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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얀밤 Nov 10. 2024

꿈의 시작(1)


 꿈이 있었던가.
 꿈이 있었던가?

희수는 꿈이 뭐였어?
방송부 역할을 하며 빛나던 희수에겐 방송국에서 일하는 미래가 당연한 듯 여겨졌는데. 희수는 대학졸업 후에 뭘 하고 싶었어?

난 꿈이랄 게 없었어.
꿈을 가질 기회가 없었어.

아이들에게 우린 묻지.
네 꿈이 뭐니.
아이들은 대답해.
우주비행사요, 연예인이요, 대통령이요.
아, 요즘은 대통령보다는 유튜버를 동경하려나.

학교에는 진로 수업이 개설되고, 진로 교사가 배치되고, 진로 행사도 자주 이루어지지. 아이들은 내 꿈이 뭘까를 아주 당연한 듯이 고민해 봐. 마치 그 상상이 현실이 될 것처럼.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많이도 하지. 그 꿈이 부모의 꿈인지 자기의 꿈인지 헷갈린 채로. 아니, 자기 꿈이라 믿으며. 그런 아이들이 많다는 거야. 요즘은.
아니, 언제든.

희수와 짝이었을 고3 시절에 내 꿈은 교사였어. 왜 교사냐면. 음, 동생이 있어서 동생을 챙기며 크다 보니 어린 누군가를 챙기는 게 익숙했기 때문일까.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나보다 어린애들이 많아서, 그 애들을 데리고 놀면서 학교 놀이를 했던 게 계기가 되어서?
실제로 내가 생각해 봤던 이유들이야. 궁색하지.
꿈이라는 건 그렇게 두루뭉슬한 거야. 무엇을 원할 때 그 이유까지는 잘 생각해보지 않으니까 말이야.
원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느껴지도록 분위기가 조성되어서. 어느새 내 생각이라 믿어버리고, 그 믿음을 이루기 위해 노력까지 해버리기 때문에 그 꿈은 내 꿈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룬 지금 나는 행복하기도 하고 행복하지 않기도 해.


“4년 남았다.”
내 꿈의 시작.
내 꿈이어야 했던 것의 시작.
책상에 앉아서 HOT노래를 듣고 있을 때였어. 하굣길에 산 짝퉁테이프의 1번 곡은 주인공은 언제나 HOT였어. 1위를 놓치지 않던 HOT 오빠들. 영턱스 클럽을 매번 제치고. 뒤늦게 데뷔한 젝스키스도 매번 이겼지. 1위를 발표할 때 터지는 꽃가루가 내 것 같았어. 1등을 해서 더 좋았던 HOT.
마치 내가 1등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끼게 해 줬던.

이어폰을 끼고 음악 볼륨을 아무리 높어도, 엄마 목소리는 선명하게도 들어왔어.
4년 남았다는 그 말이, 남은 수명이 4년인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4년 동안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는 의미 같기도 했어. 짧지도 않은 ‘4년'이라는 시간과 조바심이 들게 하는 ‘남았다'는 표현이 납덩이처럼 가슴 한가운데로 가라앉았지. 4년 동안.
엄마가 말한 4년 남았다는 말은 내가 사범대에 들어갈 날이 4년 남았다는 뜻이었어

16살인 내가 4년 뒤 진학할 곳을 이미 결정해 버린 엄마는 타이머의 시작 버튼을 눌렀어. 4년이 세팅된 타이머. 왜 타이머 같은 게 있냐고, 왜 시작 버튼을 엄마가 누르냐고 물을 생각조차 못했지. 엄마가 하라 하니까 시키는 대로 스스로를 사범대에 들어가야 하는 사람으로 세팅했어.

난 사범대학교라는 대학이 있는 줄 알았어. 어느 과목 선생님이 되어야 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지. 여자가 가지기 좋은 직업이 교사라고 여자인 엄마가 자꾸 말하니까, 돈도 꾸준히 안정적으로 번다고 하니까, 애 키우기도 좋다고 하니까 그 길로 가야 하는구나 했어. 여자의 삶이 어떤 건지, 애를 키우는 게 어떤 건지 모르겠지만 돈을 버는 건 좋아 보였어. 어찌 됐든 나는 ‘교사’가 되어야 했지.

