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은 수다 떨기 좋은 시간이었지. 쉬는 시간보다 더 길고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
짙은 자줏빛 동복이 내 옷처럼 편안해진 고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빠르게 도시락을 먹어치우고 1분단 뒤쪽 창틀에 앉아 친구들과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즐기고 있었어.
등 뒤로 도톰한 햇살이 느껴지던 아늑했던 날. 교실엔 다섯인 우리 무리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어. 언제나처럼 시답잖은 뭔가에 대해 한참이나 떠들고 있던 그때, 담임 선생님이 들어오셨어.
기억나니.
김춘련 선생님.
우리 학교에서 가장 나이 많은 선생님이셨잖아. 예순이 넘은 나이를 대변하는 할머니 같은 얼굴에 단발보다 조금 짧은 파마머리를 하셨던 선생님.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오가는 요즘 세상에 예순 넘은 분께 할머니 같다는 표현을 하는 게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정말로 할머니란 말이 절로 나오는 외모였어.
선생님께선 하하 호호 웃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말씀하셨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떠들고 있냐. 이소영을 봐라. 너네랑 같이 떠들어도 쟤는 공부를 잘하잖아.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같이 떠들고 있어.”
웃음이 사그라든 자리를 메운 서늘한 정적. 친구들의 얼굴이 어두워졌어. 도톰한 햇살이 무색할 만큼.
데굴데굴, 친구들 눈동자와 내 눈동자가 구르고 구르며 몇 번이고 맞부딪쳤지.
‘미안’
마주친 눈동자들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서 최선을 다해 사과의 눈빛을 보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이에 흐르던 명랑함은 이미 도려내지고 없었지. 벼린 칼날 같은 담임 선생님의 말에.
고맙게도 친구들은 날 평소처럼 대해줬어.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몰랐을 거야.
내가 고등학교에 와서 더 공부에 열을 올린 건 내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였어. 중학교 시절 인연들과 멀어지는 것도 이루어졌고, 억지로 좋은 사람인척 하지 않아도 되는 바람도 이루어졌지만 한 가지 이루지 못한 게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해결할 수 없던 것, 바로 빈부격차였어.
우리 학교 애들은 주로 학교 주변 아파트에 살았는데 그 아파트가 꽤 부자들이 사는 곳이었단 말이지. 거기가 아니라도 학교 주변 동네가 부촌이어서 소풍 같은 사복을 입는 날이면 옷이나 신발 브랜드에서 경제력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어. 그렇다고 엄마에게 사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소풍 때마다 새 옷을 사주시긴 했지만 처음부터 우리집 형편에 살 수 있는 옷집으로 엄마를 데리고 갔어. 내 나름의 절충안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엄마도 나도 만족시키고, 애들에게도 얕보이지 않을 정도의 옷을 입고 가방을 멨어.
소풍은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그만큼 애써야 했어.
한 달에 채 3만 원이 안 되는 내 용돈과 비교되는 짝의 지갑 속 돈. 만 원짜리가 두둑한 지갑 속을 볼 때마다 부러움보다는 체념을 느꼈어. 내 힘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라서. 짝은 내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랑 같이 하교할 때면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사주곤 했어. 짝이 두세 번 사 주면 나도 한 번 정도 샀어. 얻어먹기만 하는 건 초라하니까. 말했잖아. 나는 스스로가 초라하게 보이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고.
그러던 중 갑자기 깨달은 거야. 내가 내 힘으로 앞서나갈 수 있는 분야가 있다는 걸.
바로 공부였지.
공부는 오로지 내 힘으로 아이들과 정정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이었어. 노력한 만큼 순수하고 정직하게 수치로 표현되는 영역. 학생 인권 같은 건 용어조차 없었던 시절이니 시험 때마다 석차가 복도 한가운데 떡 하니 게시되곤 했잖아. 나는 내 이름이 상단에 있는 게시물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게 너무 좋았어. 노력과 실력은 부모의 경제력으로 가질 수 없는 거니까. 잘 사는 집 아이가 고액 과외를 해도 나보다 아래라면 나는 부모의 경제력조차 이긴 게 되니까.
