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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안의 스투키 Jul 22. 2018

남극의 아홉시는 없다.(8)

우리나라 남극 진출 30년의 역사. 세종기지.


 “ 괜찮아 일단 들어가 보자.”


 “ 선배 괜찮을까요? 예정 시간에 못나오면 아라온호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텐데요.”

 “ 아니야 뭐든 방법은 있어. 일단 들어가서 생각하자.”


 

나가는건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일단은 세종기지에 안착. 바다건너에 아라온 호가 보인다.

 

 조디악을 타고 세종기로 넘어가 아라온 호를 바라보니

 이제 정말 항해의 끝이 다가온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앞으로 일주일 안되는 시간동안 세종기지에서 취재만 마치고 다시 저 빨간 아라온호에 오르면 집에가는 일만 남는다.


 우리가 세종기지에 내리는 동안 아라온호는 바쁘게 움직인다. 무려 세종기로부터 받아야할 컨테이너 박스가 9개. 뿐만 아니라 세종기지에 내려줘야할 물품들도 한짐 이다.

 

 지난 하계(남극의 여름은 우리나라의 겨울) 연구진들이 채취한 샘플과 월동대가 연구를 위한 샘플들(특히 이번에는 살아있는 남극 대구들이 연구를 위해 인천으로 이동한다!)이 가득한 컨테이너 박스를 아라온호에 싣는데 이것도 참 장관이다.

중장비를 이용해 바지선위에 컨테이너를 싣고 하나하나 아라온호에 옮긴다. 남극연구를 위해 꼭 필요한 시료들이다.


 이 모습을 찍기 위해 드론을 날린다.

 세종기지의 겨울 모습은 그 동안 촬영한 적이 없다.

 눈에 쌓인 세종기지.

 욕심이 난다. 그래서 바람이 좀 있지만 장갑을 벗어 던지고 조종기를 잡는다.

 드론에서 경고음이 난다. 바람이 너무 부니 조심하라는..

 손도 꽝꽝 얼어 조작이 쉽지 않다. 그래도 아라온호 넘어까지 드론을 넘겨 본다.

 화면에 보이는 세종기지의 모습이 참 외로워 보인다. 앞으로 월동대는 우리가 떠난 후 이 세종기지에서 8개월을 더 버터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눈 덮인 킹조지섬에 붉은 건물들이 오밀조밀, 세종기지의 겨울은 외롭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추운 날씨에 조종기에 연결되어있던 핸드폰이 그냥 꺼졌다.

 화면이 블랙이다.

 드론이 어디쯤 있는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조이스틱을 돌려보지만 조종기에 나오는 드론과의 거리는 점점 멀어진다.

 ‘이렇게 드론을 세종 앞바다에 제물로 바치게 되나..’

 

 그때! 눈에 조종간에 있는 버튼이 하나 보인다. H 버튼!

 세종기지는 섬이긴 해도 육지다. 분명 GPS를 잡았을 거다!

 H버튼을 빠르게 누르자!

 ‘Return to Home’이 조종간에 써지면서 빠르게 드론과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리고 어느새 머리위에 드론이!

 정말 추운 날씨에 등에 땀 범벅이다. 육안으로 드론을 확인하니 땀으로 범벅된 등이 찬 바람에 서늘하고, 손이 아린다.


알고보니 이번 월동대의 대장인 홍순규 박사님과 이은정 선배는 친구! 간단한 세종기지 방문 환영만찬!
고단한 남극항해가 끝나간다. 숙소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모처럼 흔들리지 않는 침대에서 푹 잠을 이루고

 다음날 부터 본격 세종기지의 월동을 취재한다.

 세종기지 월동대는 13개월동안 이 곳 세종기지에서 생활하면서 기지의 유지보수와 한국에서 필요한 샘플들을 채취하고, 기록한다.

 대한민국 남극진출의 상징인 세종기지는 남극에 자리잡은지 30년이 되었다.

 최근에 완공된 신막사를 비롯해 30년전과 현재까지의 우리 남극 연구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나라의 남극 연구의 시작은 쿠데타로 이뤄진 정권으로 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그게 무슨 말이죠?”


 “남극에 기지를 세우는 것은 매우 큰 돈이 들어요. 복합적이겠지만 전두환 정권은 자신들의 치적을 위해서도  남극에 기지 건설에 적극적이었어요. 그리고 세종기지 건설을 대대적으로 언론 등을 통해 홍보했죠. 만약 그때가 아니고 지금에서 세종기지 건설을 하겠다고 하면 쉽지 않을 거에요.”


 현재도 남극에 기지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나라들이 있다.

 그 대부분이 아직도 독재의 그늘에 있는 나라들이다.


 

중국기지에서 돌아오는 조디악에서 파도에 허리가 눌려 급성으로 디스크가 왔다.

 

 

 세종기지에서 철수 날이 가까워 지자 조급해 졌다.

 ‘조금이라도 더 취재를 해야한다.’

 

 “파도가 조금 세긴 하지만 그래도 조디악을 움직일 수 있어요. 하지만 오후에는 기상이 안좋아 지니 빠릴 돌아와야 합니다.”


 급하게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확실히 갈 때 보다 기상이 안좋아진다.

 조디악이 파도를 하나 하나 넘을 때 마다 긴장이 된다. 손으로 아무리 로프를 꽉 잡아도 엉덩이가 공중에 뜨는건 어쩔 수 없다.

 그러다 갑자기 커다란 파도를 넘는 순간 엉덩이가 크게 ‘붕’ 뜨더니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듯 ‘쿵’ 하고 떨어지자 ‘찌릿’ 하고 허리에서 신호가 온다.


 “으악”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조디악 바닥에 대자로 누워버렸다.

 조디악의 머리쪽에 앉아있던 내 잘못 이었다.


 세종기지의 남은 취재는 후배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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