고마운 선생님들이 많았기에 교사라는 직업에 거부감은 없었어. 누군가를 가르치는 게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학교라는 울타리는 항상 내게 우호적인 기억을 줬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학교 구성원으로 사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

졸업이 가까워지면서 슬슬 무슨 과목 선생님이 좋을까도 고민했지. 이왕이면 국영수 교사가 되고 싶었어. 문과 출신이니 수학은 힘들 것 같았고, 영어도 좋아하긴 했지만 결국은 국어다 싶었지.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 글도 잘 쓴다는 소리를 들어왔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국어 시간에 마음이 편안했으니까. 특히 문학 시간이 좋았어. 수능대비 문제집을 풀면서도 지문으로 나오는 소설 하나하나의 줄거리를 다 읊어주시던 문학 선생님 수업이 얼마나 재미있던지. 문학 시간은 옛날이야기를 듣는 시간 같았어.

사범대가 대학교 이름이 아니라 단과대학이라는 걸 알게 됐을 즈음 주변 애들도 대학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 고2 말이나 고3초였을거야. 아, 고3이었다.
교실에 국민학교 때 보던 전과 같은 두꺼운 책이 두어 권 들어왔어. 전국의 대학교 소개가 적힌 책이었어. 애들은 쉬는 시간마다 삼삼오오 모여 그 책을 펼쳐놓고는 어느 대학이 좋은지 어느 대학에 가고 싶은지를 두고 왁자지껄 떠들곤 했지. 서울대를 펼치고는 와와 거리다가 금세 휙 넘기고 연세대 고려대를 보고서도 와와 거리며 여기 가면 좋겠다 정도 몇 마디하고는 휙휙. 대학교 이름만 봐도 구경만 해도 시간이 잘 가는 책이었어.
공부를 좀 하는 애들은 서울권 대학을 찾아보고 중위권은 지방대를, 하위권 애들은 전문대학을 찾곤 했어. 나는 무리 지어 모인 아이들을 물끄러미 보다가 부족한 수면을 보충하거나 공부를 했지. 어디를 갈지 고민하는 애들이 딴 세상 사람 같았어. 난 갈 곳이 이미 정해져 있었고 4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는데.
엄마는 내가 어느 대학교의 사범대인지에 가야 하는지까지 정해버렸어. 자꾸 듣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그 학교 학생인 듯한 착각이 들더라. 그러니 그 책을 펼칠 이유가 내겐 더더욱 없었지.

내 뒤에 앉은 선미가 어느 날 정치외교학과에 가고 싶댔어. 정치외교학과는 어려운 말만 하는 점잖은 사람들이 포진해 있을 거 같은데 네가 거기 간다고? 놀라는 내게 선미는 원래 자기는 국제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고, 꼭 정치외교학과로 가서 외교관이 되고 싶다 했어. 선미의 말 끝에 우지끈, 끝도 보이지 않는 깊은 크레바스 하나가 우리 사이에 생겨났지. 더 이상 선미는 내 뒤에 앉은 친구가 아니었어. 닿을 수 없는 곳에서 미래를 보고 있었어. 더 이상 선미집에 놀러 가기는 힘들겠다 생각했지.

