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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모 Sep 05. 2021

나와 마주하기 3. 나를 가장 괴롭게 하는 것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산굼부리에서. Copyright  2020 모모. all rights reserved.


 나 자신에게 가끔 상을 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 나빴던 일을 쉽게 잊어버릴 때. 누군가의 실수보다는 감사했던 일을 더 오래 기억하는, 그런 점 말이다.


 이성이 주로 앞서고 계획적이고 분석적인 나는 당연하게도 계산적이다. 어릴 때는 계산적인 내가 쫌생이 같아 싫었는데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가장 최선의 판단을 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계산을 할 수밖에(이 또한 어떤 면으로는 생존의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나 자신 토닥토닥..). 이제는 요령이 생겨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계산하지 않고 그 속의 가치도 어림잡아 넉넉히 챙겨본다.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밥을 사거나, 아끼는 친구에게 귀여운 빵 모양의 그릇을 선물할 때의 기쁨을 같이 어림잡아 본다던가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나에게 주어진 나쁜 일은 더 오래 기억하리라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이유 없이 나를 괴롭혔던 선임이나 버스에서 우산을 두고 내려 비 맞고 걸었던 일(심지어 예쁜 새 우산이었다던가), 기껏 주문한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거나 하는 그런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발생해버린 그런 것 말이다.


 불쾌한 마음이 컸다면 기억에서 말끔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열심히 씻어낸 커피 자국처럼 어딘가 연한 얼룩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그런 기억들은 오랫동안 남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 떠오르면, 어쩔 수 없었지 하고 다시 흘릴 뿐이었다.


 불쾌하게 들러붙어 나를 괴롭히는 건 따로 있었다. 다름 아닌 "부끄러웠던 기억". 내가 뱉었던 말 한마디, 상대방을 흘겨본 눈빛, 누군가를 적절하지 않게 비난했던 순간들. 나 자신을 정당화하고자 억지를 부렸던 기억들은 언제까지고 다시 떠올라 마음을 무참히 찔러댔다. 돌아가서 싹 지우고 싶기도 하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려 사과하고 싶기도 했다.


 교토에 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가방가게에 들렸다. 사고 싶은 디자인이 있었는데 보이지 않아 짧은 일본어로 직원에게 물으니 3일 뒤에 추가 상품들이 입고될 거라 알려주었다. 여행 기간이 빠듯했지만 왠지 욕심이 나서 3일 뒤에 다시 들린 매장에 그 가방은 없었고 다른 디자인들만 다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직원을 붙잡고(굉장히 바빠 보였는데) 당신이 다시 오라고 해서 힘들게 시간을 내서 다시 왔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며 따지기 시작했다. 직원분은 난감해하며 한참 동안 상황을 설명했지만 다른 여행지를 포기하고, 교통비를 들이고, 비까지 뚫고 찾아온 나의 수고스러움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 직원분을 붙들고 늘어지며 억지를 부렸다. 긴 시간 일본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평행선의 대화를 달리다 결국 직원분이 긴 한숨과 함께 창밖으로 디스플레이되어 있는 비매품 상품을 꺼내어 계산해주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 알고 있었다. 내가 찾던 그 가방이 들어올 거라고 얘기한 건 아니었다는 거. 어차피 비가 와서 특별히 갈 곳도 없었고 다음 여행지로 여기서 가까운 카페에 가려고 했던 점. 다른 예쁜 디자인으로 마음을 돌릴 수도 있었다는 점까지.


 원하던 가방을 계산하고 포장을 받아 가게 문을 나서던 그때, 비 오는 거리로 나서던 그 참담한 심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죽했으면 3년이 훌쩍 넘게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렇게 기억이 날까. 나는 지금도 그때의 내가 부끄럽고 한심하고, 기회가 된다면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고개 숙여 사과하고 싶다. 그때의 나를 이해해보자면 시간이 금쪽같은 여행자였으니까, 직원에게 소리치거나 하지 않고 그저 설득하려고만 했으니까, 전시상품도 있었으니까 하고 별일 아니었다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인 내가 제일 잘 아는 법이다. 나는 부끄러웠다, 옳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객관적인 지표로 계산하면 나 스스로 부끄러운 일보다 나에게 닥쳐온 나쁜 일이 주로 더 많은 손해를 입힌다. 하지만 늘 부메랑처럼 다시 돌아와 나 자신을 긁어대는 건 부끄러운 나 자신이었을 뿐,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상황들이 아니었다.


 인생은 살아봄직 하다. 삼십 년이 훌쩍 지나서야 나는 내가 견디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이 마흔에도, 쉰에도, 예순에도, 일흔에도 하나씩 하나씩 깨달아가며 나 자신을 이해해갈 수 있으면 좋겠다. 어렵게 더 잘 이해하게 된 나 자신을 더 아껴주고 보듬어주며 살아가야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을 아끼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상대방을 배려하고 아껴주는 것이란 것을 깨달은 어느 여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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