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표를 붙여 엽서를 보내주세요.
우표를 붙여서 엽서를 보내기가 점점 쉽지 않은 시절이다.
연말이면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다. 여행을 할 때도 엽서를 쓴다.
여행지에서는 기념을 할 만한 엽서를 살 수 있어 좋다. 현지 우표를 사서 붙이면 좀 더 폼이 나겠지만 최근 내가 여행한 지역의 프랑스 우체국은 무인시스템이었다. 기계가 무게를 재고, 받는 곳의 위치를 선택하면 스티커 한 장이 나온다. .어쩐지 인간미가 없어 보인다. 우표를 붙이고 그 위에 꽝하고 빨간색이나 파란색 날찌와 지명이 찍힌 도장을 찍어 보내고 싶었다. 이젠 그런 걸 바라는 건 사치가 되어 간다.
엽서를 쓰는 그 잠깐의 시간은 온전히 받는 사람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앉아있다. 같이 했던 우리의 가장 젊은 순간의 모습. 테니스를 칠 줄도 모르면서 칠 수 있다고 번쩍 손을 들어 테니스병이 되어 장교들에게 테니스 교습을 했다며 군대 시절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해주어 나를 깔깔거리며 웃게 했던 그 겨울날의 교정. 10년 가까이 살아온 외국에서 영주권도 가지게 되었지만 그리움에 다시 조국으로 돌아가며 불만 반, 기대 반이었던 이국에서의 삶에 대한 투정. 우리가 어른이 되어 가는 속도보다 더 빨리 커버린 아이들에 대한 걱정. 어릴 적 아버지의 외도에 때문에 상처받은 이야기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며 이젠 너무 늙어버린 아버지를 가여워하는 우리 처음 만났던 스무 살 새내기 시절과 여전히 똑같은 투덜과 애교가 섞인 말투. 중학교 시절 첫사랑을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찾아갔었는데 눈부신 천사로 기억했던 그녀가 너무 물질주의자처럼 보였다며 다시 찾아가지 말았어야 했는데라 하며 희끗해지기 시작한 머리를 쓸어 올리던 손.
나는 그렇게 그들을 끄집어 내며 엽서를 쓴다.
어느 날인가는 나도 친구에게 엽서를 받았다. 홍콩의 마천루 사진이 박힌 엽서.
'나보다 이 엽서가 더 늦게 도착할 것 같아. 과연 도착은 할까?'
친구보다 엽서가 늦게 도착했다. 한참을 엽서 속 사진과 글씨를 읽었다. 볼펜을 눌러 우리집 주소를 만들어 낼 때 그 안에 내가 있었겠구나.
엽서의 내용은 만인이 읽을 수 있다. 가슴속 이야기를 비켜서 이야기해야 한다. 길지 않아야 한다. 사적이지만 사적이지 않아야 한다. 절제를 만들어 준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쓴 주소를 행여 우체부가 못 읽어 제대로 배달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또박또박 쓰려고도 한다.
아직 여전히 우표를 사러 갈 수 있다.
우표를 꾸욱 붙이며 그리운 사람에게 엽서 한 장 보낸다.
올해를 마무리한다. 다시 새로 시작한다.
아침 바람, 찬 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우리 선생님 계신 곳에 엽서 한 장 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