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요양 병원에 들어가는 큰 이모에게 말했다.
슬퍼하지 마.
억울해하지 마.
우리네 인간은 모두 1백 년을 채 살지 못해.
그렇게 큰 이모에게 말했다.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해 요양 병원에 들어가는 환자에게 위로랍시고 내뱉은 말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 말은
병석에 누워 있는 큰 이모를 내려다보며 슬픔이란 관념적인 감정을 꼭꼭 씹어 삼키고 있는 나를 향해 던진 말이었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그때의 나는 스스로에게 그리 수없이 되뇌고 있었다.
"인간은 모두 고통 속에 살다 죽음을 향해 매시간 매분 매초 달려가고 있어. 이 방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반백년도 더 살지 못할 거야. 이 말이 위로가 되길 바라."
나는 일부러 더 모질었다.
극복할 수 없는 슬픔 앞에선 차라리 그런 건조함이 나았다.
비워지는 이층짜리 집.
그 집의 다락에서 나는 오랜 앨범들을 발견했다.
이미 요양 병원에 가 있는 큰 이모부,
몇 년 전 타계한 외삼촌,
이제는 얼굴조차 마주하지 않는 사촌들...
삶보다 죽음에 가까운 이들의 젊음이 사진으로 박제되어 뽀얗게 먼지를 뒤집에 쓴 채 한 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케케묵은 먼지가 창틀을 통해 쏟아지는 햇볕 사이로 반짝거리며 산란하는 오후였다.
나는 먼지 더미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앨범을 펼쳤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웃고 있었다.
젊음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시선을 앵글을 너머로 던지며.
그중에는 나의 생물학적 아빠라는 사람의 스크랩북도 섞여 있었다.
그가 공군 시절일 적 만들었던 스크랩 북에는 그의 젊은 시절이 포르말린 용액 속에 넣어진 박제 본처럼 수장되어 있었다.
그렇게 증오하던 사람.
기억 속에 미움으로만 남겨진 사람.
한때,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사람.
그 남자가 10대 시절의 젊은 모습을 한 채, 나를 향해 흑백 프레임 너머로 환한 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내면의 흉터 조직 덩어리가 움틀 거리는 기분.
그에게도 있었구나, 싶어서.
이렇게 빛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는 10대와 20대 시절이.
어쩌다 이렇게 모든 것이 허물어져 버리게 되었을까.
어쩌다 한 인간이 저리 낡아 버리고, 녹슬어 버리게 되었을까.
그리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빛날 때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시간과 세월, 가난과 현실의 무게에 녹슬어 버리기 전,
불운의 화살에 당신들의 영혼을 관통당하기 전,
반짝반짝 빛나던 시기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그때 그 시설의 당신들은 내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어떤 꿈을 꾸고, 어떤 희망을 품고 살고 있었을까?
요새 어떤 일에 가장 신이 났는지,
어떤 날 속이 가장 상했는지,
시들기 전의 그대들과 만나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어 볼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당신들이...
벌레가 되기 전.
'작은 신'이었던 시절의 노랫소리를 듣고 싶다고.
그 작은 노랫소리와도 같은 이야기들을 밤을 새워 다정하게 들어주고 싶다고,
그런 부질없는 생각이 들었던 오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