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우울증 문턱에서
짜증은 왜 이리 나는 건지
친정어머니가 육아를 도와주시러 미국에 오신지 두 달 반 정도 계시다 가셨다. 고생만 하시다 가셔서 죄송스럽다.
와계신 기간 동안 난 한 달에 한 번씩 미친년처럼 울고 소리 지르고 광분했다. 엄마가 오시면 육아스트레스가 많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첫 한 달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엄마랑 아기랑 같이 자주 외출하고 싶었다. 아무리 집순이인 나도 아기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면 너무 답답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아기를 위한 깨끗한 환경을 중시하셔서 청소, 정리정돈, 빨래 등의 집안일에 열심이셨다. 그동안 육아하느라 학업에 등한했던 신랑은 새벽 여섯 시 반에 학교를 가서 저녁에 돌아오곤 했다. 백년손님인 사위에게 잠자리까지 양보해가시며 주중에 엄마는 나와 같은 방을 쓰시며 아기를 보셨고 음식에 집안일을 하셨다. 감사했다. 감사한데 왜 나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 거 같을까? 아기는 원더윅스가 와서 엄마인 나만 찾아서 아기를 더 많이 안고 흔들었다.
토요일인 어떤 날은 집청소하시는 엄마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정리정돈에 걸레질까지 끝내니 바닥나버린 체력으로는 원래 외출하려고 했던 스케줄을 소화할 수 없었다.. 아기를 안고 돌봐주시느라 힘드실거 같아서 엄마랑 나는 요가를 하려고 일부러 ymca 멤버십까지 발급받았는데 엄마와 나를 위한 일정이 집안일로 취소된 것이다.
요즘은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다는데! 나의 불만은 점점 쌓여갔다. 나는 많은걸 바라지 않았다. 아기와 집에만 갇혀있는 이 일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주중인 저녁엔 마트라도, 주말에는 잠깐 서점이라도 들러야 숨통이 트일 거 같은데 왜 아무도 내 기분은 헤아려주지 않는거 같지... 딸내미가 고생하는 걸 도와주시기 위해서 태평양을 건너오신 엄마는 한 달 내내 감옥생활을 하시는 거 같았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가 하도 답답해서 나를 데리고 나들이라도 하고 오면 나는 병원에 입원했단다. (이런 불효녀가 없다!) 그래서 엄마는 내 아기가 아프지 않은 게 제일의 급선무요, 납작해진 뒤통수를 둥그렇게 만드는 것이 차선의 임무셨다. 내 엄마가 오셨는데 왜 남편만 편해지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아기를 낳은 자국인 임신선이 아직도 선명하고 늘어진 뱃가죽을 보면 한숨이 나오는데 옆에서 아저씨 되고 싶지 않다며 팩을 부치는 남편이 얄미웠다. 거울을 봐봐. 넌 아저씨야. 나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다고 했다. 그럼 외출하지 않는 주말, 나하고만 있을 때는 왜 안 꾸며?
엄마와 세대차이도 문제였다. 나는 82년생 김지영에 가깝고, 엄마는 58년생 미숙에 가까웠다. 60년생인 내 어머니는 엄마는 자고로 자식을 위해서 희생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의 편의를 최대한 봐줘야 한다는 신념으로 한 평생 살아오셨다. 나는 아닌데... 나는 남편과 육아를 반반으로 해야 한다는 주의인데. 이미 출산으로 몸이 잘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 육아를 하는 게 점점 더 버거워졌다. 심지어 정상으로 돌아온 줄 알았던 생리 사이클이 엉망이 되어 한 달 내내 하혈까지 했다. 이렇게 피곤한데 왜 나만? 과다출혈로 죽든 스트레스받아서 화병으로 죽든 어떤 식으로든 죽을 거 같았다.
신랑이 잠을 더 자면 그렇게 왠수처럼 보일 수 없었다. 시댁에 쌓여있던 불만까지 겹쳐서 내 모든 짜증을 신랑에게 풀었다. 시댁과 신랑을 별개의 문제인데 왜 신랑한테 연좌제를 씌우는지.. 아마 시댁에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게 한 서운한 마음이 신랑한테 다 갔나 보다.
여기는 노래방이 오후 6시에 문을 연다. 대낮부터 열면 혼자 가서 소리라도 지르고 올 텐데 그럴 데도 없다.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이 맥주 마시기였는데 건강에 좋지 않다고 엄마가 그냥 참으라고 하신다. 절망적이었다. 누구보다 딸 편인 엄마가 이러면 누가 나를 이해해주지? 이것도 못하고 저것도 못하고... 한숨이 나고 자꾸 눈물이 났다.
나는 아기와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데 왜 내 마음대로 못 키우는 걸까? 아기가 다른 아기랑 같이 놀았으면 좋겠고, 운동할 때 아기를 잠깐 맡기는 child watch에도 가서 좀 맡겼으면 좋겠는데! 여기 미국은 그렇게 키우는데!! 아기가 5~6개월일 때까지는 어리고 면역력이 없다고 하여 외출하지 않고 참았다. 그런데 언제까지 건강한 내 아기를 위해서 아픈 내가 피폐해져야만 하는 거지...
기다렸던 아기가 생겼다. 아기는 너무 예쁜데 난 미쳐버릴 거 같았다. 예전엔 엄마 혼자서 우리 두 남매를 다 키우시고 아버지는 별로 도움을 주지 않으셨었다고. 그에 비해 육아를 도와주는 신랑은 훨씬 나은 거라고. 과연 그럴까. 아기와 놀아줄 때 친구들과 카톡하고 주식하고 뉴스보고 유튜브보는 신랑이 마냥 못마땅해 보이는데? 다 귀찮고 다 내려놓고 싶다. 어디 나 혼자 훌쩍 여행이라도 가고 싶었다. 여행은커녕 혼자 호텔이라도 가서 1박하고 왔음 좋겠다.
요즘에도 이런 마음이 울컥울컥 치밀어 오른다. 왜 몇년전 내 친구가 17층 아파트에서 가끔씩 뛰어내리고 싶다고 했는지 알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