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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재윤 변호사 Mar 19. 2023

소송에서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삶은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니다.

최근 자문하는 기업에서 동업자 간 분쟁이 발생했다. 

이사직에서 해임당한 한 동업자가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함께 체불임금 진정을 한 것. 

동업자가 근로자로 인정되면 정말 골치 아파진다.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불안했는데, 다행히 회사의 입장에서 완벽히 방어했다.


이렇게 변호사로서 내가 할 일을 잘 마친 건가 싶었는데, 아직 끝나지 않은 문제가 있었다.

상대방 동업자가 대표이사와 변호사인 나에게 ‘회사 법기술자의 해괴한 일방 주장이 받아들여진 부당한 결정’이라면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통보를 이메일로 보낸 것.


아무리 살펴봐도 변호사로서의 나의 주장은 법과 판례에 비추어 지극히 합리적이었다. 그렇기에 받아들여졌을 것이고.

‘법기술자’라는 표현이 참으로 모욕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그러한 마음도 잠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니 자신이 기여한 부분이 분명히 있는데 회사가 잘 되니 팽 당했다고 충분히 생각 들 수 있겠다. 사정을 들어보니 금전적 어려움까지 겪고 있다고 하던데 회사에서도 해임당하니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려 남은 게 악밖에 없게 된 듯하다.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모는데 변호사가 주도적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니 내가 좋게 보일 리 없다. 


물론 상대방이 동원한다는 다른 민·형사적 수단은 모두 방어 가능하다. 그 부분은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늘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누구에게든 원한을 사면 안 된다는 것’. 

내 말이 아무리 논리적으로 옳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고 상처를 주면 그건 어떻게든 다시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삶의 경험을 통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번 법률분쟁에서 승리한 대표이사 입장에서는 패소 후 상대방의 일련의 반응들이 그저 ‘진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냥 저러다 말겠지’ 생각하며 접어두고 안 그래도 산적한 회사 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을 수 있겠다. 하지만 변호사인 내 입장에서는 불안하다. 누군가의 ‘원한’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대표이사께 제안을 했다. 일단 내가 상대방과 접촉해서 얘기를 잘 들어보고 그 응어리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상대방은 더 이상 회사 임원은 아니지만 아직 주주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시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당한 느낌을 받고 있을 그 상대방에게 어떻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조심스럽고 신중하면서도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튼다면 방법이 아예 없지는 않겠다 싶다. 그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만 있다면 이후 협상의 옵션은 만들기 나름이다.    


이렇게 회사의 법적 리스크뿐만 아니라 유·무형의 다양한 리스크를 감지하고 풀어가는 일이 변호사에게 앞으로 더욱 요구되는 역할이 아닐까. 직·간접적인 수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녹여내어 문제 해결에 적용시키는 것은 AI는 할 수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이러한 문제는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왜 사람들은 나를 힘들게 할까’, ‘사람들은 왜 나에게 무례한 걸까’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이전의 내가 무심코 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나 말이 그 원인이 되었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 사람들은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다 원인과 결과가 있는 것.


그러니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다면, 상대방이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을 되짚어보자. 그러다 보면 진짜 이유가 뚜렷하게 보일 것이고, 그 이유가 나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이유를 촉발한 나의 행동을 들여다보자. 나의 특정 행동이 상대방에게 먼저 상처를 주었을 수 있으니.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하면, 상대방의 나에 대한 태도 또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불쾌한 일을 당했다면, 그저 그 사람을 욕할 것이 아니라 그 원인부터 짚어보자. 그게 내가 인격적으로 성장하는 길이다.


그러고 보니, 내가 어제 남편한테 누구를 욕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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