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히 손을 맞잡은 두 사람, 꽃이 만개한 사과나무 아래를 걷고 있어요. 둘 사이에는 어떤 말들이 오가고 있을까요? 그저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들이겠지요. 굳이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괜찮아요. 긴 시간을 함께한 서로는 이미 많은 것에 대해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냥 이렇게 손을 잡은채 걷는 것 만으로도 서로에 대한 감정은 충분히 전달되고 있을 거예요.
두 사람이 걷고 있는 길. 그 그림 속 사과꽃의 달콤한 향기가 저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앙리 마르탱(Henri Martin, 1860-1943)은 사과나무를 배경으로한 연인들의 자주 그렸어요. 이 그림에 등장하는 이들은 모두 마르탱 자신과 아내 마리(Marie-Charlotte Barbaroux)의 투영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림에서도 서로를 존중으로 대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요.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이 무척이나 크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아내에 대한 사랑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면 애처가, 혹은 팔불출이라 하며 부정적으로 대했던 것 같아요. 서양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진 않았겠죠. 특히 당시가 1800년대 후반 임을 감안한다면 이렇듯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란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럼에도 이러한 모습들을 그리다니, 앙리 마르탱은 진정한 사랑꾼 임에는 틀림이 없어요.
평범하고 싶었던 천재
1860년에 태어난 앙리 마르탱은 17살 되던 해, 고향인 툴루즈의 미술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요. 이후 '마리'를 만나 연애를 하게되고 그는 2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마리와 결혼하게 됩니다.
마리탱은 어린 나이 때 부터 그림에 두각을 나타냅니다. 파리로 이주한 그는 시 장학금을 받으며 프랑스 낭만주의의 거장이라 할 수 있는 장 폴 로랑을 스튜디오에 제자이자 조수로 들어가게 됩니다. 23살인 1883년에 파리 살롱에 입상하며 메달을 받게 되고 3년 후 첫 전시회도 열게 돼요.
1896년에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그의 작품이 대상을 받게 됩니다. 가히 그의 커리어는 승승장구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번잡한 도시 파리를 떠납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그에게 늘 북적이는 파리는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게다가 당시 파리는 '벨 에포크'라 불리는 황금 시기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도시는 매일을 환락과 화려한 불빛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는 프랑스 남부 롯(Lot)지역의 작은 시골 마을에 정착합니다. 이후에도 파리를 오가며 작업을 이어가기는 했지만 마르탱은 시골에서의 삶을 무척이나 좋아했어요.
달콤한 사과꽃 같은 삶
우리나라의 어느 곳에서건 쉽게 감나무를 볼 수 있는 것 처럼 사과나무는 프랑스 전역에 걸쳐 자생하고 있어요. 희고 아름다운 꽃, 특히 만개시 나무 전체를 흰 색으로 뒤덮는 황홀한 모습으로 인해 많은 화가들이 소재로 삼았습니다.
봄철에 개화하는 사과꽃은 다섯개의 꽃잎으로 이루어져있고 직경은 3cm미터 내외로 작습니다. 일반적으로 꽃이 피기 전에는 분홍빛이 강하다가 완전히 개화하면 주로 흰색을 띠게 됩니다. 주로 벌과 같은 곤충에 의해 수분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들을 유혹하기 위해 달콤하고 부드러운 향을 냅니다.
사과꽃, 그리고 이 꽃을 품은 사과나무는 소박한 농촌의 풍경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아요. 어쩌면 앙리 마르탱도 이 사과꽃과 같은 삶, 평범한 일상을 통해 하루를 감사함으로 살아내었을 거예요.
뮤즈이자 아내, 마리
그의 평범한 삶의 중심에는 아내 마리가 있었어요. 마르탱은 그녀를 뮤즈로 여겨 수 많은 그림으로 남겼어요. 마리는 흰 색이나 푸른 색의 소박한 옷, 단정히 묶은 머리 그리고 뜨개질 하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시간이 갈 수록 마리의 모습이 점차 중년으로, 그리고 노년으로 이어져 가는 것이 느껴집니다.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그 끝에는 죽음은 있습니다. 마리는 마르탱에 6년쯤 앞서 세상을 떠나요. 이에 마르탱은 견딜 수 없는 상실을 느끼며 이후에는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50여년이 훌쩍 넘는 시간동안 부부로서 함께 합니다.
앙리 마르탱과 마리 부부가 소박한 삶을 나누었을 시골 길에는 여전히 사과꽃이 피어나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