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을 나와서 마주한 복도는, 낯설었어. 분명 내가 걸어온 복도인데. 저 복도에도 두 발을 디딜 자격 같은 게 있어서, 더 이상 마음 편히 걸을 수 없을 거 같았지. 나는 이 학교가 너무너무 좋은데 학교는 나를 있는 그대로는 받아줄 수 없다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어.
그래서 결심했던 거야.
죽어라 공부해야겠다.
내 힘으로 이 학교에 소속되어야겠다.
2학년 담임인 김춘련 선생님의 과목은 화학이었어. 빨간 바구니에 과학 교구를 한가득 담아 수업에 들어오시곤 했지. 나이 듦이 스민 목소리의 떨림이 무색할 정도로 다부지게 수업 내용을 설명하셨어. 본인 과목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느껴졌지.
수업은 어떤 젊은 선생님에게도 지지 않았지만 담임으로서의 역할엔 아쉬움이 많았어. 야자를 빠지는 아이에게 성적이나 성격을 거론하는 모욕적인 말을 자주 하셔서 학부모로부터 민원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왔어.
교실에선 선생님 험담을 하는 일도 잦았어.
“우리 엄마가 가만 안 둔다고 교장선생님한테 전화한대.”
“우리 아빠는 학교를 뒤집는다던데.”
드르륵, 문이 열리면 뚝 끊기던 그 소리들. 소리의 공백을 매우던 선생님을 향한 차가운 눈빛들. 선생님은 모든 걸 다 알고 계시는 눈치였지.
나는,
나는 있잖아.
선생님이 계시지 않을 때 선생님 험담을 하는 애들과 얼굴을 맞대고 웃고 호응도 했지만 선생님을 노려볼 수는 없었어.
김춘련 선생님도 나를 교무실로 불러주신 분이니까. 불러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나를 위로해 주신 분이니까. 형편이 어려울수록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며 격려도 해주시고 무엇보다, 내가 장학금을 받게 해 주셨으니까.
김춘련 선생님 눈엔 내가 너무 좋아 보였나 봐. 선생님은 나만 보면 인자하게 웃으시곤 했어. 공부를 소홀히 하는 애들에겐 독설을 서슴없이 내뱉으셨지만.
난 선생님에게도 애들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았어. 가난은 내 탓이 아니었고, 선생님이 날 예뻐하는 것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이중스파이처럼 살았어. 아이들 편을 들지도, 선생님 편을 들지도 못하며 박쥐처럼 살았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 지금의 나라도 그렇게 살 수밖에는 없었을 거야.
학교라는 곳은 성적이 모든 조건에서 우위를 점하는 곳이었어. 이 룰은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바였지. 난 그 룰 덕분에 우리집이 아무리 못살아도 아무리 나를 시기 질투하는 아이들이 있어도 굴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어.
그러기에 더더욱 그 룰에 스스로를 맞출 수밖에 없었어. 난 그렇게 보낸 시간을 절대 후회하지 않아. 난 게으른 천성을 타고난 사람이거든. 이런 내가 지치지 않고 매진하게 한 동기를 만들어준 고등학교 시절을 소중하게 생각해.
우리집의 가난도 원망하지 않아. 이제는.
원망하던 시간이 없지는 않았지. 오히려 길었고 나를 갉아먹을 만큼 원망의 깊이도 깊었지. 하지만 결핍감이 절대적인 동기가 되더라. 결핍을 느낀 자만이 발전할 수 있다고 나는 믿어.
그래서 내 아이에게도 결핍을 느끼게 하고 싶어. 가지지 못한 것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운 요즘이지만 결핍은 상대적인 거니까. 난 내 아이가 스스로에게 안달이 나면 좋겠어. 그 순간을 느끼게 하는 게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해. 건강하게 이겨내도록 도울 수 있다면 첨상첨화일 것이고.
아무리 미화해도 타 학군으로의 진학은 결국 도피가 궁극적인 목적이었어. 그런데 그게 내 인생에서 결코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자산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간절함이 이끈 선택들은 간절함 덕분에 옳은 선택이 되었고 그 순간들이 점처럼 선처럼 내 고등학교 시절을 수놓았어.
부족함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치열하게 잘 살아보겠다고, 무모하다 할 정도로 나아가기만 한 그때의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 부모를 탓하지 않고 스스로 살 길을 찾으려 한 것이.
그리고,
학비 지원을 받을 정도였긴 해도 내가 먹고 입고 잘 수 있도록 뒷바라지해 준 엄마 아빠에게도 감사해.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던 우리 엄마 아빠. 많이 혼란스러웠겠지. 막막했겠지. 마흔이 넘어보니 이 나이에도 삶은 얼마나 모르는 것 투성이인지.
부모님이 조금 더 현실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비 올 때 비 맞지 않게 지붕 있는 집에서 잘 수 있도록 해 준 것만으로 고마운 일이니까. 넉넉하진 않았지만 용돈도 주셨고, 문제집 살 돈은 단 한 번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으셨지.
그 돈이 어디서 어떻게 나왔는지 알게 된 지금은 마음이 쓰려오지만.
어설픈 가르침보다, 금방 사라져 버릴 수도 있는 돈보다 더 큰 보물을 난 엄마 아빠에게 받았은 거 같아.
덕분에 나는 우리나라 최고 부자라는 사람보다 때때로 더 행복할 수 있어 내 손으로 내 힘으로 일군 시간을 사니까. 나는 내 시간의 생김새를 알고 만듦새를 아니까 매 순간은 오롯이 내 것이야.
다양한 얼굴을 하고 불쑥 다가오는 결핍들을 피하거나 내치기보다 정면으로 마주 보려 하는 마음의 근원은 고등학교 시절에서 시작해. 실패의 경험보다는 성공의 경험을 쌓아야 나아갈 수 있으니까. 그때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성공의 경험이 지금의 나를 살아가게 해. 나를 사랑하게 해.
희수의 천진난만함도 어쩌면 채울 수 없는 공허함 때문이지 않았을까. 차라리 비워버리려 했겠지.
너의 빈 곳이 내 빈 곳과 닮아있다고 어렴풋이 느꼈었어. 희수는 비움을 받아들이는 걸 택했고, 난 악착같이 채우는 걸 택했을 뿐.
우린 닮아 있었어.
너를 보내게 한 마지막 그 결핍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누군가 네게 손을 내밀었더라면. 그게 음악이든 글이든, 어떤 형태로든 너에게 결핍에 맞설 힘이 되었을 텐데.
너를 만나 듣고 싶어.
너의 마지막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