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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안의 스투키 Jul 11. 2018

남극의 아홉시는 없다.(7)

하늘은 우리에게 라센빙붕을 허락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얼음을 깨고 앞으로 나가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평소에 말이 없던 아라온호 선장님이 갑자기 말이 많아졌다.

 콤파스데크에 치프사이언티스트와 아이스파일럿, 아이스네비게이터와 우리 취재진까지 모두 모여서 위성 사진과 레이더 영상을 보면서 회의에 들어갔다.

 

 “더 이상 앞으로 나갈 순 없는 건가요?”

 “이 상황에서는 얼음이 두꺼워서 깨고 나갈 수도 없고, 상황이 좋아져 깨고 나간다 하더라도 바람이 얼음을 밀면 길 한가운데 갇힐 수 있습니다.”

겨울로 접어든 남극의 얼음은 아라온호가 깨면서 전진하기에도 많이 두껍다.


 “돌아서 갈 수도 없는 건가요?”

 우리의 물음에 러시아에서 온 아이스네비게이터가

 

 “만약 라센빙붕에 가까이 가더라도, 지금 바람의 방향으로 보면 길 한가운 데에서 갇혀 움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이스파일럿도 한마디 거든다.

 “이게 남극의 자연입니다.”


 이번 극지연구소의 연구항차 4항차는 남극해의 연구의 목적도 목적이지만, 세계최초로 라센빙붕과 그 아래 생태계를 연구하는 것도 큰 프로젝트 중 하나다.

 한달을 가까이 아라온 호를 타고 달려왔는데

 

 거대한 남극의 얼음덩어리들과 바람과 추운 날씨 앞에 그 큰 프로젝트가 무산이 되었다.


남극의 자연 앞에선 우리의 아라온호도 어찌 할 수 없다.


 헬기 파일럿도 앞으로의 날씨를 봤을 때 헬기로 200km를 왕복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고 못을 박는다.

 작년에 영국도 실패한 그 라센빙붕에 쉽게 올라갈 거라 생각하진 않았지만 막상 무산이 되니 너무 허탈하다.


 “이번 아이템 제목이 ‘라센빙붕을 가다’로 하려 했는데 어떡하지?”


 취재기자 선배는 허탈을 넘어 멘붕이 왔다.

 회의를 촬영하면서 연구진들의 실망과 좌절을 카메라 담는데 그걸 담는 나도 멘붕이다.


 

라센빙붕은 이제 끝났다. 그렇다고 취재가 끝난건 아니다.


 라센빙붕은 더 이상 없다. 이젠 다른 취재를 해야한다.

 

“남은 건 이제 남극에 상주하면서 연구하는 기지들 취재밖에 없네”


 선배의 한숨이 깊다.


 “배를 돌려서 세종기지가 있는 마리아소만 쪽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선장님의 얼굴에 안도가 보인다.

 베테랑의 마도로스에게도 남극의 겨울은 예측불가에 위험천만이다.

 차라리 못가게 되면서 리스크가 없어지는게 안전을 총괄하는 선장님의 입장에서는 더 나았을 수도..

 



 

새벽 마리아소만이 눈앞에 펼쳐지고
뒤로는 세종기지가 나타났다.


 “세종기지입니다.”


 정말 코 앞에 세종기지가 보인다.

 너무 반갑고 저 곳에서 보낼 일주일이 기대돼 설렌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또! 대체 또! 뭐가! 왜!’


 “날씨 예보가 좋지 않습니다. 세종기지 들어가시는 건 예정대로 들어가실 수 있는데 나오는건 장담할 수 없어요.”


 “그럼 방법은요?”


 “들어가시고 이틀만에 나오셔야 할 수 있어요.”


 “이틀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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