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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l 15. 2019

누군가를 간절하게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


 "아무래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까요."

 "음. 그렇다면 조직에 속한 사람은 고립감이나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건가요?"

 "꼭 그렇다고 보기는 힘들죠. 군중 속의 고독이란 표현이 왜 있겠어요?"


 「저는 오늘자로 프리랜서임을 선언하는 바입니다」라고 공표한 적은 없지만,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지내다 보니 나를 프리랜서라고 지칭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종종 외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일이 있을 때 '혼자 일하면 고립된 느낌을 느끼지 않겠냐'는 물음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데요?라고 되물으면 이 글 서문에 쓰여 있는 말이 오토매틱 하게 재생된다.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니까요'라고 고대 그리스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고 나서는 곧이어,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표현을 덧붙이며 데이비드 리스먼의 저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을 들먹이곤 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뭔지.

  요 며칠 전에 엄마와 나눴던 얘기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래도 가족은 있어야 하는 거야."

 "왜?"

 "그래야 노년에 덜 외로워."


 새로운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외로움에 대한 단기/장기성 보험 같은 개념인 걸까? 사람들은 이토록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구나. 그래서 물보다는 더 진하게 자신의 몸에 끈끈하게 달라붙은 성질의 것인 피를 원하는 것인가? 엄마는 이어서, "한 사람을 믿는 과정을 통해서 세상을 향한 믿음을 키워가는 것이지."라고도 덧붙였다.  


 그들의 이야기가 틀렸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마 자신들의 지난 삶의 궤적을 통해 얻은 경험담이나 그로 인해 퇴적된 감상을 들추어 보여준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므로. 누군가에게 소속되어 있다는 느낌,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주는 안정성이 있다는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언급하지 않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누군가를 믿지 않아도 '괜찮은' 상태의 가벼움이다.


 간단한 현실적인 예를 몇 가지 들어보도록 하자.  

 가령 남자 친구가 밤늦게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진다고 할 때마다 '집에 들어가면 연락해'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불안한 마음에 잠자리를 뒤척이는 일이 없다거나, 세간에 크고 작은 이슈거리들이 터질 때 서로의 사상 검증을 한답시고 붙들려 앉아 취조를 당할 일도 없으며, 누군가의 심중을 떠보거나 심증만으로 의심할 일도 안 생긴다. 물론 사회생활 속 인간관계에서도 타인을 향한 적당한 수위의 경계와 의심은 멘탈 관리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강남역을 지나갈 때마다 사이비 단체에서 나온 사람들에게 손목을 붙잡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느라 전 가산을 탕진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다만, 관계의 형태에 따라 무조건적인 믿음을 주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얘기다. 1촌 관계의 가족도 그러한데 하물며 0촌인 부부 관계는 오죽하리오. 슈퍼 컴퓨터로 예측하는 일기예보도 틀리는 마당에 '열 길 불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는' 그 속을 어찌 덮어놓고 믿는다는 말인가. 하물며 성경 속에 등장하는 유대인의 유일신 속도 알기 힘들다.

 

 슈퍼컴퓨터도 내일 날씨를 몰라,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들이 수천수백 년 동안 섬기는 유일신의 의중을 몰라,

 하물며 부처님, 알라 속은 알까?  

 심지어 루시퍼도 모른다!

 (... 나를 묶고 가둔다면 사랑도 묶인 채.. 미래도 묶인 채.. 커질 수 없는데.. 나 쓰러질 때쯤 다가와서 천사같이 사랑해란 말 누가 진짜 너였는지 알다가도 헷갈리게 만든다..)


미드「루시퍼」의 한 장면

 

근데 어떻게 일개 평범한 소시민이 고작 며칠 몇 날 알고 지낸 사람 마음을 헤아린다고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떠오르는 엄마의 말,


 "야야, 구더기 무섭다고 장 못 담그나?"


 요새는 편의점에서도 다 팔더라고요. 굳이 집에 장독대 들여놓고 간장 부어가며 장 만들 필요 있나요. 스트레스받으면서 에너지 쏟기 귀찮네요. 그냥 로켓 배송으로 주문하고 남은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서 도리토스 먹으면서 넷플릭스나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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