선미를 보낸 울적함을 달래는 중에 들리던 말.
“외국에 있는 대학교나 갈까?”
외국에 있는 대학?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감히 그런 생각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외국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한다는 건 내겐 지구를 떠나 화성에 가는 것과 비슷했어.
마침 짝의 책상 위에 놓인 그 두꺼운 책을 슬쩍 내쪽으로 끌어당겼어. 이렇게 무거운 책이었구나. 세상엔 대학이 이렇게 많구나. 내가 가야 할 대학은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한 번, 구경이나 해볼까.
아무 곳이나 펼쳤어.
델리대학교.
풉.
델리. 그래, 인도에 있는 그 델리. 차라리 화성이 가깝게 느껴지는 그 델리라고 하는 곳.
일본에는 어떤 대학이 있는지, 또 구경이나 해볼까.
난 일본어에 관심이 많았거든. 우연히 TV에서 본 일본 가수의 음악이 좋아서 히라가나 가타가나를 외워보기도 했었어. 그러니 델리라는 곳에 있는 나보다 일본에 있는 나를 상상하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어. 이왕이면 도쿄대라면 좋겠지. 아, 도쿄대는 서울대처럼 좋은 대학일 테니 많이 어렵겠다. 차라리 도쿄만큼 많이 들어본 오사카로 갈까. 오사카 대학교, 오사카 대학교.. 색인에 오사카 대학교가 있네? 오사카는 방언을 쓴다던데 그럼 난 사투리를 쓰는 외국인이 되는 건가.
머리가 쭈삣, 발끝이 꼼지락. 순식간에 연쇄반응을 일으킨 상상이 즐거워 소름이 오소소 돋았어.
하지만 그 즐거움은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즐거움과 비슷했지. 내 이야기인 것처럼 웃다가 TV 전원을 끄면 현실에서 뚝 떨어져 나가는 즐거움.
하지만 상상의 끝은 꽤 질겨서, 남의 것이라고 하기엔 1할 정도는 내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미련이 남았어.

해외대학이 아니라면 다른 학교, 다른 전공은 시도해 봐도 되지 않을까.
처음으로 사범대가 아닌, 교사가 아닌 길을 생각해 봤어. 일본어 전공을 해서 통역이나 번역을 할까. 현장에서 뛰는 기자가 되어볼까. 기자가 되려면 신문방송과를 가야 하나.
엄마가 가라고 하는 대학에 꼭 가야 할까? 집에서 가까운 대학을 가라고 하는 건 나를 두려는 엄마 욕심 때문일 텐데 이 참에 대학을 핑계로 집에서 떨어진 곳에서 살아볼까.
조각조각. 위험해 보이는 생각의 파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살이 붙고 구체적인 모양새를 띠기 시작했어.

수능 성적표가 나온 날, 그러니까 희수가 엉엉 울었던 그날. 만족스러운 점수는 아니었지만 내 발칙한 상상이 상상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 조금 설렜어. 성적표를 들고 엄마 아빠 앞에서 다른 대학, 다른 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지. 양반 다리를 하고 팔짱을 낀 아빠는 얼굴을 찌푸렸어.
“미안하지만, 여자가 가지기 좋은 직업은 교사다.”
나는 그 ‘미안하지만’이라는 말이 진절머리 나게 싫었어. 전혀 미안하지 않으면서 붙이는 말. 그 말에 실체가 있다면 절벽으로 밀어버리고 싶었어. 그 녀석은 떨어지면서도 날 비웃을 것 같았지. 미안하지만, 미안하지만… 진짜 미안한 건 아닌 거 너도 알지만 이 말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네가 잘못된 거야, 라며.
엄마도 몇 마디 거들었을 거야. 언제나처럼.
설득이 쉬우리라 생각지는 않았지만 1할, 아니 5할 정도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95%의 확률은 100%에 가까웠으니까. 확률의 힘을 확실히 느낀 날이라 할까.
두 번 우기지 않고 난 부모의 선택에 따라 대학입학원서를 넣었어.
그리고 붙었지.

합격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미용실에 갔어. 3년 동안 마르지도 않은 머리를 질끈 묶고 다녀서 고무줄 자국이 사라지지를 않았거든. 엄마는 넓은 판을 대고 하는 스트레이트펌을 직접 해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한사코 다른 미용실로 가겠다고 했어. 전기 고데기로 쫙쫙 펴는 매직 스트레이트펌을 하고 싶었어. 엄마는 아직 할 줄 모르던 그 펌. 유행을 모르는 구닥다리 엄마.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에 뒤따르는 미묘한 쾌감이 조금 슬펐어.
엄마 안녕, 지나간 4년 안녕.
과거의 것들과 처음으로 이별을 고했지.



-내 꿈의 시작(2)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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