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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Oct 31. 2023

쌀국수

조용한 식사 한 끼

친구들과 또는 가족들과 삼삼오오 모여서 정답게, 때로는 시끌벅적하게 얘기를 나누며 먹는 식사도 물론 대환영이다. 하지만 종종, 아니 자주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내 앞에 놓여 있는 맛있는 한 끼 음식의 맛을 음미하며 그 시간을 고요하게 즐기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 부부는 외식할 때 대부분 대화가 없거나 필요 최소한의 대화(“후추 뿌렸어요?”, “이것도 먹어봐요. 맛있어요.”)만 나누는 식사를 즐겨한다. 대화가 가장 많았던 적은 어느 주말, 검색의 힘을 빌리지 않고 ‘설마, 국숫집이 기본은 하겠지’ 하며 불쑥 들어간 식당에서 너무나도 형편없는 맛의 국수를 한 그릇씩 받아 들고 이걸 다 먹고 나갈 것인가 아니면 그냥 한 입 뜨고 나갈 것인지에 대해 낮은 목소리로 열띤 토론을 벌인 때뿐이다.


‘미분당’ 신촌 본점을 처음 찾은 건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2020년 1월 1일이었다. 떡국을 대신할 만한 뜨끈한 무언가를 먹고 싶었고 항상 줄이 길었던 이곳 쌀국수의 맛이 궁금하기도 했다.


문 여는 시각을 맞춰서 갔지만 이미 줄이 길었다. 이 추위에 쌀국수 한 그릇을 먹겠다고 줄까지 서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를 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순서가 되어 들어선 가게, 정중앙에 있는 개방형 주방 안에 있는 끓는 육수통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인해 가게 안이 더욱 따뜻하고 포근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안내받은 자리에 앉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안내 문구, ‘이곳은 누구나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주인의 뜻에 따라 탄생하였습니다. 매장 안에서는 옆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누구에게나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할 권리가 있지만 일상적으로 방문하는 식당, 카페에서 그 권리를 성취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이런 식당을 만나면 모래사장에서 보석을 찾은 듯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물론, 음식의 맛은 차치하고 그 자리에서 ‘단골이 될 결심’을 하는 것이다. 한 그릇 가득 담아 주시는 쌀국수 맛도 일품이니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딱 좋다. 그저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고 떨어진 낙엽이 길가를 뒹구는 늦가을이면 자연스럽게 생각이 나고 발길이 향한다.


오늘도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시원한 국물이 온몸 구석구석 타고 내려가며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크하—’ 소리와 함께 호로록호로록 잘 먹고 갑니다.

차돌, 양지, 힘줄 쌀국수. 푸짐푸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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