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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코슈카 Aug 27. 2021

엄마가 매일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매일 밤 10시 15분 즈음, 한국시간 오전 5시 15분 이른 아침.

엄마는 일찍 일어나 새벽예배를 드린 후 아침운동을 나가는 길에 매일 나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언니에게도 똑같은 걸 보내는진 모르겠다). 새벽예배의 성경말씀 한구절을 담은 사진은 디폴트로 항상 보내고, 그외 상황에 따라 새벽풍경의 모습을 찍은 여러장의 사진,  긴긴- 엄마의 기도문을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 (난 만난적도, 대화해본적도 없는) 엄마 주변 사람들이 오지랖넓으시게도 나에 대한 기도를 줄줄 적어보낸 메시지를 복사해서 전달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끔 '하루 수고했으니 잘자라'와 같은 실제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


언제부턴가 매일밤 비슷한 시간대에 메시지 알림이 울리는게 이상하기도 할테지. 어느날 Flo는 매일 이시간(이밤에) 누가 연락을 하는건지, 그리고 왜 내가 바로 메시지 확인과 답장을 하지 않는 것인지 물었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mom" 이라 답했다. 그 이후 우리의 기나긴 대화는 생략. 그리고 약 한달 전부터 난 카카오톡 엄마의 메시지 알림을 mute 처리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비엔나로 옮겨오기 시작한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10개월이 되어간다) 매.일. 이렇게 엄마의 연락을 받는다.(아, 일요일은 안식일이었던가;)

난 급하거나 특별한 일이 아니면 친구던 가족이던 평일 10시 이후의 밤 시간대와 이른 오전에는 웬만해선 연락하지 않고, 그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 시간대는 프라이빗한 일들과 생각들이 벌어지고, 또 혼자만의 고요함과 여유를 되찾는 때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일하던 이전까지의 시간동안도 엄마와의 '연락'이슈는 쉽게 정리되지 못하고 가끔 내 마음을 힘들게했다. 엄마는 내가 as 자주 as possible 영상통화를 걸어오길 원했고 난 그럴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며, 하지만 엄마가 원하는 때 언제든 전화하라고 했다. 내가 받을만한 상황이면 받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받지 못할 수도 있을테니. 하지만 엄마는 보통 내가 '먼저' 전화하기를 기다렸고, 난 10일-2주에 한번씩 전화를 '해드리는'것으로 대략 그렇게 정리하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 비엔나로 다시 거처를 옮기고부터, 또다시 이 끝나지 않는 '연락'이라는 것의 불편하고도 새로운 이슈와 마주했다. 

엄마는 적극적으로 매일 저런 사진과 기도문과 같은 메시지를 보내오고, 나는 다음날 늦은 아침 짧게 답을 하거나, 대부분은 확인만 하고 만다. 어떤 응답방식이건 모두 불편하다. 1) 엄마의 기도문에 짧게 '아멘. 고마워 엄마' 라고 답하면 '잘잤니? (여기 오전 11시 넘었음;), 잘지내니? 비자는 나왔니? 면접 결과는 나왔니?...' 등의 대화가 시작된다. - 이런 대화를 매일 할수는 없다. 2) 여러날동안 메시지를 읽고 답하지 않는 마음도 불편하고 썩 좋지만은 않다. 그러니 '아... 제발 매일 이렇게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는 간절함이 내 마음을 불편하게 괴롭히는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된 것이다. 


