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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유 Metaphor Oct 22. 2023

편식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세요

사랑은 작은 물음에서 시작된다

"어디 있었니?"
"지금은 어디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

'1-800-273-8255' 중에서

  사람이 편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삶이 폐허이기 때문이다.




  뭐 하니? 어디 있었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밥은 먹었니? ···기분이 어떠니?


  질문은 가벼울수록 일상의 냄새를 짙게 풍긴다. 누군가 내 삶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 누군가 내 삶에 깊게 관여하고 싶어 한다는 것. 누군가 내 안중을 궁금해하고, 나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한다는 것. 가벼운 질문은 애정이다. 물음들은 온화한 공기가 되어 나를 감싸고, 그것들에 둘러싸여 무엇인가 저면으로부터 채워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 그래, 사랑이다. 사랑은 물음이다. 묻는 것으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가끔, 우리는 누군가 가진 것들을 미루어 그가 가진 사랑의 총량까지 계산하려 한다. 녀석은 집과 차가 있으니, 행복하겠지. 녀석은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으니, 안정감을 느끼겠지. 녀석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으니, 가난과 배고픔 따위는 모르겠지. 녀석은 양친과 형제들이 있으니, 고독과 외로움 따위는 모르겠지.


  사람이 편식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삶이 폐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폐허 가운데 놓인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거나, 그저 그만두고 싶다거나,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건 반드시 엄청난 슬픔을 당했기 때문이라거나, 곁에 두던 어떤 소중한 존재가 사라지는 등, 급작스러운 일을 겪은 까닭만은 아니다. 그건 온화한 공기가 되어 나를 감쌌던 그 작은 물음들의 흔적을 어느샌가 찾을 수 없게 되고, 그 온기가 어느덧 내 몸에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풍화작용에 점점 깎여나간 그것들이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둘러싸던 만물들은 삽시간에 폐허로 변한다.


  폐허가 찾아오는 까닭은 내가 가진 것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 점진적인 상실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잃어버린 물음들이 마침내 내 삶에 남아있지 않음을 느낄 때, 폐허는 찾아온다. 우리의 삶은 급격히 생기를 잃고 차가워져 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간이길 포기한다. 인간이길 포기하고, 평범한 일상마저 포기한 채, 그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무언가만을 하려 한다. 출근도, 일도, 인간관계도, 월급도, 빚도, 사랑도, 슬픔도 모두 골고루 먹어야 하지만, 편식한다. 대충 씹어 맛보는 시늉만 하고, 도로 뱉어낸다. 그렇게 일상을 편식하다 보면, 삶은 오늘 밤에서 끝나지 않고 기어이 내일 아침을 보여주기도 한다. 편식해서, 내일을 볼 수 있다면. 편식해서, 내일을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그렇게 일상을 편식하다 보면 습관이 되고, 이상한 구석이 하나 둘 늘어간다. 어쩔 수 없다. 편식하지 않으면 죽는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의 생각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이유는 별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편식하며 살기에 그렇다.


  그러니 우리 전화를 걸자. 누구라도 좋다. 전화를 받거든 대뜸 묻자. 오늘은 무얼 했니. 지금 어디니. 밥은 먹었니. 요즘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사니. 작고 하찮은 물음들을 건네자. 그것들은 수화기를 넘어가며 거짓말처럼 온기를 얻는다. 그 하찮은 것들에 온기가 담긴다. 궁금하지 않아도 좋다. 의도가 없어도 좋다. 푼수 같은 속 빈 물음이라면 더욱 좋겠다. 그 작고 하찮은 물음들이, 누군가 무엇이든 골고루 먹을 수 있게 해준다면. 그 푼수 같은 물음들이, 누군가에게 온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


  그래, 사랑이다. 사랑은 물음이다. 묻는 것으로부터 사랑은 시작된다.




서두에서 인용한 '1-800-273-8255'는 미국 국립 자살 예방 생명의 전화(National Suicide Prevention Lifeline, NSPL)의 전화번호다. 래퍼 'Logic'은 해당 전화번호를 곡 제목으로 삼아, 자살하려는 이들의 감정과 의도를 수면 위로 끄집어내고 그들을 위로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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