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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부리 Dec 20. 2022

호주 트레인에서 무궁화호를 떠올리다

엄마는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창원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었고 아빠를 만나 연고도 없는 곳에서 정착해 3명의 자식을 낳고 고향을 떠나 아직도 남쪽바다에 살고있다. 

어린 시절 내 기억 속 엄마는 전화통화를 할 때면 서울말을 썼고, 또래친구들의 엄마들 중에 젊은 편에 속했으며 상냥한 말투가 너무 좋았다. 일주일마다 동네에 찾아오는 이동식 도서관에가서 책을 한가득 빌려와서 밤마다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가 좋았다. 

엄마와 함께 서울에 가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온 가족이 기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외갓집에 가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이었다. 터널이 나오면 멍멍해 지는 귀, " 야 밤이다 눈 감아라!" 하면서 자는 척 시전하는 동생과 함께 터널을 지나는 찰나의 모험, 간식카트를 끌고 오는 역무원이 우리칸으로 오기만을 기다리며 엄마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는 간사한 어린이가 탄 무궁화호. 

무궁화호에서 우리 가족은 꽤 특권을 누린다고 생각했었다. 가족이 많기때문에 좌석을 항상 마주보고 앉을 수 있었기때문에 (ㅎ) 의자 아래에 있는 발받침을 누르면 기차 좌석이 돌아가서 서로 마주보고 갈 수 있는 형식이 된다. 주위를 보면서 '훗, 우리는 이렇게 재미있게 간다' 고 생각하며 우쭐거렸다. 

순수하고 경험치가 부족한 나는 그게 가장 저렴하고 오래걸리는 무궁화호라는 걸 몰랐기때문이겠지? 

한국에 지하철이 있다면 호주에는 트레인이 있다. 2층 트레인이 호주의 대표적인 이동수단인데, 손으로 좌석 손잡이를 당기면 앞뒤로 조정이 가능하다. 얼마든지 2인석을 4인석으로 또는 3인석을 6인석으로 만들 수 있다. 사람이 많이 타지 않을 때는 거의 혼자서 6인석으로 만들어서 편하게 다닐 때도 많다. 한화로 대략 3천원정도를 내면 기차를 타고 혼자 6인석에 앉아 갈 수 있다. 

좌석 손잡이를 당겨서 움직일 때 마다 이토록 별 것 아닌일이 어린 시절 나에게는 너무 특별했고, 엄마에게는 당시 인생에 몇 번 오지 않는 서울 친정행이었다는 것을 호주의 구닥다리 트레인에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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