19살 대학을 가면서부터 나는 언니와 같이 살았던 중간 몇년의 시간을 제외하고 혼자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은 아무래도 서로 비슷한 환경과 가족행사 등등에 놓여있으니 필요와 논의와 안부 차원 등등으로 연락하는게 자연스러웠지만, 돌이켜보면 사실 나의 부모님은 내 생각이나 삶의 철학, 계획 등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알아가기 위한 대화 보다는 본인들의 이야기, 하소연을 쏟아내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리고 오랜 시간 후, 나는 더이상 한국에서 살고싶지 않다는 결정과 실천을 하게 됐고, 결정적인 이유의 1/3이상은 아마도 부모님과 가까이에서 살지 않는게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나은 판단이라 믿은 것에있다. 부모와의 관계를 새롭게 다시 쌓아 나가기에는 그럴 수 있을만한 때를 이미 지나쳤고, 그 때는 서로가 필요로 하는 것이 상충되어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었다. 묵묵히 받아들이고 겪어낸 오랜 시간이 지나, 더이상 이 관계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했던 것들을 견딜 수 없고 그러고싶지 않았던 내가 떠났고, 난 원래도 씩씩하고 독립적이었으니 괜찮았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이제는 타이밍을 놓쳐 더이상 필요하지 않은 엄마의 애착이 단단히 달라붙은 타이트한 방식의 소통이 매일 나를 찾는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부모와 가족은,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친한 친구만큼은 아니라해도 어느 정도는 잘 알고, 그래서 가까이에 살던 멀리 떨어져 살던, 거시적으로 어떤 삶을 추구하며 그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으리라는 믿음을 바탕에 두는 것. 그러니 매일매일의 사사로운 일상을 속속들이 다 알아야 하지 않지만, 중요한 날들과 축하 또는 도움과 위로가 필요한 때 마음 다해 진심으로 축하/위안을 주고, 필요한 도움을 청하고 줄 수 있는 것.] 대략 이런 모습이길 바란다. 그래서 엄마의 매일같은 연락에 나는 조금은 숨이 막히고, 진짜로 축하받고 좋은 이야기들을 주고받기 원했던 결혼과 같은 때 내게는 별 의미없는 다른사람들의 축하 말들과 이미지 투성이의 케이크와 꽃다발 등등이 엄마의 메시지 창을 통해 쉴새없이 전달되어 오는게 헛헛했고 기쁘지 않았다. 엄마와 엄마의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대한 내 감정이 무언지 정확히 정의내리기 어렵다. 그것은 뭔지모를 싫음과 불편함과 같고, 지난 날들과 또 지금의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 엄마 마음대로 결정한 이런 커뮤니케이션 방식으로 나와 끊임없는 연결을 일방적으로 이어가려고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뒤틀림 속에서 빠져나갈 안전한 방법을 잘 모르겠음과 그로인한 상대에 대한 원망, 또... 이 모든 것을 그냥 다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 못하는 내 예민함과 복잡함이 뒤엉켜 있다. 


Flo는 내게 가족과 당분간 좀 거리를 두라고 조언했고 그것이 exactly 내가 원하는 바였다. 부모님 두분의 관계, 엄마, 아빠에게서 충분한 거리를 두고 내 삶에 집중하고 싶어서 떠돌이 생활을 기꺼이 자처하며 지금 이렇게 여기까지 왔는데, 비엔나에 오기 전까지는 그래도 썩 다 괜찮았는데. 그 어느때보다도 멀리온 이곳에서, 심지어 결혼까지 한 이제는 내 가정을 꾸린 한 단계 높은 수준의 어른이 됐는데, 뭔가 지난 시간들을 돌고돌아 간신히 벌려놓은 우리 사이의 거리를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억지로 잡아당겨 붙들고 있는 것만 같은 어리둥절한 낙담에 빠져들게 한다, 엄마의 매일 보내는 메시지는.


나는 주변 친구와 웬만한 사람들과 분명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그러면 서로간에 오해도 별로 없고, 서로의 말과 생각과 진심을 놓치지 않고 더 잘 알아챌 수 있다고 믿는다. 진심없는 말들과 아무 생각없이 그저 내뱉고 있는 말들이나 에둘러 빙글빙글 돌고돌아야만 할 이유가 있지, 진실과 진정성이 담긴 말과 눈빛은 애, 어른, 동물 할 것 없이 바로 알아본다, 그럴 수 밖에 없다. 근데 부모는 좀 다르다. 내가 겪은 바로는, 부모와는 설득이나 이해를 바라느니 솔직하지 못해도 그냥 '네' '응, 밥먹었어.' (밥 먹었는지 그만좀 물어봐-는 속으로만 말하는게 낫다. 내가 뭐라했든 다음번에 어차피 또 물어본다) 라고 답하는게 만사평화로운 방식의 소통인 것이 슬프지만 적어도 내겐 현실이다. 그래서 '당신의 이런 말이, 행동이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느껴진다. 그러니 그러지마라 저러지마라,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 등등의 말들이 별 효과 없이 나이든 어른의 마음에 괜한 섭섭함만 남겨 되려 역효과를 남기기 일쑤니  just do not. 

이것이 내가 엄마의 좋은 마음에서 비롯된, 하지만 내 마음은 1도 생각하지 못하는, 매일 같은시간에 보내는 메시지에 대해 [무음처리]로 대처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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