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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Dec 23. 2021

월요병, 아니 금요병!



월요일이 가장 좋다.

아내도 외출하고 아이도 등교하여 아무도 없이 적막한 집. 이내 점심 무렵이면 가족으로 채워져 북적일 곳이지만 이 짧은 여유 만큼은 너무나 달콤하다. 웨딩 플라워를 주로 한 이후로는 주말이 가장 바쁘고 월요일이 제일 한가해 졌다. 꼭 웨딩 일이 아니더라도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의 근무 패턴은 보통의 직업들과는 반대의 궤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꽃 장식이 필요한 행사라던지 꽃다발 등이 많이 필요한 일들은 주말에 많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플로리스트로 일 하고 부터는 주말을 주말 답게 보낸 적은 거의 없다. 반면에 휴무는 언제나 월, 화요일이다.

꽃시장은 월, 수, 금. 일주일에 세 번 열리고 주말에 사용할 꽃은 대부분 수요일에 받아서 다듬고 물을 듬뻑 먹여 놓아 한다. 그래야 주말 동안을 꽃이 잘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수요일에 꽃을 받으려면 화요일 오전까지는 주문을 마쳐야 한다. 수요일에 즉흥적으로 꽃을 사면 불필요하게 많이, 혹은 부족할 정도로 적게 사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이렇게 되면 주말 일정에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미리 주문을 해 두지 않으면 필요로 하는 꽃의 양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면 대체 꽃을 찾아야 하고, 한마디로 일이 꼬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꽃시장은 정오가 되면 문을 닫기 때문에 꽃을 주문할 수 있는 시간은 화요일 오전 밖에 없다. 실제적인 나의 업무는 이때 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주말 일정이 많지 않다면 화요일 오후라도 좀 더 쉴 수 있지만 이미 수요일이 다가오고 있음에 마음이 편치가 않아진다. 직장인들이 일요일 오후에 갖게 되는 기분과 별반 다르지 않겠다. 그러니 내게 월요일은 더 없이 소중한 날이다.

치열한 주말을 보내고 맞이하는 월요일의 아침. 늦잠을 자고도 싶지만 등교하는 아이에게 보일 아빠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아 그냥 평소대로 일어난다. 게다가, 황금 같은 하루를 잠으로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아내와 아이가 분주한 모습으로 외출과 등교를 준비하는 모습을 파자마 차림으로 지켜 본다. 그렇게 아내와 아이가 집을 나서고 혼자가 되면 리모컨을 집어 들고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다. 모두에게 익숙한 토요일의 모습이다. 그런채로 잠시 뒹굴거리면 그 시간 마저 아깝다. 워낙에 엉덩이가 가벼운 나다. 그럴때면 읽을거리를 옆에 끼고 슬리퍼를 끈 채로 집 앞 카페라도 간다. 예전에는 이런 나의 모습이 혹여나 동네 사람들에게는 백수 아빠, 일 없는 한량 처럼 비춰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요즘엔 재택 근무 하는 이들도 많고 꼭 휴일의 개념이 주말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 마음의 부담이 덜 하다. 그리고 워낙 작은 동네라 이미 나의 직업이 조금은 특이 하다는 것을 몇몇은 이미 알고 있다. 그렇게 한 두 시간쯤 들고 간 책은 읽는 둥 마는 둥 평일 카페의 망중한을 즐긴다.

평일에 쉰다는 것은 여러 장점들이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저렴한 비용으로 숙소 잡기가 좋다. 일요일 점심 무렵이면 중요한 일들은 끝이 나기 때문에 일요일 오후에 일을 정리한 후 바로 출발 할 수 있도록 스케줄을 잡는다. 

일요일에서 월요일 혹은 화요일 까지 넘어가는 이삼일의 짧은 여행 으로 호텔이든 펜션이든 이 기간이면 어디든 여유있게 방을 잡을 수 있고 비용 또한 가장 저렴하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까진 정말 무던히도 여행을 다녔다. 내 아이를 키운 것은 감히 8할이 여행이라 할 만하다. 그로인해 큰 돈은 모으지 못했을 지언정 하나도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때의 시간은 너무나 소중했고, 생각보다 아이는 빨리 컸기 때문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부터는 평일에 함께 할 것 들이 많아졌다. 아이의 등하교나 학원 가는 길을 함께 해 줄 수 있다. 반면에 같은 이유로 주말을 함께 하지 못하는 날들도 많다. 아내와 아이는 가장이 없는 주말을 십 여년 째 보내고 있다.


어떨 땐 한번씩 여느 직장인들 처럼 평일에 출근하고 한가한 주말을 보내게 되면 어떨까 생각했던 적이 있다. 아내와 아이를 주말에 홀로 두지 않고 함께 보낼 수 있다면, 아이의 학교 생활이 바빠 지면서 예전 만큼 평일에 함께 하지 못하는 날들이 잦아지며 이런 생각이 곧잘 들곤 한다. 주말의 번잡함이란 어떤 걸까 궁금하기도 하다. 사람 마음이란게 그런가 보다. 갖지 않은 것을 가져 보고 싶은 것 말이다.

말하고 보니 무척이나 한가한 삶 같은데 혹여라도 이런 나의 생활을 부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 내게는 모두가 갖는 월요병 처럼 금요병이 있기 때문이다. 화, 수, 목요일은 꽃을 주문하고 다듬고 꽂는 지극히 물리적인 근무일이다. 반면 토요일과 일요일, 주말 이틀 간에 걸쳐 나의 모든 노고는 평가를 받게 된다. 나의 고객이 꽃장식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더 없이 보람에 찰 주말이 될테지만 반면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더 없이 불행한 주말이 되기 때문이다. 플로리스트들 중에서 나 처럼 웨딩이나 행사를 주로 하는 분이라면 서로가 안고 있을 부담에 대해 공감할 것이다. 꼭 플로리스트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기획하고 그것이 단 한번의 결과로만 평가 받는 일을 해 본적이 있다면 나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거라 생각된다. 이러한 일은 한 번 잘못되면 다음에 더 잘하겠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나의 고객인 신부는 그날 가장 완벽한 꽃장식을 기대 한다. 이것은 사전에 미리 해 볼 수도 없고 만약 미리 해 본다 해도 당일날 똑같이 좋은 결과가 나오리라는 보장도 없다. 꽃은 그때 그때의 컨디션이 무척이나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잘못 되면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다시 한번 결혼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렇듯 주말이 한층 가까워지는 금요일이면 이런 저런 부담으로 마음 한 켠이 무척이나 무겁고 이런 불안을 불면으로 이어진다.

걱정하는 만큼 최악의 상황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지만 이러한 마음을 쉽사리 떨칠 수는 없다. 걱정이 되지 않으면 걱정이 되지 않아서 걱정이다. 혹여나 빼 먹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걱정은 결과가 좋을 것이라는 기대의 한 부분이며 또한 실수를 줄여 필요악 적인 존재이다. 그래서 매주의 금요일엔 걱정을 떨치지 못한 채 불편한 마음을 갖는다. 이것이 내가 가진 고질병, 플로리스트의 금요병이다.

결국 직장인이 월요병을 겪나 플로리스트가 금요병을 겪나, 힘든 건 매한가지 아닐까. 그래서 결론은, 일하기 전날은 모두 다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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