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밥 Jul 20. 2024

나약한 존재가 살아지는 일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라."

춘추전국시대 굴원이라는 사람이 쓴 <어부사>의 문장입니다.

이 사람은 왕과 세상에 대한 원망을 담은 <이소>라는 글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유시민의 <공감필법>을 통해 알아봅니다.

세상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세상에 맞춰 살라는 것이죠. 흙탕물에는 발을 씻어야지 얼굴을 씻으면 안 되잖아요? 물이 맑으면 얼굴을 씻고 물이 탁하면 발을 씻으면서 살면 되지, '왜 이렇게 물이 탁해!'비관할 필요 있느냐고 한 겁니다.

굴원은 이 말을 어부가 한 것처럼 적었습니다. 그리고 삶을 비관한 사람이 한강 다리에서 떨어지듯 멱라수에 몸을 던져 죽어버렸습니다.




내 인생에서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흔들리는 갈대 같은 자신을 비관한 적 있을 겁니다. 특히 저는 마음이 여려서 나를 위한 선택보다는 남이 싫어하거나 불편할 것을 미리 예견해 포기하지 않아도 될 만한 일을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그럴 때 '왜 이렇게 물이 탁해!'라며 비관했던 거죠.


7년 전 뱃속 아가를 보내주었 던 날 나약한 존재인 나에게 새로운 삶이 필요했습니다. 종교에 기대어 보려고 제 발로 성당에 찾아가 교리 수업을 받기 시작했죠. 쉽지 않았습니다. 모든 걸 품어줄 거라고 믿었는데 창세기에서 막혀버렸습니다. 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구나. 종교에 기대긴 어렵겠구나 결단을 내렸습니다.

멘토에 기대기도 하고 술에 기대기도 했어요. 이것저것 해보다 제일 믿을만한 게 책이었습니다.

책은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듣고 싶은 얘기가 다 있더라고요.

7년이 지난 지금 아가를 보낸 일보다 아무 일도 아닌 일들이 훨씬 많지만  창랑의 물이 탁해 보여서 발을 씻는 일이 생기더군요. 물이 왜 탁하냐고 비관하기보다 저의 삶의 방식을 세워가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덜 무거워져요.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땐 당장 섭섭하고 혼자만 남겨진 쓸쓸함이 견디기 어려워요. 제가 잘났든 못났든 내 눈에는 창랑의 물이 탁해 보이니 발을 씻을 뿐입니다.

그래야 살아지는 것 같아요.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게 악몽이 되지 않으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