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벗, 글쓰기
글을 얼마나 쓰고 싶은가는 제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를 가늠하는 기준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속상한 일이 있을 때 허겁지겁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글을 씁니다. 악몽에 시달리다 겨우 몸을 일으킨 사람이 뿌연 시야로 두 팔을 휘젓듯 펜을(이제는 키보드를) 찾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질 때는 아침에 눈도 잘 떠집니다. 전날 밤부터 글을 쓰기 위해 일찍 잡니다. 이 끓어오르는 감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내가 터질 것 같기 때문에, 나를 나로서 다시 돌려놓을 수 있는 길이 글쓰기밖에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살기 위해 잠자리에 듭니다. 눈을 감고 글로 풀어낼 말을 정리하는 것은 심폐소생술과 같습니다. 제가 저에게 행하는 살림(生), 그게 글쓰기입니다.
때로는 글쓰기에게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평소엔 뜸하다가 필요하면 찾는 친구처럼, 글쓰기에게 염치없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글쓰기는 예수님처럼, 부처님처럼 자비롭게 저를 기다려 줍니다. 언제든 필요할 때면 찾으라고. 그리고 언제나 기대 이상의 평안함을 줍니다.
요즘 글쓰기가 뜸해지는 것은 제가 살 만하기 때문입니다. 직장에서 새로 맡은 직위에 어느 정도 적응했고, 가정에서도 가족들과 큰 갈등 없이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평안함은 질풍노도의 순간에 했던 글쓰기에 기인하는지도 모릅니다. 거세게 몰아치는 제 마음속 말과 생각과 믿음들에 휩쓸리지 않도록 글쓰기가 가상의 중재자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네,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평안은 글쓰기가 준 평안입니다. 글쓰기를 하기 전의 저였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힘들다,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만 반복하며 짧은 위로의 말이나 맛집에서 느끼는 잠깐의 쾌락을 찾아 헤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잔잔한 물살 위를 타고 있을 때일수록 더 글쓰기를 해야 합니다. 이 평화로움을 유지하고, 또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파도를 슬기롭게 넘기 위해서 말이죠. 평생 곁에 둘 글쓰기라는 벗이 있기에 너무나 든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