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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n Jul 15. 2024

걷는 여행 4-2

경북 영주 부석사 - 무량수전

다음 날 아침, 영주 부석사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


2002년 어느 날, 아버지께서 사 오신 책의 제목이 하도 낯설어서 단지 그 이유로 책 제목을 외고 있었다-(최순우의 한국미 산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유명한 책인 줄 알고 나서 읽지도 않으면서 그 책만큼은 내 방에 두었고 기어코 결혼하면서 가져왔다. 그러고 보니, 그 뒤로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네.


내게 남은 숙제를 끝마치고 싶었다. 경북 영주에 내려가야 할 유일한 이유였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박물관 전시품처럼 가지고만 있었던 최순우 선생님의 책을 펼치고 ‘부석사 무량수전’ 편을 정독하였고, 유홍준 교수님께서 쓰신 ‘영주 부석사’ 편도 탐독하였다.

유명한 곳인데 절집에 오르는 무리가 생각보다 적다. 이날 오전부터 체감기온이 30도가 조금 넘었던 것 같다. 암, 이 더위에, 게다가 평일 정오에 절을 찾는 사람은 드물지. 북적거리는 것을 무척이나 꺼리는 성향이라서 사람이 많을 만한 시기, 장소, 때를 일부러라도 피하는 우리 부부. 한적~하니 오히려 좋아!라고 하고 싶었지만, 실상은 매우 덥고 습해서 입구에서부터 헉헉댔다.


산을 타는 마음으로 오르고 또 올랐다. 이렇게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남편에게 일부러 미리 말하지 않았다. 안 간다고 할까 봐.


경사가 꽤 가파른 돌계단에 이르자 그때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 순간, “여보, 뒤를 봐봐!” 땀범벅이 된 남편의 외침이었다. 휙 돌아서서 마주한 풍경에 빙그레 웃음이 났다. 이거였구나, 끝끝내 올라가서 봐야겠구나.


마침내, 안양루에 당도했다. 안양루 누각 아래쪽, 정면에 석등이 조그맣게 보인다. 필시, 석등 뒤편이 목적지겠구나. 마지막 남은 힘을 보태어 한 걸음, 한걸음 올라섰다.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무량수전.

좌) 안양루, 우)무량수전과 앞마당의 석등. 둘 다 국보.

둘 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말로만 듣던 배흘림기둥이구나, 현판은 고려시대 공민왕이 쓰셨다지, 주심포 양식의 단아한 매력이 바로 이것인가? 법당을 크게 한 바퀴 돌고, 안으로 들어섰다.


잠깐 앉아 있는데, 믿을 수 없이 청량한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왔다. 목과 등줄기에 줄줄 흐르던 땀이 순식간에 빠르게 식었다. 그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앉아 있다가 문득, 열린 문 너머 저 멀리 병풍처럼 둘러 있는 소백산맥 자락을 멍하니 바라봤다. 산과 산이 끊어질 듯 이어질 듯 내달리는 장엄한 광경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도 필요 없었고, 그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두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그뿐이다.


다시 내려가기 전, 여길 언제 또 와볼까 싶은 마음에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향해 애먼 카메라 셔터만 자꾸 눌러댄다.


별책부록:

계단과 경사가 이 정도였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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