는 '1등 못할 바엔 시작도 말아'라고 내뱉던 지독한 현실주의자는 어느새 실종되고 온데간데없다. '너를 위해 온 우주가 응원하고 있어. 그러니 기운 내!'라고? 자신이 우울하고 축 처지고 기운 없을 때 단 한 번이라도 온 우주가 응원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 있는가?  꽃 길만 걸어, 행복해, 아프지 마, 늘 응원해, 사랑해, 네가 항상 최고야, 뭘 해도 넌 멋있을 테니까....... 소심한 완벽주의자들이 무한 긍정 박애주의자로 변모한 순간이다.     


 혹시 우리는 이런 이야기들을 스스로에게 해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나 대신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찾는 연애에 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어느 날 밤, 나는 나를 덕질해보기로 결심했다. 소심한 완벽주의가 아닌 무한 긍정 박애주의자로. 물론 '나'한정.      



웅웅, 우리 엘리 하고 싶은 대로 다 해요 ♡

세상의 빛 엘리야, 너를 위해 해가 뜨고 달이 떠. 온 우주가 너를 응원하고 있어

야, 이. 엘. 리 요새 좀 잘 나간다고 이 세상이 다 네 것 같지? 하, 고작 이런 걸로 우쭐대지 마. 곧 전 우주가 네 것이 될 테니까

통장 벌려 돈 들어간다

엘리야, 세상에 태어나 내 빛이 되어줘서 고마워. 영원히 그 빛 꺼뜨리지 않고 지킬게. 넌 행복하기만 해.

엘리, 꽃 길만 걸어♡         


언젠가 내 생일에 나도 지하철에 사비 털어서 만든 광고를 걸어보겠다 ^^




오글거려도 나름 쓰면서 재밌었다.

여러분도 당장 한번 해보시길.      









(*https://en.wikipedia.org/wiki/Perfectionism_(psychology))                      



작가의 이전글 부족한 사람끼리 모이면 더 부족하지 않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