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조각 : 다향만당을 기억하며
공간은 기억의 장면을 켜켜이 쌓아둔다.
전에 자주 머물던 곳에 가면, 다시금 그 시절을 맛볼 수 있다.
그때그때의 말소리, 온도, 색이 한 데 어우러진, 달콤 쌉쌀한 다섯 가지 맛을.
#五味 #다향만당
윗 글은 다향만당 기획기사에 달려,
서울대저널에 소개되었습니다 :)
http://www.snujn.com/news/52378
학부 때 자주 다니던 교내 찻집이 있었다. 새내기로, 선배로, 고시생으로, 또 취준생으로, 자주도 들렀던 그곳. 예쁜 전통 문살의 출입문을 열자마자 알알이 아로새겨진 예전 추억과 마주할 수 있다.
한 모금 마시면 여러 가지 맛이 동시에 퍼지는 오미자차처럼, 스무 살의, 스물세 살의, 스물여섯 살의 나의 모습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진기한 경험이다.
한 모금에 대학 입학의 들뜸을, 다음에는 기말고사 준비의 고단함을, 또 진로에 대한 고민을, 그리고 무엇보다 그 시간을 채워준 고마운 사람들과의 대화를 떠올리다 보면, 어느새 따뜻한 한 잔이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그런 곳이다 보니,
어쩌면 이 찻집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소식 앞에, 내 20대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만 같은 상실감이 가장 먼저 막막하게 차오른다. 추억의 다향만당, 추억의 2010년대, 그때그때의 우리를, 그 시간을 잊을 수는 없겠지만, 그 모든 세월 동안 내가, 우리가 자라는 것을 지켜봐 주던 공간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디 그 방울방울 추억이 맺힌 공간이, 마음 한켠에 남겨둔 아직 떼지 못한 말과 같이, 캠퍼스 구석 두레 문예관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