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더 아름다워질 우리의 겨우살이
가을이 가는 게 슬펐다.
온 세상을 알록달록 색칠이라도 하려는지,
빨갛고 노랗게 온 이파리들을 물들여내며 스스로를 가꿔내던 나무였는데,
어느새인가 모든 부귀영화 벗어버리듯 낙엽비 몇 번 나리고는
기어코 앙상하게 검은 가지만 남아버리고 마는,
겨울이 오는 게 싫었다.
앙상한 가지가 점점 외롭고 추워지는 게 보여서 마음이 아렸고,
나무를 보다가는 괜스레 내 옷깃을 여미며 겨울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곤 했다.
그럼에도 자꾸만 파고드는 칼바람을 느끼며, 결국 그 계절이 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첫눈이 왔다
그리고 12월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 마른 가지들은 온데간데없고 새하얀 눈꽃만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온 세상에 소금을 뿌린 것처럼, 모든 것이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낸다.
그중에서도, 마른 가지의 끝끝마다 소복이 눈을 입고 있는 나무들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
마치 이렇게 눈꽃을 피우려고 그렇게 온 힘을 다해 이파리를 떨궈낸 것 마냥,
가장 작은 가지 하나에도 송이송이 눈송이들이 꽃을 피워내며 절경을 이뤄낸다.
원하지 않았던 실패, 예상치 못했던 불합격, 익숙하지 않은 외로움까지- 갑자기 닥친 겨울 앞에,
우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더 큰 추위가 오지 않기만을 바라곤 한다.
그러나 그 계절은 그저 우리에게 상처와 어려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들을 허락해주기도 한다. 겨우살이 동안 우리는 혹독한 시련을 함께 이겨낼 벗을 발견하기도 하고, 다른 이의 아픔을 돌아볼 수 있는 힘과 여유를 키워낼 수도 있다. 그렇게 겨울 동안 우리는 더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낸다. 아니, 더 아름다워진다.
앙상한 나무 가지들, 그들이 흘렸던 눈물이 찬란한 눈꽃으로 돌아오는 설일.
죽은 것만 같았던 겨울나무들에게 포근한 담요이자 친구가 되어주는 눈과 바람의 계절,
바야흐로 겨울이다.
외롭고 추운 나무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겨울바람에게서 겨울의 따스함을 발견하는,
김남조 시인의 시를 적어보았다. 코가 시린 이 겨울에 왠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
"매섭기만 한 겨울바람이 사실은 나무의 친구였을 수 있다는 것,
그런 우정은 겨울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에게 겨울은 눈물의 골짜기일 뿐 아니라 눈꽃의 향연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꽁꽁 싸매는 것보다 겨울에만 누릴 수 있는 따스함을 찾는 것이,
더 나은 겨우살이 방법이라는 것"
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설일(雪日)
김남조
겨울나무와
바람
머리채 긴 바람들은 투명한 빨래처럼
진종일 가지 끝에 걸려
나무도 바람도
혼자가 아닌 게 된다
혼자는 아니다
누구도 혼자는 아니다
나도 아니다
실상 하늘 아래 외톨이로 서 보는 날도
하늘만은 함께 있어 주지 않던가
삶은 언제나
은총(恩寵)의 돌층계의 어디쯤이다
사랑도 매양
섭리(攝理)의 자갈밭의 어디쯤이다
이적진 말로써 풀던 마음
말없이 삭이고
얼마 더 너그러워져서 이 생명을 살자
황송한 축연이라 알고
한 세상을 누리자
새해의 눈시울이
순수의 얼음꽃,
승천한 눈물들이 다시 땅 위에 떨 구이는
백설을 담고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