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도맑음 Dec 19. 2020

설일(雪日), 가장 따뜻한 겨울나기

이 겨울, 더 아름다워질 우리의 겨우살이

가을이 가는 게 슬펐다.  


온 세상을 알록달록 색칠이라도 하려는지,

빨갛고 노랗게 온 이파리들을 물들여내며 스스로를 가꿔내던 나무였는데,

어느새인가 모든 부귀영화 벗어버리듯 낙엽비 몇 번 나리고는

기어코 앙상하게 검은 가지만 남아버리고 마는,

겨울이 오는 게 싫었다.


앙상한 가지가 점점 외롭고 추워지는 게 보여서 마음이 아렸고,

나무를 보다가는 괜스레 내 옷깃을 여미며 겨울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그럼에도 자꾸만 파고드는 칼바람을 느끼며, 결국 그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가지각색인 나무 가지에 눈송이가 얹어져 설경이 아름답다. 12월 13일. 서울  (c) 오늘도맑음


첫눈이 왔다


그리고 12월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마른 가지들은 온데간데없고 새하얀 눈꽃만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온 세상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모든 것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마른 가지의 끝끝마다 소복이 눈을 입고 있는 나무들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마치 이렇게 눈꽃을 피우려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이파리를 떨궈낸 것 마냥,

가장 작은 가지 하나에도 송이송이 눈송이들이 꽃을 피워내며 절경을 이뤄낸다.  



우리들의 아름다운 계절, 겨울


원하지 않았던 실패, 예상치 못했던 불합격, 익숙하지 않은 외로움까지- 갑자기 닥친 겨울 앞에,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더 큰 추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곤 한다.

그러나 그 계절은 그저 우리에게 상처와 어려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을 허락해주기도 한다. 겨우살이 동안 우리는 혹독한 시련을 함께 이겨낼 벗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힘과 여유를 키워낼 수도 있다. 그렇게 겨울 동안 우리는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 아니, 더 아름다워진다.


앙상한 나무 가지들, 그들이 흘렸던 눈물이 찬란한 눈꽃으로 돌아오는 설일.

죽은 것만 같았던 겨울나무들에게 포근한 담요이자 친구가 되어주는 눈과 바람의 계절,

바야흐로 겨울이다. 


나뭇가지마다 얹힌 눈꽃 덕에 온 세상이 아름답다

덧. 따뜻한 겨울나기


 외롭고 추운 나무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겨울바람에게서 겨울의 따스함을 발견하는,
김남조 시인의 시를 적어보았다. 코가 시린 이 겨울에 왠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매섭기만 한 겨울바람이 사실은 나무의 친구였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우정은 겨울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겨울은 눈물의 골짜기일 뿐 아니라 눈꽃의 향연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꽁꽁 싸매는 것보다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따스함을 찾는 것이,
더 나은 겨우살이 방법이라는 것"


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설일-김남조. 오늘도 맑음 쓰다




설일(雪日)

                                  김남조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 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




이전 02화 처음이자 마지막 크리스마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