주말마다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공부를 했어. 엄마가 목욕탕에 가자고 하면 목욕탕만 갔다가 바로 집에 와서 다시 책상에 앉았지. 수학이 내겐 가장 힘든 과목이었기에 ‘수학의 정석’을 몇 번이고 봤어. 몇 쪽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부터 문제풀이 과정까지 달달 외울 정도로 봤어. ‘개념원리’라는 책엔 ‘수학의 정석’에는 나오지 않는 요령 있는 풀이법들이 있었어. 이 두 권을 꼼꼼히 보면 수학 고득점은 따놓은 당상이었어. 국어와 영어는 원래 좋아하는 과목이어서 그런지 시간 투자 대비 성적이 잘 나와서 국영수가 어느새 안정 궤도에 올랐어. 나머지 과목들은 시험 기간에 범위에 해당하는 부분을 집중적으로 암기하면 해결되었고. 이런 공부 방법은 내신 성적을 잘 받는 데는 최적화된 방법이었어.
공부를 잘하면 학교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었어. 선생님들이 많이 예뻐해 주셨어. ‘관동별곡'을 배우던 문학 시간은 아직도 눈에 선해. 2분단 다섯 번째 줄에 앉아서 줄줄이 엎어진 아이들 너머 선생님과 눈을 마주치며 수업을 들었어. 열에 아홉은 쓰러진 그 시간에 열에 하나로 남아서 열심히 손을 놀리며 시가의 뜻을 받아 적었지. 선생님들이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었겠어.
내가 수업시간에 자지 않은 건 특별히 수업이 재미있어서라기보다는 놓친 부분이 시험에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사람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어. 누군가가 나를 향해 뭔가를 말하고 있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더라. 졸음이 밀려오면 졸았을지언정 엎드려 잔 적은 한 번도 없어. 선생님들 입장에선 기특하고 고마운 학생이었겠지. 관심을 받으려고 한 행동은 아니었는데 어느새 난 인정받는 모범생이 되어 있었어.
모범생이라고만 불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겐 그 앞에 다른 수식어가 하나 더 있었어.
‘집안 사정이 어려운’
이건 선생님들과 나만 공유했던 비밀.
처음 교무실로 불려 간 건 1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어. 교무실에 불려 가는 것 그 자체로도 얼마나 긴장되던지. 어깨를 한껏 움츠리고 선 나를 담임선생님은 책상 옆 간이 의자에 앉히시고 조심스레 물으셨어.
“아버지 사업이 잘 안 된다면서?”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이던 게 떠올랐어. 매일매일 숨이 막힌단 말이에요! 엄마의 울부짖음이 끝나기도 전에 날아가던 텔레비전 리모컨. 건전지를 뱉어내고 초록색 알록달록한 기판을 내장처럼 쏟아내던 리모컨. 배가 터진 리모컨을 주워 동생이랑 같이 초록 장판 테이프로 칭칭 감았었지. 부상당한 패잔병 같던 리모컨이 정상 작동될 땐 얼마나 다행이라 여겼던지.
“등록금 지원받는 학생으로 너를 추천하려고 하는데 괜찮겠니?”
대답에 앞서 선생님 바로 옆, 그리고 맞은편에 앉은 지구과학 선생님, 한국지리 선생님을 힐끔 쳐다봤어. 다들 업무에 바쁜 듯 시선을 아래로 두고 계셨지만 다 듣고 계셨지. 들리는데 안 들리는 척하고 있었을 뿐.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느낄 부끄러움을 못 본 척해주는 게 그분들께는 최선이었으니까.
지원 같은 거 필요 없다고 교무실 끝에 앉은 선생님한테까지 들리도록 외치고 싶었어.
하지만 괜찮지 않을 권리가 내게 없었으니까. 우리집은 괜찮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담임 선생님만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조용하게 작게 고개를 끄덕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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