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비가 제법 왔다. 너무 젖겠다 싶었다. 오후가 되니 비가 조금 잦아들었다. 해도 없었다. 평소 같으면 엄두도 안 났을 4시 즈음 바로 뛰어 나갔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시원했다. 공기도 청량했고, 가는 길가 솔밭에선 솔향도 솔솔 났다.
트랙엔 아무도 없었다. 시원한 트랙에서 몸을 풀고 슬슬 뛰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으니 러닝 메트로놈을 크게 켜놓고 달렸다. 와다다 뛰는 소리도, 헐떡거리는 숨소리도, 뒷담화 하는 수다도, 웅얼웅얼 전화하는 소리도, 발을 끄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메트로놈 소리와 내가 코로 숨 쉬는 소리만 들렸다. 너무 좋았다.
뛰면서 비가 더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하면서 더워졌다. 비가 주춤하면 습한 더위가 몰려왔다. 다행히 비는 계속해서 와주었다. 빗방울이 뜨거워진 무릎과 종아리를 식혀주었다.
운동 시간을 저장하는 앱을 켜지 않은 걸 몇 바퀴를 돌고 나서 알게 되었다. 1km마다 페이스를 알려주는데 소식이 없어 열어 봤더니 시작 버튼을 안 눌렀다. 내가 움직이면 켜겠냐고 물어봐주는 디테일이 아쉬웠다. 나이가 들면서 더욱 확실히 알게 된 건데 진짜 실력은 디테일에 있다.
아깝지만 앱을 켜고 난 후로 5km를 달렸다. 최종적으로 평소보다 1km 이상 더 달린 것 같았지만 빗속이어서 그런지 피곤함이 더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쿨다운 시간을 갖고 마무리를 할 때 즈음 비가 그쳤다. 땀이 폭발하고 습함이 견딜 수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찬물로 샤워를 했다. 올해 처음으로 찬물이 찬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괜한 관종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여름철 우중 러닝은 최고의 환경에서 달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는 사실을 오늘 알았다. 장대비만 아니면 비가 너무 기다려질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