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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도맑음 Nov 30. 2020

처음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

유리창. 짧고 행복했던 세상살이를 마치고 천국으로 간 너에게.


유리창


유리에 차고 슬픈 것이 어른거린다.

열없이 붙어 서서 입김을 흐리우니

길들은 양 언 날개를 파닥거린다.

지우고 보고 지우고 보아도

새까만 밤이 밀려나가고 밀려와 부딪히고

물먹은 별이 반짝, 보석처럼 박힌다.

밤에 홀로 유리를 닦는 것은

외로운 황홀한 심사이어니,

고운 폐혈관이 찢어진 채로

아아, 늬는 산새처럼 날아갔구나.


아마도 10 몇 년 전인 고등학교 때 읽었을 이 시가,

이른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유리창을 닦고 있던 내 마음에 갑자기 내려앉았다.





심장소리가 약한 편이에요,
지켜봐야겠지만 이런 경우 쉽진 않습니다.

이틀 전에 통지(또는 준비)를 선고받고 집에 돌아와 있던 11월의 어느 날이었다.

바로 전 주말만 해도 한껏 들떠서 온갖 종류의 아기 용품을 보고, 3인 체제를 그리고 있었는데.

초음파를 보던 의사 선생님의 침묵과 함께 이제 막 일주일 간의 소망(고문)이 시작된 때였다.


보고 싶던 드라마도 켜보고, 성경책도 보고, 노래도 듣고, 별 일을 다 했지만,

어떻게 물을 부어도 결국 한 곳으로 흘러들어 가는 깔때기처럼,
모든 신경과 마음이 아기에게 집중되었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믿으면 산이 옮겨진다는데, 그 기적을 한 번 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이번이 (생에 한 번 찾아온다는) 그 기적이길 바랐다.

대체 믿음이 뭘까, 하는 원론적인 물음에까지 자주 다다르다가,

결국에는 울음으로 마무리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간절함과 긴장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이틀을 보내다가,

갑자기 아기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야 벌써 서른 번이 넘게 본 단풍, 초겨울이지만

아이에게는 어쩌면 단 한번뿐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세상의 전부일 아이에게,
어쩌면 이번 주가 마지막일지 모를 작은 생명에게,
크리스마스를 보여주고 싶다.


일 년 중 가장 따뜻하고 가장 행복한, 내가 제일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갑자기 크리스마스 준비가 시작되었다.

하루에 나홀로집에를 하나씩 보고, 하루 종일 캐럴을 듣고,

리스와 조명을 달고, 트리도 꺼내서 달아놓았다.


그렇게 예년 버전의 데코는 완성되었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몇 년간 암막커튼으로 가려두었던 거실 한 켠의 작은 창을 열었다.

단열 뽁뽁이를 스팀다리미로 다 녹여서 제거하고, 물을 뿌리며 창을 닦기 시작했다.


투명한 창이어서 안과 밖이 뚜렷이 보였는데도,

닦아내면서 조금씩 묻어있던 얼룩이 떨어지기도 하고,

스팀의 흔적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하며 아른거렸다.


엄마 열심히 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따가 반짝이는 거 같이 보자.

하고 되뇌며 다시 눈에 물이 차오르던 그 순간,

"물먹은 별이 반짝,"이라는 시어가 떠올랐다.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이었다.


정지용의 시를 좋아했다.

윤동주처럼 고뇌와 고백을 담아내는  아니었지만,

절제된 시어들에 울렁이는 감성을 담아내던,

처음 읽을 때와 두 번째 읽을 때가 다르던,

그의 시들을 좋아했다.


유리창이라는 시 역시도 그런 시들 중 하나였지만,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이라는 주제가 이다지도 슬픈 것인지,

고등학교 때는 잘 몰랐었던 것 같다.


이제는 유리창을 닦으며,

시인이 느꼈던 "외로운 황홀한 심사"에 내 마음을 겹쳐 볼 수 있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존재인데 이렇게 정이 들 수가 있나.

관계는 시간에 비례한다고, 미운 정이든 고운 정이든,

오래 쌓일수록 더 진하고 깊어진다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은 시가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렇게 그 날 창트리를 완성했다.   


컴컴한 밤이 되면, 전구의 불빛이 창에 반사되어 더 반짝인다.






아이는 일주일 후,

9주 간의 짧은 생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갔다.

정지용 시인의 아이는 몇 살이이었을지, 어떤 아이 었을지 모르겠지만,

아빠가 적어둔 시 속에 여전히 회자되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이 다녀갈 자리를 마련해두었기에,

그 아이의 짧은 생 또한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었으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그래서 나도 어느 날 천국에서 만나면 보여줄 글을 이렇게 적어본다.

내 글에서, 삶에서 너의 존재는 이런 것이었다고 말해주고 싶으니까.





덧.

그 쪼꼬만 생명 덕에,

우리 집에 때아닌 크리스마스가 먼저 찾아왔다.

한 밤에 물 마시다가 곳곳마다 켜져 있는 크리스마스 조명을 보고 문득 생각한다.

한 시가 급하고 빠르게만 흘러가는 이 세상에서,

올해만큼은 엄마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마음껏 누리라고,

11월에 그렇게 하고 간 건 아닌가 하는 생각.

고마웠어.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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