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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Jul 19. 2021

나와 마주하기 4. 편린

시간의 흐름과 유동성, 다가오기도, 떠나기도 하는 사람들

세화해변에서. Copyright  2020 모모. all rights reserved.




대학 졸업반이었던 23살 겨울, 나는 첫 회사에 입사했다. 졸업도 전이었지만 졸업 후 붕 뜨는 시간이 무서웠던 나는 작은 제약회사에 지원했고 무사히 합격할 수 있었다. 학교 다닐 때 했던 인턴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것 같았지만 또 전혀 달랐다. 사회는 낯선 이국 같았다. 학교에서는 자기 앞가림 잘하는 그럴싸한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사회에서는 풋내기였다. 함께 입사한 동기 언니는 너는 진짜 개념이 없어 라고 말했고 윗 선임과 인사팀 팀장이 입을 맞춰 뒷담화를 흘리며 괴롭혔다.


그때, 동시에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좋은 사람들. 팀장님은 정말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업무적으로나 인성적으로나 그랬다. 어린 팀원에게 업무를 가르치면서 동시에 막내 여동생 대하듯 애정을 베풀어주셨다. 언젠가 그분이 내게 그랬듯 나도 후배의 졸업식에 꽃을 들고 찾아가고 싶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다면, 나도 이렇게 좋은 향기의 사람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을까. 많은 고객들도 만났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의사가 있다. 어떤 사람은 근무시간에만 병원 아이패드 카카오톡으로 추파를 던졌고, 어떤 사람은 새 스포츠카를 샀는데 같이 타고 좋은 곳으로 식사하러 가자고 말했다. 이쯤 얘기하면 아주 인간 혐오가 생기셨겠어요..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그렇지 않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반대라면 나는 운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기억을 더듬어 내려가면 수많은 좋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동대문구에 있던 성OOO병원 OOO 교수님, 구리 OOOO의원의 네 선생님들, 그리고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 십년이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 그들의 얼굴을 정확히 그릴 수도, 이름을 줄줄 외우지도, 심지어는 마주쳐서 알아볼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없지만, 감사한 마음만은 가득하다.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새파랗게 어리고 학생같이 눈치 없던 어린 영업사원을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중해주셨다는 게 어찌나 감사한지. 지금에서 돌이켜보면 그저 무시할 법한 초짜 직원이었는데도 존중과 가끔은 따듯한 배려로 대해주셨다는 점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잊고 있었는데 문득 친구가 "구리에서 맛집 갔다 왔어~" 하는 얘기에 번쩍 선생님들이 떠올랐다. 문득 기회가 된다면 찾아가서 그때 참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다는 마음에 뭉클해졌달까. 그렇게 생각은 생각으로 꼬리를 물어 아주 어렸을 때의 나, 그리고 조금 커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나. 부모님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나를 지나서 직장생활을 하며 이제는 조금은 어른스러워진 나까지. 수많은 내 모습에는 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말 한마디, 눈빛과 손길, 우리가 나눈 대화들. 조각조각이 모여 내가 되었고, 그들이 묻힌 수만 가지 색이 모여 나의 색이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가겠지. 그들과의 시간이 적분 그래프처럼 쌓여나가서 한 면이 되고, 내게 입혀지겠지. 시간의 흐름과 유동성, 인간관계의 변화, 다가오기도, 떠나가기도 하는 사람들. 앞으로 내가 모아갈 무수히 많지만 동시에 끝이 분명한 기억의 조각들은 어떤 모습일지, 잠이 들려 감은 눈앞에 둥실둥실 떠오르는 듯하다. 잡힐 듯이 절대 잡히지 않는 나의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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